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아브가 환상에 발을 디딘지 어느새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나를 도와 수업을 진행하는것도 무리가 없었다.
얼마전에 죽림에서 환상들이 했다는 성아라는 아이와도 잘 지내는것같았다.
아마 자신처럼 현실에서 이곳으로 보내졌다는것에 대해 동질감이 느껴진거같았다.
맨 처음 오고나서 보이던 경계심또한 많이 풀어져 지금은 자주 그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전 나는 이 아이에게 그쪽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봤었다.
"저는 무녀였어요"
"호오. 서양쪽에서도 무녀라는 말을 쓰는가?"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샤먼이라고 해요. 둘다 신을 모시며 살아가는건 변함 없지만..."
"그래서. 그 신에 의해 이곳으로 온것인가?"
"잘 모르겠어요."
니아브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원래 뱀의 신을 모시고 살아가는 무녀였어요. 신이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뱀은 그쪽사람들에게 안좋게 생각되나봐요. 가끔씩 마을로 내려갈때면 사람들은 저에 대해 수근거리거나 하곤 했어요. 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어요."
니아브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했다.
"잠시 눈을 감아보실래요?"
"아. 문제는 없다만. 왜지?"
"잠깐이면 되요 잠깐이면..."
"알았다."
내가 눈을 감은 사이 천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됬어요. 이제 눈을 뜨셔도 되요"
'!!"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맨 처음 보인것은 그 아이의 가슴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옷을 입으라고 당장 소리를 치며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마저 들지 않을만큼 이 아이의 몸은...
"그 상처들은..."
"어느날 한번 마을에 큰 화재가 났어요. 사람들은 그 화재를 제가 모시는 신의 탓으로, 제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어요. 항상 괴롭히다보니 이 아이가 마을에 저주를 내린거라면서..."
니아브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저는 엄청나게 맞았어요. 더이상 몸에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불에도 지져지고 칼도 맞았어요. 그래도 기적같이 살아났죠."
니아브가 천천히 감은 눈을 떴다.
눈동자는 완전히 빛을 잃어 죽은 눈처럼 풀려있었다.
"저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는지 알수는 없지만...그래도 제일 큰 상처는 알수 있을거같아요."
초점없는 눈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만...그만해라..."
나는 니아브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아...따뜻해요. 정말로 선생님은 착하신 분이예요..."
나는 니아브를 끌어안고 조용히 그녀의 귀에다가 속삭였다.
"미안하구나. 어떤말로 위로를 해야할지 모르겠어...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수가 없구나..."
"아니예요. 선생님이 잘못한적이 없는걸요. 저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
나는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든 짐을 지고 살아왔을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는 이야기 외에는 할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품...정말로 따스해요. 마치 봄볕같아요"
니아브는 조용히 내 등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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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시간이 흐른후
니아브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말했다.
"마을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두 눈을 잃고 저는 어디론가 끌려나갔어요. 버려진거죠. 마을에서. 부숴질듯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가다 한계에 몰려 돌에 기대어 그저 제가 죽기만을 바랬어요. 그런데 목소리가 들렸어요"
"목소리...?"
"네. 목소리요. 환상향은 모든것을 받아줄수 있다며. 그곳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대답하였구나"
"네. 그러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리고...선생님을 만났죠"
니아브가 웃으며 이야기 했다.
"여기에 와서 후회하는것은 없나?"
"네. 마을사람들도 친절하고 다정해요. 어쩌면 신께서 저를 이곳으로 이끌어준걸지도 몰라요"
신이라...씁쓸한 단어였다.
요괴가 신대접을 받는다는걸 알면 그쪽은 어떤 반응을 보이련지...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니아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니아브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것에 대하여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딱히 주제를 이끌어나갈만한 이야기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니아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한 아이구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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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되어 나는 니아브에게 잔심부름을 시켰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걸 알지만, 4개월동안 니아브를 데리고 다니며 마을의 이곳저곳을 다닌 덕분에 그 아이는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 위치정도는 간단히 외우고 있었다.
심지어 몇 걸음을 걸어야 도착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정도라면 한번 믿어봐도 되겠지'
"네? 제가요?"
"아...어려우면 안해도 된다."
"아니예요!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거예요!"
니아브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행인 반응인걸까?
"그...그런가. 그러면 부탁한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니아브가 활기찬 목소리로 타박타박 집 문을 나섰다.
걱정되긴 했지만 스스로 잘 해내리라 믿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섣불리 내린 결정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될줄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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