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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났네요.」 「일부로 찾아온 주제에 그리 말하지 마라.」 「어머, 쌀쌀 맞아라. 하지만, 그런 점도 싫진 않아.」 「스승님, 저 여자는 또 누굽니까?」 아침부터 찾아온 불청객에 기예유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달갑지 않아했다. 머지않아 그쪽에서 찾아올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식으로 예고 없이 불쑥 튀어나오다니. 성에 있을 때도 봤었지만, 그녀의 신출귀몰함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공간을 찢어 가르며 나타나는 불길한 틈새.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생겨난 그 틈새는 순식간에 사람 하나 정도 쉬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냈고, 그 안쪽은 기분 나쁜 눈이 득시글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마의 장소임을 알게 했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이 불청객. 기예유가 흑막이라 지목했던 평범하지 않은 여자였다. 안 그래도 어젯밤 주점에서의 소동 때문에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터라, 썩 좋지 않은 기분인데, 이런 식의 기괴한 등장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심기에 거슬렸다. 기예유는 달가워하지 않는 자신을 상대로 능구렁이 같이 구는 여자에게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 「날 찾아온 용건이나 말해라.」 「성미도 급하시네요. 그 보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데. 통성명이나 하죠.」 여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틈새 요괴. 야쿠모 유카리라고 합니다.」 어제 성에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여자는 너무나 요사스러웠다. 경국지색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그 미색은 곱게 차려입은 기모노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야쿠모 유카리는 그 특출 난 힘을 제하고도 미모만으로도 나라를 망하게 할 요물이었다. 여자가 먼저 자신을 이름을 밝혔으니 기예유도 예의상 자신의 이름을 댔다. 「나는 당에서 온 기예유라 하는 요괴선인이다.」 「어머나, 먼 곳에서 오신 분이셨네요.」 유카리가 손뼉을 쳤다. 당나라라고 하면 바다 건너 멀리 신라를 지나쳐야 당도하는 대륙의 국가로 그 국력은 이곳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국인데. 그 나라 사람이 보기엔 촌구석이나 다름없는 이곳 까지 무슨 연유로 온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기예유님은 아주 무서운 대요괴이시죠?」 「음.. 대부분의 요기를 숨기고 있는데 알아 본 건가?」 「제가 눈썰미 하난 좋거든요.」 숨기고 있다고는 하나, 겉으로 당장 풍겨 나오는 위압감은 절대로 일반 요괴 정도가 아니었다. 그 범상치 않은 위압은 태어난 이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삼귀자 스사노오의 손에 죽은 야마타노오로치가 저 만치의 위압을 가졌을까. 지금의 이 나라엔 저만한 대요괴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유카리는 사실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여유를 부린다고 하나, 눈앞에 저 대요괴는 마음만 먹으면 자기 정도는 손쉽게 해치울 힘을 가졌다. 자신의 신출귀몰한 능력으로도 도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저 대륙에서 건너온 기예유란 요괴는 실로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자신의 계획도 손쉽게 없애버리겠지. 그렇기 때문에 저 대요괴를 설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계획에 보탬을 줄지도 모른다. 유카리가 보는 기예유는 단순히 강대한 패력을 휘두르는 패자가 아닌 지혜롭고 현명한 쪽의 대요괴로 보였으니까. 그런 희망이 있었기에 유카리는 적극적일 수 있었다. 아침 일찍 부터 그를 찾아온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그의 제자로 보이는 저 오니 소녀였다. 이제부터 꺼낼 얘기는 오니가 듣기엔 그다지 재밌는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을 무시한 채, 스승과 둘이서 대화중인 유카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오니 소녀가 말했다. 「역시 그런 건가... 스승님. 저를 주점에 두고 간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또 무슨 헛소리를 꺼내려는 건지. 