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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스이카의 스승이었던 기예유가 그녀를 회상하기를. 「내 앞으로도 그렇게 제멋대로인 제자를 보지 못할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수만의 요괴도 정령도 야차도... 그 사흉 조차도 내 이름 석 자에 벌벌 떨었는데 그 오니 소녀 하나만은 어찌하지 못했다니까.」 혀를 끌면서 질색을 하더라. ------------------------------------ 「내가 미안했어.」 땅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열 하고도 다섯 번. 그제야 스이카 입으로 부터 항복 선언이 들려왔다. 처음 땅 아래에 박혔을 때 잘못했다며 빌었어야 했는데. 저 오니년은 이렇게 최소 열 번은 넘게 때려 박아야 겨우 제 잘못을 인정한다는 거다. 기예유는 도철을 거둬들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내가 저 싸가지 없는 오니년을 제자로 거둬들였을까? 운명을 느꼈다곤 해도 간혹, 저렇게 까불어대면서 속을 썩 힐 때면 후회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그래도 그럼에도 파문 시키지 않고 스승과 제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저리 까불어대도 밉지 않다는 것이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물론, 제자의 재능이 워낙 출중한 것과 능글맞고 낙천적인 성격도 한 몫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금강력으로 유명한 오니라도 평범한 녀석이었다면 머리통이 산산조각 날 정도의 주먹을 열 다섯 번이나 받아낸 스이카는 그 대단한 돌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 스승님은 절대 소녀 성애자 따위가 아니야.」 「아니, 넌 정말 스승을 그런 눈으로 봤다는 거냐?」 기가 찼다. 그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소녀 성애자로 생각 했었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자신을 그렇게 볼 수 있는 건지 기예유는 자신의 행동에서 제자가 착각할 만한 점이 있었나하고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역시 알 수 없었다. 스이카는 사뭇 심각한 얼굴의 스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안 건데. 스승님은 그 뭐야.. 안 서는 쪽이었어.」 「으응. 그게 또 무슨 소리냐?」 방금 그렇게나 자신에게 맞아놓고 겨우 잘못을 빈다 싶더니 또 무슨 헛소리를 내뱉으려고 저러는 건지. 도철을 다시 만들어내며 예의주시하는 기예유. 그런 스승의 위협적인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 스이카는 당당한 얼굴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주저 없이 내뱉었다. 「그니까.. 남자 노릇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었던 거야. 아니지. 벌써 그럴 나이일지도.. 그야 남자라면 아침 마다 건강해야 하지만, 스승님은 그런 게 없었잖아?」 「너.. 내가 성불구자라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거냐?」 「안 서잖아요. 안 서면 당연히 그 쪽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거 아네요?」 소녀 성애자에 이어 이번엔 성불구자라니. 저 제자란 오니년은 스승을 비정상으로 만들고 싶어 환장한 게 분명했다. 스승의 얼굴이 험악해 지는데도 스이카는 여전히 당당하기만 했다. 「꽃향기나 맞으면서 다 죽어가는 소리를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 제자는 스승님이 그런 나이인 줄 몰랐습니다. 이제 서지도 않는다니... 얼마나 상심이 컸을지 소녀 그 슬픔을 가늠하지 못합니다.」 쿠앙! 도철의 커다란 손바닥이 스이카를 양옆에서 동시에 찍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스이카를 양 주먹을 모아 그대로 땅바닥 아래로 내려찍는다. 그로 인해 땅 아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기어들어가 버린 스이카는 「아픈 곳을 찔렸다고 이러는 겁니까!」하며 절규를 내 질렸다. 아픈 곳은 무슨. 성욕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을 뿐인 자신이 성불구자와 같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혹시나 너무 오랫동안 자제해온 덕분에 진짜로 안 서게 되어버렸는지 조금 걱정이 드는 기예유였다. 정말로 저 제자년 말대로 성불구자가 된 건 아니겠지?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타구니 쪽으로 쏠렸다. * 술! 