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채집을 위해 숲에 갔다 포자의 독에 쓰러진 린노스케는 키리사메 마시라는 독특한 남자에게 구해진 후, 그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등 인연을 쌓게 되었으니. 금전이 없어 거지나 다름 없는 린노스케는 마시의 호의로 그의 거처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하여 콘파쿠 요우키와의 만남 이후로 두 번째로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 키리사메 마시.
마침,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할 장소가 생긴 건 좋은데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었다.
마시의 미각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에 조금 맛을 보았다가 위속의 내용물 까지 게워내게 만들었던 그 정체불명의 액체를 상기시켜 봤을 때 너무나 자명한 문제이긴 했지만, 그가 권해주는 음식을 거부하면 되는 일. 자신은 그저 따로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해결 하면 된다고 생각 했던 게 오산이었다.
그도 그럴게.
「린노스케. 이번엔 진짜 자신한다니까! 딱 한번만 맛만 봐 보라고.」
「미안하지만, 거절 하겠네.」
「아니.. 딱 한 번만! 한 입만 맛보라니까.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만든 요리인데!」
「으음.. 그렇게 애원해도 안 먹는 다니까.」
마시는 자신의 혼신을 다한 요리를 린노스케에게 무리하게 권하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린노스케가 아무리 거절을 하더라도 쉬이 물러나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고집이었다. 저렇게 애원하는 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부를 하는 린노스케도 눈 딱 감고 한 입만 먹어 볼까 싶기도 했지만, 마시가 들고 온 요리는 외견상으로도 상당한 거부감을 줬다. 도대체 무슨 요리를 했기에 저 모양인지. 접시에 담겨진 것은 최소 요리라고 부를 모양새가 아니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보라색에 꿈틀대기 까지 하는 저것은 살아있는 지옥의 생명체 그자체가 아닌가.
이미 맛을 따질 수준이 아니었기에 린노스케는 마시의 권유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린노스케의 완고함 – 이라 쓰고 필사적이라 읽는다. - 에 입술을 삐죽 내민 마시의 얼굴은 성인 남자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귀여웠다. 만약, 마시가 여자였다면, 자신은 분명히 저 애교에 졌을 거다. 린노스케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칫, 끝까지 안 먹는다 그거지? 됐어!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삐친 마시는 눈썹을 찌푸리며 린노스케에게 보라는 듯이 자신의 요리를 먹어 나갔다. ‘으음!’ ‘딜리셔스!!’ ‘너무 맛있어!!!’ 같은 감탄사를 연발해 가며 자신을 유혹하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뻔해 보이는 모습에 린노스케는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실소가 새어나왔다.
‘그래도 안 먹어.’
저런 괴생물체 같은 요리를 맛나게 먹는 마시 쪽이 이상한 거다. 입안에 음식을 잔득 넣을 채 우물우물 거리면서도 자신을 애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마시를 애써 무시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조리한 버섯을 입에 넣는 린노스케. 솔직히 저 괴상한 요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딱 떨어지는 그였다.
마시의 이해 못할 미각도 미각이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저잣거리에서 수다를 떠는 부인들보다도 말이 많았다. 그것이 타고난 낙천적 성격과 맞물려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곤 언제 어디라도 쉼 없이 주절주절 떠들어 대는 통에 신경이 쇠약해 질 정도였다. 린노스케는 평소엔 요우키의 정보를 얻기 위해 마을로 돌아다니니 저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 수다를 들어주는 건 자기 전 밤 시간대로 한정적이긴 하지만, 그 자기 직전까지 그치지 않는 그놈의 주둥아리, 허리에 찬 검으로 베어내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뭔 놈의 사내자식이 저리도 입이 가벼운 건지. 저 마시란 남자는 물에 빠진다 하더라도 주둥이만큼은 물위로 동동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쨔잔~! 오늘의 발명 도구는 독 포자를 이용해 만든 가스탄! 이걸로 다수의 요괴도 쫒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럼 지금 당장 실험해 봐야겠지!」
헝겊으로 둘려 쌓여진 주먹만 한 도구를 챙겨들고 어디론가 외출하는 마시. 저렇게 자신하는 만큼 효과를 보장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린노스케는 몇 번인가 마시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가 자신하는 도구를 실험하는 장면을 여러 번 봐왔지만, 대게 실패로 끝났다. 그 뒤는 요괴에게 쫒기며 생사를 넘나드는 일로 이어졌으니. 그때 마다 린노스케가 요괴를 베어내 그를 구해주는 일의 반복이었다.
린노스케는 자신을 만나기 전의 마시가 어떻게 해서 계속 살아남아 왔는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왜?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그 속담대로라면 마시는 이미 몇 번은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인간이었다.
왕성한 호기심에 겁이 없는 마시는 너무나 위태로운 외줄 타는 사내였고, 그런 그가 걱정이 되 내버려두지 못하는 게 지금의 린노스케였다. 날이 갈수록 마시의 보호자가 되어갔지만, 은인이라는 이유를 제쳐 두고라도 그를 지켜야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어느새 그에게 들어버린 정 때문이었다.
그런 린노스케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실험을 하고자 겁도 없이 나서는 마시를 보며 린노스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
으아악 하는 비명소리.
