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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리의 봉인이 풀린지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법도를 설파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종교를 전파하는 일도 다른 종교에 비해 수월하게 풀리곤 했다.
분명 신토나 도교는 이를 악물고 분해할지도 모르지.
토라마루 쇼우. 명련사의 본존불이자 비사문천의 대리인.
본존불로 있을때는 침착하고 냉정한,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자한. 불상이 살아난것과 같은 모습을 하지만, 막상 일상생활을 보자면 맹하고 얼빠진 호랑이와 같은모습이었다.
술고래에 자주 난폭해지며 때로는 히지리의 의견에 반발하여 언성을 높히는 다혈질적인 면모도 보였다.
명련사의 일원들은 토라마루의 성격때문에 큰 고민에 빠졌다.
"토라마루의 언행이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어 언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하지 않을까?"
맨 먼저 명련사의 큰 고민거리의 해결을 제안한 자는 이치린이였다.
"만약 쇼우가 자신의 잘못됨을 알고있다면 언젠가 뉘우칠수 있겠지요. 저는 그것을 믿고있답니다. 누군가의 개입이 아닌 스스로가 반성하여 고쳐지는것"
하지만 히지리는 그것이 심각한 문제인것을 알고있음에도 쇼우가 스스로 뉘우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제 의견은 그것뿐입니다. 다른 의견은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이치린은 히지리의 의견에 못마땅했지만 언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무슨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재적으로 고민거리를 떠안고 있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채 명련사의 하루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은 그날 터졌다.
"주인. 오늘도 수고했다. 정말로 저쪽에서 본존불의 역할을 할때와 일상을 보낼때의 성격이 다르구나."
"놀리지 마세요 나즈린...저도 제 자신을 절제하려고 노력중이랍니다."
쇼우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히지리의 봉인이 풀리기 전까지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죠. 그때 제 성격이 이리 난폭해진게 아닐까 하는데요"
"바보같은 소리마라 주인. 주인은 1000년전부터 똑같은 성격이였다. 때문에 내가 많이 애먹지 않았던가"
"하하하 그랬나요?"
"말도마라. 오히려 1000년의 세월동안 성격이 죽었다고 해야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군. 그때와 같은 야성은 찾아볼수도 없으니"
나즈린이 쇼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히려 지금은 그 야성을 잘 억제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점점 성장해나가는 그런 주인이 좋은거다"
나즈린이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차. 깜빡하고 다음주 식재료를 사오는걸 까먹었다! 금방 다녀오겠다 주인!"
"아니요! 제가 다녀올게요."
"본존불이 직접 마을로 내려갈수 있겠나?"
"물론이죠! 맡겨만 두세요!"
"그렇게 이야기한다면야...불안하지만 맡겨보겠다 주인. 본능을 억누르며 조심해라"
"맡겨만 두시라니까요..."
쇼우는 천천히 숲속으로 들어가 인간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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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마을.
명칭만 인간 마을일 뿐 여러 요괴들도 마을의 시설을 애용하곤 했다. 인간과 요괴가 유일하게 적이 동지로 보낼수 있는 장소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마을을 벗어나는 즉시 인간은 숨어있는 요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테니까
"에...이거랑...이거 주세요"
"하하. 저기 절에서 늘 서있는 요괴 아닌가? 다시보니 반갑군그래."
"하하...네 저도 반갑네요"
쇼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제 본성을 억눌러도 절에서 본 인간들보다 더욱 많은 수의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리가 따를거같았다.
"그럼 다 됬고! 모두 5관이야!"
"아 감사합니다."
값을 지불하고 상점을 나와 마을을 벗어나던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어. 이게 누구야? 땡중의 똘마니 아니신가?"
쇼우가 발끈하여 뒤돌아 보았다.
마을 남성 3명이 껄렁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하하하. 정말 웃겨. 종교 설파니 뭐니 해서 마을을 들쑤시질 않나 정작 절에 가봤더니 있는건 요괴 투성이잖아?"
"그쯤되면 명련사라고 하는게 아니라 요괴사라고 해야하는게 아닌가?"
일행은 쇼우가 들으라는듯이 크게 이야기 했다.
그러고서는 서로 어깨를 치며 와르르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어? 왜그러시나. 그토록 열렬하게 모시는 '땡중'이 모욕을 받으니 화가 치솟나?"
"너희들...그만하는것이 좋을것이다"
쇼우가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하? 왜? 공격이라고 하시려고?"
