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따금 다른 이들로부터, 당신은 어쩌다가 그런 몸이 되었냐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어 천으로 가려버린 눈, 상처가 곪아 썩어버린 얼굴의 상처들,
흉하게 굽어진 다리, 이제는 감각마저 사라져 제멋대로 덜렁거리는 두 팔.
누가 보더라도 인상을 찌푸리며 흉하다고 생각할, 그런 몰골이겠네요.
하지만 날 때부터 그랬던 것이기에, 특별히 설명드릴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남이 보기에 혐오스러운 몸이라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필요로 해 줄 이들이 있음을.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사랑해 준 이가 있음을. 또한 저는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 모습 그대로에 담긴 소중한 기억을.
어렸을 때부터 그런 모습으로 살아왔던 저는,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저는 아마 액덩이와도 같은 존재였겠죠.
제 모습에 지레 겁을 먹은 방문자들이, 마을에 흉측한 녀석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마을의 평판이 떨어져 버리고,
덕분에 마을에 찾아오거나 마을에서 지내려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마을의 식당이며 가게의 장사가 시원찮아졌으니까요.
게다가 눈도 보이지 않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리도 만무했습니다; 저는 그저 근처의 산에서 나물을 뜯으며 연명했습니다.
변명을 해도, 화를 내도, 저에 대한 악감정만 불어날 것이 뻔했을 것이기에, 저는 최대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찾아 숨어다녔습니다.
하지만 제가 눈에 띌 때마다 사람들은 제게 욕을 퍼붓고 매질을 했습니다.
그런 괴롭힘에도 서서히 익숙해져갈 무렵, 하루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돌 같은 것을 마구 던져댔습니다.
"네놈 때문에..." 라는 고함이 간간이 들려오던 걸로 봐서, 저를 마을 밖으로 아주 몰아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팔매질을 당해, 온 몸에 멍이 들고, 찣기어 피가 흘렀습니다.
어차피 제겐 가진 것도, 친구도, 심지어 가족도 없었습니다. 또한 제가 떠난다 해도 마을에서 슬퍼할 이는 없을 터였습니다.
저는 나물을 캘 때 쓰던 가방과 그 옆에 세워 둔 지팡이만을 얼른 챙겨,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틈을 타 슬쩍 빠져나갔습니다.
사람들 몰래 숨어다니던 작은 길을 따라, 지금껏 제가 목숨을 부지하도록 도와준 산으로.
비록 마을에 좋은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막상 익숙해진 것들을 놓고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분명 매일 들러서 나물이며 꽃을 뜯던 산이었지만, 깊은 곳까지 와 본 적이 없었던 저는 금세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몸에 난 상처들이 욱신거리며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상처를 치료할 새도 없이 도망쳐나와 한참을 해매던 사이 곪아버린 것이었겠죠.
상처를 씻어내면 아픔이 덜하진 않을까 생각한 저는, 가까이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쫓아 급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윽고 물가에 다다른 저는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저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물가에서는 두 여성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미움받던 나 같은 녀석이 다가간다면, 분명 그들도 팔매질을 하고 욕을 하며 날 쫓아낼 테지,
그리고 그 곳은 흉측한 녀석이 돌아다니는 액이 낀 장소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게 될 테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갑자기 들려오는 그들의 비명 소리에 저는 물에는 손도 대보지 못하고 미련없이 그 곳을 떠났습니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저는 이윽고 온몸의 상처가 욱씬거리며 아려와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평평한 곳을 찾아 잠시 쉴 요량이었지만, 큰 나무가 있기에 거기에 등을 기대어 앉았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녀서 저린 다리보다도, 돌이며 작대기에 맞아 짓이겨지고 아린 상처보다도,
단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 때문에 평생을 살던 곳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제 눈을 가린 - 그리고 지금껏 흘려온 피에 물들었을 - 천조각이 이내 축축하게 젖어들었습니다.
잠시 후 전 가방을 뒤져, 나물을 뜯던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냐면서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여성의 부드러운 목소리였습니다.
아마 누워있던 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 저는, 칼을 집어넣고 조심히 일어나 그 곳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녀는 재빠르게 다가와 제 앞을 막아선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제서야 제 몰골이 눈에 들어왔을 터입니다.
이렇게 또다른 누군가에게 미움받겠구나, 싶은 마음에 저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제 한숨을 듣더니, 그녀는 쿡쿡 웃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 어째서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한숨만 쉬냐고.
기가 막혔습니다. '흉물스런 것을 보았으니 어디, 한 번 질릴 때까지 놀려볼까?'하는 심산이었겠죠.
어차피 휴식도 방해받았겠다, 저는 그녀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팡이를 짚으며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웃음이 사라진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나긋하게, 자신에게는 제가 꼭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그녀는 제 옷자락을 붙잡고 다시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제가 꼭 필요하다고.
저는 그녀와 나무 아래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 아니, 사실은 그녀에게 한참동안 제 푸념과 신세한탄을 했습니다.
분명 사람들에게 미움받아 온 한 남자의, 너무나도 사소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였을텐데,
제 얘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맞고 상처입는 게 되풀이될 뿐인, 길지도 않은 제 인생의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이따금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로 불어왔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마치자, 어느새 가슴을 짓누르던 아린 고통과 먹먹함마저 사라진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그녀에게 사과했습니다 - 흉측한 것을 보게 하는 것도 모자라 따분한 이야기까지 듣게 해 버렸으니까요.
그녀는 제 손을 잡아 일으키더니, 제 주위를 천천히 돌며 제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저와 같고, 저는 그녀와 같다며.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목소리가 돌려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며 그녀에게 다시 한 번만 말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도는 것을 멈추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그녀가 걸어왔던 길과 같으며, 제가 살아온 인생 역시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같다고.