기예유는 제자의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대답을 끌어내는 물음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단순히 습관적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중대한 실책이었다. 기예유는 제자의 언변이 상놈들 뺨칠 만큼 저질이란 것을 알기에. 자신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여자 앞에서 자기 체면까지 구겨질 저급한 패설이 이제 곧, 제자 입에서 나올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런 스승의 맘도 모르는지 스이카는 눈치 없이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제자 몰래 밀회를 즐겼던 거군요. 그것도 저리 이쁜 여자랑.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스승님은 소녀 성애자도 남색가도 성불구자도 아니라는 것을.」 저 무슨 망발을!? 기예유는 제자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말들이 지적할 게 너무 많은 나머지 바로 따지지 못해 그저, 입만 뻥긋 거렸다. 그러는 사이 제자의 입에서는 문제투성이 발언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스승님은 여자 보는 눈이 너무 높았을 뿐이었네요. 과연, 대륙을 호령 했다던 마왕답게 여자편력도 대단하네요. 앵간한 여자로는 만족 못했을 테지요. 저 엄청 이쁘고 찌찌도 큰 여자 정도는 되 야 눈에 들어올 정도니까.」 기예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지금 당장 땅속 깊숙이 묻어버렸을 텐데. 유카리라는 여자가 보고 있어서인지 쉽게 손이가지 않은 채, 그저 으음. 하고 신음만 삼킬 뿐이었다. 유카리는 그런 기예유의 얼굴을 약간 흥미로운 얼굴로 쳐다보며 제자라는 오니가 늘어놓는 오만불손한 얘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야~, 아무튼 스승님 정말 대단합니다. 저런 절세미인을 또 언제 꼬셨대요? 분명, 스승님께서 한 눈에 반했을 테지요. 그래서 어제 그리도 감상적이었던 거군요. 그윽한 눈길로 꽃향기를 음미하는 그 소녀 같은 스승님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요. 그때 꽃향기를 맡으면서 했던 생각이 저 여자의 보ㅈ..」 「으흐음 ─ !!」 스이카가 정말로 위험한 단어까지 끄집어내려고 하자, 기예유는 헛기침 소리를 크게 내어 잽싸게 저지했다. 제자 년은 정말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못 할 소리가 없었다. 그것도 여자가 보는 앞에서 외설적인 이야기를 하려들다니. 이거 나중에 단단히 혼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기예유였다. 그런데. 쿠쿠쿡. 야쿠모 유카리가 이 어처구니없는 촌극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해 어깨를 들썩였다. 기예유는 그 웃음에 자신의 체면이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화난 얼굴로 제자를 탓했다. 「이년아! 네가 쓸데없는 소릴 하는 바람에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에에~, 전 사실을 얘기한 거뿐인걸요.」 「사실 좋아하고 있네. 네 저질스런 망상을 주절댄 거 뿐 이잖느냐!」 「스승님. 저는 서지 않는 스승님이 실은 저 정도로 이쁜 여자여야 서는구나 하고 납득해서 한 얘기입니다.」 「예끼! 그게 망상이라는 거다!!」 「아.. 망상이라니.. 그러면 스승님은 저런 이쁜 여자한테도 안 선단 말인가요?」 「.. 이 못난 제자가! 왜 자꾸 화제를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게냐! 내가 언제 안 선다고 말하디?! 이.. 이잇-!!」 기예유는 제자의 엉뚱한 반박에 더는 참지 못하고 힘을 실은 주먹으로 스이카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그러자 콰앙! 하는 커다란 파공음과 함께 땅속 깊숙이 사라져 버리는 스이카. 그 가공할 위력에 옆에서 웃던 유카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놀라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미묘한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으아아아아앙 ─── !」 이번엔 귀를 찢는 울음소리가 스이카가 파묻혀있는 땅 구멍으로 부터 울려 퍼졌다. 그 쩌렁쩌렁한 소리에 유카리의 시선은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고, 그 땅 구멍으로 부터 무수히 많은 흙과 함께 스이카가 솟아 올랐다. 공중에서 몇 바퀴 회전 하여 착지한 스이카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씩씩 거렸다. 「저는 스승님이 이제야 남자답게 구는 모습에 기뻐서 한 말인데.. 망상이니 뭐니 하면서 때리시다니! 너무한거 아닙니까?」 「이년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내가 언제는 남자가 아니었더냐?」 