"해봐! 해보라고 호랑이 새끼야! 제까짓게 아무리 날뛰어봤자야! 여긴 인간 마을이라고! 네놈이 함부러 날뛰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너뿐만 아니라...그 '요괴사'까지 홀랑? 캬하하하하하하!!"
"적당히 하라고 했다...인간...!"
쇼우는 본능적으로 분노를 억눌렀다.
이를 악물다못해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머리털은 쭈뼛쭈뼛 치솟기 시작했다.
"꼬우면 덤벼보라고 요괴년아!! 제까짓게 덤벼봐야..."
"함부러 나대지 말라고 호랑이씨. 우리는 댁네가 정말 마음에 안들어"
"야. 근데 그쪽 요괴사 전부 여자들만 있지 않냐? 그러면 걔들이 과연 그냥 말로만 사람들을 모으겠어?"
"호오? 과연??"
"이...이자식들..."
이제 한계다. 본능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먼저 이쪽을 건드린건 그쪽이니까.
"적당히 하라고 했다아아아!!!"
쇼우가 창을 빼들어 한 사람에게 집어 던졌다.
창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사내의 어깨를 꿰뚫고 벽에 박혔다.
"으..."
일행이 공격을 받은 사내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분노에 휩싸인 요괴가 엄청난 힘으로 청을 던진 위력은 굉장했다.
보통이라면 구멍만 뚫리고 말 상처는 크게 벌어져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듯 덜렁덜렁거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런...미친 새끼! 진짜로 공격했어!!"
"마을 사람들 불러와! 저 빌어먹을 자식을 죽여버리겠어!!"
사내의 비명과 일행이 외치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한테 어우러져 아득하게만 들려왔다.
거친 숨을 내쉬던 쇼우는 이윽고 제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피범벅이 되어 팔을 싸매쥐고 있는 사내. 비명을 지르는 여인들과 연장을 들고 달려오는 장정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제...젠장..."
쇼우는 풀린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일어선뒤 재빨리 마을 바깥으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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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닌걸까? 추격이 뜸해진 틈을타 명련사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하아...하아..."
명련사의 입구에서 나즈가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주인."
나즈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따뜻한 환영인사나 그런것이 아닌 싸늘한 한 마디였다.
"마을에서 사람을 공격했다고 들었다. 그게 진짜인가?"
"그건...그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서..."
"나는 소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물어봤지 변명을 들으려고 하는것이 아니다"
"..."
"..."
나즈린은 쇼우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진짜...입니다. 제가 공격했습니다. 그들을"
나즈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제정신인가 주인."
"..."
"주인은 비사문천의 화신이다. 비사문천을 대신하여 지상으로 보내진 존재란 말이다. 그런 존재가...사람을 공격했다?"
"..."
"제 정신인가 주인!!"
나즈가 달려들어 쇼우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본능을 억제하라고...주의하라고 몇번을 이야기 했던가!! 이제 종자의 말은 우습다 그건가?"
쇼우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할수가 없었다.
"정말로...나는...잠깐 주인"
나즈가 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탑은 어디있는가"
"보...탑?"
쇼우가 품을 뒤져보았다.
없다. 보탑이 없다.
다리가 풀려 넘어졌을때 떨어트린건가?
그렇다는건 마을에...!
"보탑이..."
"없나? 보탑이 없나?"
"...네..."
나즈가 움켜쥔 멱살을 풀었다. 그리고 강하게 뺨을 때렸다.
"비사문천의 화신이라는 사람이...사람을 공격하고 명련사의 이름을 더럽히고...보탑까지 잃어버리셨구먼..."
"나즈린...저는..."
"듣기싫다! 어떠한 변명도 듣기 싫단 말이다!!"
나즈가 외쳤다.
외침이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이런 한심한 자를 주인이라고 모신 내가 바보였다."
"나...즈...?"
쇼우가 나즈를 불렀다.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나는 떠나겠어. 너같이 한심한 녀석을...내가 주인이라고 1000년동안 따랐단 말인가...!"
나즈린은 쇼우를 지나쳐 절 문앞을 나서며 말했다.
"평생을 후회속에 빠져 살도록해..."
쇼우는 떠나가는 나즈린을 불러 세울수도 돌아볼수도 없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목을 타고 올라오지만 쇼우는 그것을 끄집어낼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하지만 쇼우는 자신의 볼을 타고 흘러내려오는것이 눈물인지 아니면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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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잠시 장편은 쉬고 단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생각할때는 작디 작은 분량이었는데 왜 막상 쓰고나니 호랑이처럼 커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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