역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던 것인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제 오른손을 잡고 부드러운 천 같은 것으로 팔을 칭칭 감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는 찰나, 그녀는 조용히 제 손을 잡은 채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아까의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누군가 얘기하는 소리, 그리고 들려온 비명소리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던.
쉿, 하고 제게 눈치를 준 뒤, 그녀는 저를 데리고 그들 가까이에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저희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대화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아까는 물에서 갑자기 요괴가 튀어나와 놀라서 비명을 질러 버렸지만, 겁에라도 질린 듯 멀리 날아가버린 요괴에 안심하면서도 의아해하는 듯했습니다.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온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저는 조용히 제 옆의 여성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습니다.
그녀는 다시 제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녀를 따라 걸으며 서서히 드는 익숙한 느낌, 그리고 그와 함께 느껴지는 지독한 냄새에, 저는 저를 이끄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제게 쉿, 하고 소리낸 뒤, 제 손을 놓은 채 조용히 걸어갔습니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잦아들더니, 이윽고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황했습니다. 지팡이마저 놓고 온 제가 제대로 길을 따라 걸으며 그녀를 찾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는 금세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저를 데리고 온 곳은, 그 길이었습니다 - 마을 사람들 몰래, 비난과 팔매질을 피해 제가 찾은 좁은 길.
길을 따라 걷다가 다다른 끝자락에는, 제가 살던 작은 집이, 그 앞에는 그녀가 서서 저를 맞이했습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한 제게,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 그녀는 액신.
저는 깜짝 놀라 그녀에게 엎드려 몇 번이고 절을 했습니다. 저같은 흉물은 액신 님께도 역겨웠기에, 벌을 주시려던 것이었겠죠.
절을 하던 저를 다시 일으켜세우고, 그녀는 짤막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은 본디 그녀가 액을 모으던 마을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액이 전혀 모이지 않게 되었다 했습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액신으로서 마을의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궁금증을 묻고 다른 곳의 액을 모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몇 십년 정도가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그녀는 얘기했습니다.
아마 그 때, 저는 얘기에 집중하기는커녕, 무척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겁니다.
쿡쿡 웃으며, 그녀는 제게 말했습니다 -
저 또한 그녀와 같은 액신.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저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액신 님께, 어째서 저 같은 흉측한 녀석을 액신이라 생각하셨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습니다.
그녀는 차분히 제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을에서 액이 모이지 않게 된 것은 새로운 액신인 제가 마을에 있었기 때문이며,
폭포에서의 일은, 인간보다 훨씬 액의 기운에 예민한 요괴가 제 근처의 액에 놀라 도망간 것이라고.
제가 사람들을 피해 몰래 걸어다니던 길은, 그녀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액을 모으기 위해 홀로 걸었던 길과 같으며,
지금껏 제 인생을 물들여온 고통스러운 외로움은, 그녀가 액신으로서 살아오며 견뎌야만 했던 삶의 외로움과 같다고.
그리고 그녀가 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제가 그 외로움을 한 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에,
제게 그녀가 보이진 않을지라도, 서로의 모습 그대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얘기를 들으며 저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아까부터 거슬리던, 마을을 가득 채운 이 지독한 악취는 대체 무엇이냐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액신이 사라진 곳의...라며 말끝을 흐리다가, 제 손을 잡아 마을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는 궁금했지만, 마을에 별다른 미련을 느끼지 못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그녀를 뒤따랐습니다.
한참을 걷던 그녀는 이윽고 제 손을 놓았습니다.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녀는 제게 당부했습니다. 제 팔에 감긴 천을 풀지 않고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며.
곧이어, 그녀에게 제 이야기를 해 줄 때 느꼈던 기분좋은 바람이 저를 감싸왔습니다.
장시간의 여행으로 몰려오는 피로와 전신을 덮어오는 따뜻한 기운에 저는 그대로 잠에 빠졌습니다.
행복한 꿈을 꾸며.
이 이야기는, 제가 액신으로 살아온 뒤로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
아마 액신이 되고서도 제 외형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습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흉물스럽다 생각하던 이 모습은, 액을 모아 그들을 보호하는 꼭 필요한 모습이기에.
외로움에 지쳐 절망하던 이 모습은, 그보다 더 큰 외로움을 견뎌온 이로부터 사랑받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이기에.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이 모습에는,
한 액신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구원의 기억이 새겨져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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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히나 님으로 썼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했습니다.
환상향에 액신 캐릭터라 하면 하나밖에 없으니, '그녀'가 누구일지는 뻔할 뻔자겠죠.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쓰기 전에는 "야, 이거 괜찮겠구나!"했는데 쓰고 나니 역시 어설프네요.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기쁘겠네요!
요즘은 영 글이 안 써지네요.. 뭘 하면 잘 될련지...
아래는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까봐 저번에도 올렸던 해설:
화자는 액신입니다. 하지만 히나와는 달리 흉측한 외모에, 자신이 액신인 줄도 모르죠.
마을사람들은 그런 그를 미워하고, 쫓아냅니다. 한참을 해메던 그는 절망해 목숨을 끊으려 하죠.
히나는 그런 그에게 다가와, 그가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해 온 것들을 보여줍니다.
그가 겪던 외로움과 고통은, 액신인 자신이 걸어오던 그것과 같음을 증명하며, 그가 액신임을 알려줍니다.
그는 절망에서 벗어납니다. 히나가 오른팔에 감아준 붉은 천 하나를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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