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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말이 좀 지나쳤나? 한 손으로 황급히 입을 막고 스승의 반응을 살피는 스이카. 꽃향기를 음미하며 시상을 떠올리는 얼굴을 보니 괜 시리 장난기가 도져 한 말이었는데, 막상 내뱉고 보니 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스승인데. 제아무리 관대한 스승이어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야. 이쯤에서 '이놈!'하는 호통과 함께 뒤질 만큼 얻어맞는 일만 남았다. 스이카는 곧 닥쳐올 후폭풍을 예상하고 양팔로 얼굴을 막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지축을 울리는 요력과 함께 강력한 주먹이 자신의 머리를 짓누를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에휴~」하는 한숨 소리만 들려왔다. 「스승님, 무슨 일 있는 거야?」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는 다른 스승의 모습에 스이카는 위화감을 느끼며 물었다. 「아니다. 그냥 화내기도 귀찮은 거뿐이다.」 정말로 귀찮은 듯이 기운 없는 어조로 툭 내뱉는 기예유. 손으로 눈가를 주무르며 제자에게 참으로 안타깝다는 시선을 던졌다. 「네가 예의 없고 상스럽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자 아니냐?」 「응, 스승님 말대로 여자지. 그것도 아주 귀여운!」 「자기 입으로 귀여운 여자라 말하는 주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경망스런 말을 내뱉는 거냐?」 「왜? 그럼 안 돼?」 어휴~.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에 기예유는 절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럼 안 돼?라니 스이카의 사고방식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오니들이 전부 저런 식인 건지. 기예유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입을 다셨다. 어차피 알아먹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제자의 잘못됨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최소한 자기 자신이 여자라는 자각이라도 가졌으면. 초롱거리는 제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입을 열었다. 「너 보고 조신하라고는 안 할 테니까 잘 듣거라. 분명 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요괴다. 허나, 동시에 여자이기도 하지. 겉으로 보기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모습인데.. 어찌, 왈패들이나 쓰는 상스런 말만 골라 하는 거냐?」 말이 끝을 맺자, 스이카가 제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미간은 살짝 찌푸린 채, 스승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오늘따라 참 이상하시네요. 가을도 아닌데 감성적인거 하며 뻔한 잔소리 까지 늘어놓고. 아니, 정말로 무슨 일 있어?」 「으음.. 아무 일도 없다니까. 네가 하도 한심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한심스럽다니요? 제 어디가??」 「두 말하게 만들지 말거라. 네 여자답지 않는 점이 말이다.」 「예에-?, 이 무슨 섭섭한 소리입니까? 이렇게 천상여자를 여자답지 않다고 하다니.」 눈을 크게 뜨고 언성을 높이는 스이카. 본인은 정말로 천상여자다운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쯧쯧. 기예유가 혀를 차며 말했다. 「네 어디가 천상 여자냐? 말 같은 소리를 하거라.」 「어디가라뇨? 이렇게 귀여운 데!」 스이카는 싱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살짝 꺾어가면서 귀엽게 보이려 애썼다. 양손으로 예쁘게 턱을 받쳐보기도 하고 양 볼을 부풀려 입술을 앞으로 쭉 내미는 등, 보는 쪽에서 심하게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맘 같으면 인중에 정권을 날리고 싶을 정도로.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묻어버리겠다.」 기예유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와 동시에 드드드 하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기예유의 살기에 반응하여 요력이 요동친 것이다. 조용한 어조였지만, 살의는 진짜였다. 그 살기가 담겨진 무서운 요력에 '윽.' 스이카의 안색이 나빠졌다. 조개와 아녀자 거기 등을 언급하며 놀려댈 때는 화내지 않던 스승이 왜 자신의 귀여운 행동에는 저리도 분노하는 것일까? 내가 너무 귀여워서 유혹 당할까봐 저러시나? 스이카가 이런 어이없는 착각을 하고 있을 때, 스승이 살기를 거둬들였는지 드드드 울리던 지축은 평화를 되찿았다. 살기에 놀라 귀여운 척을 그만두자 마자였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살기를 뿜어대더니 금세 거둬들이는 건 뭐람? 그렇게도 자신의 귀여움이 감당 안 되었던 걸까? 스이카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스승님도 남자긴 남자네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방금, 제가 애교를 떠니까 살기를 내보내며 분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근데, 애교를 멈추자 마자 어째 찬물을 끼얹은 듯이 픽 식어버린 겁니까?」 「이년아! 네가 조금만 더 그 지랄을 했더라면 당장 묻어버리려고 했다. 헌데 네가 알아서 그만둬 줬으니 봐준 게야.」 「흐흐흐.」 갑자기 입가를 늘리며 낮게 웃는 스이카. 「뭐가 또 우습다고 그러냐?」 저 웃음은 필시 자신을 놀리려는 생각으로 흘린 거겠지. 