술이 먹고 싶어!! 땅 속에서 힘없이 기어 나온 스이카가 이번엔 술타령을 했다. 벌써 목구멍으로 술이 안 들어 간지 오래되었다며 곡소리를 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산에 있으면서 술이나 공양 받고 있었을 텐데..」 술이 마시고 싶어. 말끝 마다 그렇게 외쳐대는 스이카를 보며 기예유는 짜증이 났다. 「네가 좋다고 따라오지 않았느냐?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거라.」 술을 못 마신지 이제 하루 밖에 안 지났건만, 갑작스레 금주증상에 시달리는 제자를 보니 안 서는 자신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슈텐이라는 이름처럼 천하의 애주가인 제자는 아까까지 멀쩡하더니 어느 순간 저러는 통에 여간 골머리가 아니었다. 하는 수없이 저 징징 짜는 입을 틀어막기 위해 풍류는 고사하고 술을 보충할 인근 고을로 발길을 서두르기로 했다. 저 제자년이랑 같이 붙어 다니는 한 마음 편히 풍류를 즐길 날은 없겠구나. 들에 핀 꽃을 하나 따서 빙빙 돌려대던 기예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술타령을 하는 스이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곧 그 입안에 술을 부어 줄 테니 그만 좀 울 거라.」 탓. 하고 땅을 박찬 기예유의 몸이 스이카와 함께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 한 달음에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축지법. 그거랑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보법으로 하늘을 내달리는 기예유. 발에는 하얀 안개가 서려있어 신선들이 타고 다닌다는 구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발을 중심으로 몸을 하늘과 동화 시켜 바람을 타고 다니는 요술. 먼 거리도 빠르게 오갈 수 있는 신통력지만, 요력의 소모가 심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러나 기예유는 그 단점을 상쇄할 정도로 방대한 요력을 자랑했다. 제자인 스이카의 몸마저도 하늘과 동화 시켜 같이 이동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천행보(天行步). 기예유는 이 보법을 그리 이름 지었다. 언덕길에서 인근 마을의 입구 까지 짧은 시간 만에 도착한 기예유는 천행보를 거두고 잡고 있던 스이카의 목덜미를 놓았다. 스승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스이카는 켁켁 거리며 기침을 한 차례 늘어놓더니 목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려보았다. 「갑자기 천행보로 내달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리고 목 좀 살살 잡으시지.. 목 뼈 나가는 줄 알았어!」 스이카가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에 기예자는 스이카의 뒤통수를 퍽 소리 나게 치고 나서 한마디 했다. 「닥치거라.」 조용하게 내뱉은 이 한마디는 어디 비할 데가 없을 만치 박력이 있어 스이카는 저도 모르게 늘어놓던 불만을 도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도 술을 찾는 제자를 위해 마을까지 데려왔는데 뭔 불만이 그리 많아.」 선심을 썼다고 말하는 스승의 말에 스이카는 얌전히 머리를 긁적였다. 비록 갑자기 닭모가지 잡히듯 목을 잡혀 끌려온 행색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술이 있는 마을에 오게 되지 않았는가. 목이 아니라 팔이 잡혔었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아.. 그러네요.」 어쨌든, 술이 있는 마을까지 한 달음에 오게 된 것은 스승의 덕이었다. 오늘 하루 술을 마시지 못해 괴로웠는데 잘 됐어. 「벌써 부터 달달한 술의 향이 느껴져..」 흐느적거리며 마을로 들어가려는 스이카를 「이년아!」하며 스승이 제지했다. 「왜 막아요?」 「몰라서 물어? 그렇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어딜 들어가려는 거야.」 기예유는 제자의 뿔을 보며 주의를 줬지만,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갸우뚱 거리며 「에에?」하더니. 씨익 하고 웃으며 하는 말. 「제가 너무 귀여우니 조심하라는 거죠? 이그~ 스승님도 차암. 제가 누굽니까? 천하의 슈텐이 인간 남정내에게 꼬셔질 것 같나요.」 자신의 뿔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천연덕스런 모습을 보였다. 아이고 두야. 제자의 얼빠짐에 기예유는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주물 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의아해하는 눈으로 보고 있는 스이카의 뿔을 잡아 쥐고서 사정없이 흔들어대며 말했다. 「이 뿔을 보고 누가 널 꼬시려 든다고 그러냐.」 