또 인가? 하고 소리의 근원지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했던 도구가 멋지게 실패를 했는지. 여럿 요괴들에게 쫒기고 있는 마시의 모습이 린노스케의 눈에 들어왔다. 허겁지겁 달아나는 마시의 발은 빨랐지만, 요괴들의 움직임은 그 보다 더 빨랐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얼마가지 않아 요괴들에게 붙잡혀 버리겠지. 린노스케는 머리에 지끈 거리는 통증을 느끼면서 마시를 구해주기 위해 개입한다. 요괴들은 모두 조무래기 들 뿐이라 금방 정리가 되었다. 검신의 묻은 피를 떨쳐 내고 나서 진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마시에게 다가가는 린노스케.
자신을 보며 속편하게 웃어대는 마시를 무심하게 노려 볼 뿐이었다. 하나 뿐인 목숨일 건데 하루를 거르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그에게 어떠한 훈계나 경고도 소용이 없었다. 그걸 아는 린노스케이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오늘도 내가 없었다면 죽었을 목숨이었을 거다.」
따끔한 일침은 잊지 않는다.
물론, 마시가 귀담아 들을 리가 없겠지만. 린노스케는 마시가 자신의 목숨을 좀 더 소중히 대했으면 했다.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린노스케에게 마시가 감사의 기분을 담아 말했다.
「고마워. 내가 이런 말 하긴 염치가 없겠지만 말야. 하지만.. 어쨌든 고마워!」
자신의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면 먼저 반성의 대답이 우선되어야 했지만, 고마움을 표해 준 것 만으로도 린노스케를 기쁘게 만들었다. 무심한 얼굴에 굳게 다문 입의 꼬리가 절로 위로 솟구친다.
원래 타인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듣는 게 하나의 기쁨이었던 린노스케지만, 마시에게서 듣는 고마움은 그것보다도 훨씬 각별하게 느껴지는 건 그에게 진정 도움이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동경했던 콘파쿠 어르신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마시의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로 충족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순수한 기쁨의 미소가 어느새 쓴 웃음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런 린노스케의 뒤를 졸래졸래 따르며 휘파람을 부는 마시가 불헌 듯 이렇게 물어왔다.
「항상 느끼는 건데 말이야. 넌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몰히 하고 있는 거야?」
린노스케의 걸음이 멈추었다.
마시가 보기엔 자신이 그렇게 비춰졌던 걸까? 린노스케는 그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살짝 다시며 말문을 연다.
「내가 널 매번 구해주는 일이.. 단지 선의가 아닌 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아닌가 하고.」
대답을 하고 나서 다시 걸음을 걷는 린노스케.
그 등을 바라보는 마시의 눈이 반짝하고 빛을 냈다.
「뭐~야. 겨우 그런 걸로 고민하고.」
린노스케는 뒤에서 들려오는 마시의 조롱 섞인 말에 흠칫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바로 마시와 눈을 마주친 린노스케는 서로 눈을 마주친 형태가 되었고, 마시는 자신에 대해 뭘 아느냐고 말해오는 린노스케의 눈을 빤히 노려보다 게슴츠레한 눈초리로 하얀 치아를 드려냈다.
「누구를 구하고 도와주는 건 꼭 선의여야만 할 필요는 없잖아. 이기적인 이유여도 도움 받는 쪽이 살아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어.」
「.......」
마시의 말은 사실이었다. 구해주는 의도와는 관계없이 도움 받는 쪽은 살아난다. 린노스케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게 아니었지만, 고민의 방향이 달랐다. 그것은 마시에게서 콘파쿠 어르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콘파쿠 어르신을 향한 갈망을 마시에게 풀고 마시를 콘파쿠 어르신의 대체물로 삼았다는 것. 린노스케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은 어디까지 삐뚤어져 있는 건지. 왜 콘파쿠 어르신을 마시로 대체하고자 했는지.
하지만, 다르다.
「네가 어떤 이유로 날 구해줬던지 간에 난 너에게 평생 고마움을 안고 살아갈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눈웃음을 짓는 마시의 얼굴은 콘파쿠 어르신처럼 올곧았지만, 달랐다. 그걸 깨달은 린노스케는 그제야 자신이 지나친 생각을 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시는 콘파쿠 어르신과는 다르다. 그이 대체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콘파쿠 어르신과 만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은 아직도 조금의 꺾임도 없다.
자신이 마시에게 정을 느끼는 것은 콘파쿠 어르신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시가 좋아지긴 했지만, 그것은 콘파쿠 어르신에 대한 감정과는 다른 것. 절대로 콘파쿠 요우키의 대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그런 결론을 지은 린노스케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나도 너에게 구해진 몸. 피차 마찬가지지.」
그 말 한마디. 마시에게 린노스케의 진심이 전해졌다.
만족한 얼굴로 뿌듯해 하는 마시는 린노스케에게 달려가서 손바닥으로 그의 등짝을 때리고는 하하 웃으며 집으로 내달렸다. 그 천진난만한 애와 같은 모습에 린노스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쩌면 내가 그를 구해주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그에게 구해지고 있는 거겠지.
린노스케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도 마시의 달음박질은 멈추지 않았고, 곧 그의 모습이 린노스케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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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사메 마시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