하지만, 기예유는 제자가 또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자신을 놀리려 드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스이카의 웃음이 흐흐흐에서 하하핫으로 높아졌다. 「에이~, 쑥스러워 하시긴요. 실은 제가 너무 이쁘고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신 거잖아요~.」 「......」 이 년이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자신의 경고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 들였기에 저런 정신 나간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기예유는 너무도 기가 찬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선인이라고 사타구니에 달린 ↗을 평생 쓰지 않을 것 처럼 굴더니만, 어떻게 저한테 반응을 한디유~. 제가 귀여운 건 사실이지만, 제자한테 그런 흑심을 품다니. 혹시.. 나와 같은 소녀 쪽이 취향이었어요?」 「.....」 「어쩐지, 여행 중에 만났던 늘씬하고 성숙한 처자에게 눈길 한 번 안 준다 싶더니만.. 음... 납득했어. 스승은 소녀성애자였어!」 손뻑을 치며 확신하는 스이카를 보며 기예유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정말 가관이 따로 없었으니 말이다. 자기 더러 귀엽다니 하는 소리는 그렇다 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제자는 기예유 자신이 봐도 상당히 귀여운 편이니까. 헌데, 자신이 자기한테 반해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소녀성애자란 말이 왜 나오냔 말이다. 허허허. 기예유는 얼 척이 없는 나머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제자년이 제대로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장난을 치며 놀리고 있는 건지 몰라도 이건 한참 잘못 되었다. 오랜만에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혼 구녕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지도. 「여색을 밝히지 않을 뿐이지 그걸 어찌 소녀만 밝히는 거라 생각하느냐?」 「ㅁㅁ 큰 년이 달라붙어도 안 서는 스승님이 제 애교엔 부담스러워 하시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허허. 네 애교가 부담스러운건 참으로 두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역겨워 서니라!」 드드드. 기예유의 요력이 요동치며 지축이 흔들렸다. 「그렇게 정색하는 걸 보니 맞구나! 역겹긴요~. 실은 제 애교에 섰으면서.」 드드드드. 지축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다. 기예유가 저리도 요력을 끌어올리며 화를 내고 있는데도 스이카는 겁도 없이 입방정을 떨며 실실거리는 행색이었다. 기예자는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날 화나게 만들면 어떻게 된다는 걸 잊었느냐?」 「아.. 그게. 스승님 화내시게 한 건 죄송한데. 솔직하게 묻고 싶어요. 딱 깨 놓고 섰어요 안 섰어요?」 차갑게 얼어붙은 기예유의 얼굴은 이제 곧 제자에게 엄벌을 내릴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스이카의 입방정은 그칠 줄 몰랐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 쿠앙!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주먹이 스이카의 머리를 짓이겨 눌렸다. 주먹은 스이카를 땅속으로 밀어 넣었고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엔 그 주먹과 주먹의 주인만이 서 있었다. 주먹의 주인은 장장 8척이 넘는 거구의 야수. 거대한 뿔과 사나운 인상을 가진 대륙의 사흉(四凶) 중 하나인 도철(饕餮)이었다. 도철은 기예유가 자신의 요력으로 만들어낸 분신으로 거대한 요력의 덩어리가 형상을 갖추고 있을 뿐인 존재이지만, 결코 단순한 요술이 아니다. 사념만으로 순식간에 만들어내어 요격을 시키거나 무방비 상태에서도 방어기재로 나타나 본체를 지키는 복잡한 술식의 결정체로 무엇보다도 그 강함이란, 제자인 스이카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으아아아앙 ─ ! 아파!! 아프다고 젠장할!!!」 스이카가 뚫고 들어간 땅 구멍 안으로 부터 아픔을 호소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묻어버린다는 스승의 말 대로 정말 땅 속에 파묻혀 버린 스이카는 그 안에서 깨질 듯 한 머리를 부여 잡으며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울음을 뚝 그친 스이카가 흙무더기와 함께 지상으로 튀어 올랐다. 하늘 높이 지상으로 부터 도철의 신장의 곱절을 더 솟아 오른 스이카가 멋지게 공중제비를 돌더니 착륙 했을 땐, 양팔을 좌우로 쫙 펼치고 고개를 쳐 드는 체조 선수와 같은 자세를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멋진 착지였는지, 아까까지 울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때요? 저 멋지게 나왔죠??」 그렇게 자신의 멋진 착지를 평가해 달라는 눈빛을 스승에게 보내는 스이카. 그러나 스승은 눈길 한 번 안준 채, 쯧. 혀를 차며 차갑게 말했다. 「반성이 없구나. 한 번 더 들어가거라!」 도철이 움직였고, 스이카는 다시 한 번 땅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번엔 아까 보다 더 깊숙이 파묻혀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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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불기분방의 스이카. 1 - 꽃향기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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