그것도 오니. 천하의 슈텐인데 대낮에 마을을 돌아다녔다간 큰 소동이 일어날 것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기예유는 이어서 '행동거지가 상스러워 꼬실 남자가 있을 리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스승이 뿔을 해방시켜주자 스이카가 머리를 휘휘 내젖고 따지 듯 대꾸했다. 「뿌.. 뿔이 문제라면 가리면 되잖아요! 아..참..」 말을 내뱉고 보니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뿔은 가려서 될 수준이 아니었다. 노루 저리가라 할 수준이라 둔갑술로 다른 무언가로 둔갑시키지 않는 한 너무 눈에 띈 다는 것이다. 「내 그렇게도 네 뿔 정도는 감출 둔갑술을 익혀 두라 그랬거늘.」 기예유가 뒤늦게 문제점을 눈치 챈 제자에게 쓴 소리를 들려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이카는 둔갑술을 전혀 익힐 수 없었으니, 이는 요수가 아닌 요괴들이라면 공통된 부분이었고 스승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머리의 뿔 정도는 감출만한 둔갑은 배울 줄 알았는데. 「안 되는걸 어떡합니까? 아.. 대신이라지만, 다른 요술은 내 스승 뺨치게 잘 하잖수!」 자신하며 들려준 제자의 말대꾸에 기예유는 머리를 끄덕이며 인정 안 할수가 없었다. 대신이라고는 하지만, 둔갑술을 제외하고는 더는 가르칠게 없을 만큼 잘 하니까. 몇몇의 요술은 이미 자신을 초월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 다 잘 할 수야 없지. 기예유는 제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양 뿔에 각각 손을 얹었다. 그리고 뿔에 얹어진 손에 요력을 발하여 둔갑술을 행했다. 뿔은 점차 그 모습을 바꾸어가더니 만두 형태의 땋은 머리로 변해버렸다. 곧 이어 스승도 자신의 뿔을 둔갑시켜 그 모습을 지웠다. * 마을은 낮인 데도 한산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작은 고을이라 대부분의 장정들이 농사일에 힘쓰느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땡볕에 땀이 물처럼 흐르는 날에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정도면 이상하지 않은가. 간혹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아녀자들 뿐.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스이카가 의문을 가지며 스승에게 묻길.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여인국이란 곳이요?」 하고 자신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쪼그만 여자애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자만 있다면 애는 어떻게 만들겠냐?」 「그거야. 씨 뿌리는 색정마 하나가 기어 들어왔겠죠.」 「허이구, 넌 그런 식으로 밖에 생각을 못하지?」 제자란 년은 생각하는 게 꼭 저렇단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영 이해 못할 것도 아닌 게. 당장 눈에 보이는 인간들이 어린애부터 늙은이 까지 죄다 여자들 뿐이니 그렇게 느낄만 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나. 기예유는 마을에 무슨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는 주점으로 향하는 발길을 서둘렀다. 키가 원체 크니 조금 속도를 올린 것만으로도 스이카는 그 걸음을 따라잡기 위해 종종걸음도 아닌 뜀박질이 되어야 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스승의 등을 보며 스이카가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그리도 급하디요? 어차피 서지도 않아 씨도 못 뿌릴 거면서!」 「뭐..!?」 뒤에서 들려오는 엄한 소리에 욱하고 그만 도철을 소환할 뻔 했으나, 이를 악무는 것으로 겨우 참아 넘기는 기예유. 술타령이나 하며 졸라대던 년이 스승이 좀 서두른다고 못할 소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을 안에서 소동을 벌일 수는 없으니. 방금 한 말에 대한 대가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중에 마을을 나오고 나서 보자. 쉽게 못 나올 정도로 아주 깊숙히 묻어버리고 말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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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불기분방의 스이카. 1 - 꽃향기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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