이제 슬슬 한 해가 끝난다. 1년 365일 일하지만 그래도 한 해가 끝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연말 술자리로 일을 잠시 중단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술자리가 뭐가 좋냐 하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좋은게 없다. 평소에도 아무 걱정이 없지만, 술자리가 생기면 별다른 걱정 없이 일을 쉴 수 있다.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고, 눈치껏 주변 사람 말 맞추기만 하면 편하게 마시고 먹을 수 있다. 그렇기에 연말이 다가 올때마다 나는 달력을 종종 본다. 오늘처럼 말이다. 갑자기 딱 소리와 함께 머리가 아팠다. 순간적으로 입에서 의미 불명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고개를 드니, 상관이 봉을 탁탁 두들기며 노려 보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 없이 딴청 피우는 겁니까?"
"아뇨. 그냥 연말되면 바쁘잖아요. 일이 있나 본 겁니다."
나는 상관의 질문아닌 질문에 고개를 돌리며 적당히 대답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술자리도 엄연히 일 아닌가. 사회관계에 매우 중요한 일.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상관의 태도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내 대답에 "보나마나 노는 일이겠죠!"하며 한 대 더 때리고 설교해야 하는데 너무 조용했다. 얼굴을 살펴보니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말을 거려는 순간, 상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다면 저하고 술마실래요?"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황당했다. 이 상관이 무슨 약을 먹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그... 모임은 어쩌시려구요?"
"올해는 빠지려구요. 좀 생각할게 있어서요."
더더욱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염라대왕끼리의 모임을 단 한번도 거른 적 없는데 올해 갑자기 빠진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골똘히 생각하려는 찰나, 그는 나에게 물었다.
"어때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
이렇게까지 나오면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가겠다고 답을 했다.
만나는 장소에 도착하니 그가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모에게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몇 분 뒤에, 술과 안주가 나왔다. 한 잔 마신 후 상관이 말했다.
"있죠. 요전번에 뭔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제가 어떻게 압니까."
"헤헤 코마치, 틱틱 거리는 거예요? 얘기 안 할까?"
"...얘기 해주세요."
설마 했는데 역시 술 한 잔에 취했다는 것을 알았다. 얼굴은 벌게지고, 뭐가 좋다고 헤실헤실 거리고 있으니 모르는게 더 이상하다. 그래도 두세 잔은 마실 주량인 줄 알았는데, 한 잔에 갈 줄은 몰랐다. 한 잔을 더 마신 상관이 말했다.
"요전번에 내가 딱! 다른 재판관을 만났는데, 걔가 딱! 말하는 거예요."
"무슨 말을요?"
"에이 말 끊지 말고. 걔가 편하겠데요. 쉽게 이 자리에 앉아서 에헤헤헤헤헤..."
불길했다. 무언가 팍하고 튈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술을 연거푸 들이키더니 술잔을 쾅하고 내리치며 말하는 것이었다.
"뭐가 편하다고! 우이씨 무슨 눼가 노름으로 이거 딴 거 같아!"
"저기 손님 진정..."
"야! 니도 나 무시하는 거지! 앙? 구렇지!"
가만 놔두었다가는 안되겠다 싶어서 막 멱살 잡으려는 상관을 끌어냈다. 주모에게 연신사과하며 상관을 자리에 앉혔다. 이제 상관은 테이블에 퍼질러 누워 있었다.
"야 코마치. 너도 나 싫냐? 싫지 우히히히..."
"안 싫어합니다."
"거짓말. 히끅. 너 맨날 나 불평하자놔. 잔소리 징하게 한다고."
"......"
"오늘 가봤자, 히끅. 걔들 또 히끅 구럴껄. 요즘은 히끅 편하게 자리 얻네 히끅. 자기는 힘들게 히끅 됬네 히끅..."
그렇게 늘어놓는 넋두리를 나는 가만히 들어주었다. 저 성격상 속으로 끙끙 앓았을 것이다. 술을 마신 순간, 그동안 억눌렀던게 터진거겠지. 어쩌겠는가. 나아니면 저런 넋두리 들어줄 이도 없을테니 넓은 마음으로 들어주자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술잔을 입에 댔다. 평소와는 다른 연말 모임이었지만, 상관의 다른 모습 보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다음날 일하다 잠깐 쉬는 도중 상관이 찾아왔다. 헛기침을 여러번 하며 우물쭈물 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제 일은 고마웠습니다. 제가 좀 못난 꼴을 보였군요."
필름 안 끊겼구나.
"아뇨. 저야말로 고마웠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네요."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살짝 웃었다고 생각했다. 귀엽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그런데 코마치. 제가 어제 모임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네? 아 그게...."
"요즘 누가 술집 근처에서 낫든 사람이 다른이와 같이 술먹고 있다고 하던데..."
"우연히 비슷한 사람이겠죠. 우연. 아하하하."
"그래요 우연이죠."
상관은 웃으면서 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럴떄 제일 필요한 건...
"아! 제가 잠시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딜 도망치려구요? 요즘 일 안해서 밀린 일 산더미라는 보고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도망칠 곳이 막힌 나는 불벼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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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은 술먹는 시기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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