스이카가 씩씩대는 만큼 스승인 기예유도 씩씩 댔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노려보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제삼자인 유카리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웃겨 어깨가 절로 들썩이며 절조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크크크.. 아하하하!」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제자도 제자지만, 그 제자에게 말려들어 약이 오른 스승이야말로 걸작이 따로 없었다. 이런 촌극은 어디에도 볼 수가 없을 거다. 이 둘은 언제나 저런 느낌인 걸까? 제자에게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기예유의 모습에선 그전까지의 위압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희한한 일이지만, 저 거구의 사내가 귀엽게 보일 지경이었고. 지금 유카리의 머릿속에는 '기예유쨩 카와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을지도 모를 노릇. 그러나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를 유카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기예유는 한 참을 제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삐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이를 들여내며 이이- 거리며 심술부리는 제자를 한 대 쳐서 나자빠지게 만든 것 까지. 기예유는 아주 단단히 삐쳤다. 스이카는 맞아서 얼얼한 코를 문질거리며 스승에게 볼멘소리로 항의하다 또 한 대 맞는 결말을 맞았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웃지 않고는 못 배길 하나의 희극이었다. 기예유가 유카리의 포복절도를 알아차린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기예유와 유카리는 말이 없었다. 한 쪽은 제자 년 때문에 보여선 안 될 추태를 보였고, 또 한 쪽은 방정맞게 웃어댔으니 창피함을 느끼는 건 서로가 피차일반이었다.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된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카리였다. 「그럼, 본론을 얘기하겠어요.」 유카리는 자신의 목적을 상기시켜 아까의 부끄러운 감정을 떨쳐내었다. 평정을 되찾은 그녀의 목소리는 사무적이며 또 도도했다. 그런데 유카리와는 달리 기예유는 아직도 쪽팔리는지 유카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으흠. 음. 그러지! 멋쩍게 웃으며 어색해했다. 그 침착치 못한 행동에 스이카가 한마디 한다. 「왜 그렇게 수줍어하세요?」 스이카는 저런 스승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스승님은 저 야쿠모 유카리라는 여자에게 진심으로 빠져있나 보다. 그야 그럴게 지금 스승님의 모습은. 「마치, 좋아하는 애 앞에서 말 한마디 못 건네는 수줍은 청춘 같아.」 그 말대로 기예유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순박한 청년 같지 않은가. 유카리는 스이카의 말에 공감을 했는지 풉 하고 실소가 새어나왔다. 천지를 뒤엎을 힘을 지닌 대요괴가 수줍은 청춘이라니. 이건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했다. 「아.. 배가...」 아까 너무 웃은 탓일까? 유카리는 배가 당겨오는 통증에 허리를 숙였다. 저 사제 간은 나를 웃겨 죽일 셈인가. 의도하지 않았다곤 하나 유카리를 저 지경까지 웃음 짓게 만든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녀는 태어난 이후 지어왔던 웃음이라곤 조소 아니면 능청이었으니까. 오늘 같이 허심탄회하게 웃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 우스운 꼴을 보이고 말았구나. 기예유는 배를 부여잡고 거친 숨을 뱉어내는 유카리를 원망 섞인 시선으로 노려봤다. 이대로 웃음거리가 되어서 어쩌잔 거냐. 후회가 밀려왔지만, 지금 부터라도 위엄을 되찾지 않으면. 기예유는 흡! 하고 짧은 외마디 기합과 함께 원래의 대요괴. 기예유로 돌아왔다. 유카리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위압감이 돌아온 것을 느끼며 얼굴에 만연한 웃음기를 지웠다. 「똥을 싸세요. 똥을 싸~」 달라진 분위기에 유카리는 더 이상 웃지 못했지만, 아까의 기합 소리가 똥 싸는 소리라고 놀려대는 제자만은 여전했다. 그 뒤로, 기예유가 소환한 도철에 의해 『쿠아앙!』하는 파공음이 연달아 울려 펴졌고, 스이카가 떡이 된 것은 너무나 눈에 선한 결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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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불기분방의 스이카. 1 - 꽃향기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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