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노스케는 목숨을 건졌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남자에 의해 구원받은 것이다.
쓰러진 린노스케를 들쳐 업고 자신의 집까지 옮겨온 남자는 퇴치사들을 상대로 다양한 물품들을 파는 상인의 아들로 자칭 버섯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취미 삼아 행하는 버섯 수집을 위해 숲의 깊은 곳, 포자의 독이 몸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아슬아슬한 곳 까지 왔다가 자기 발밑에 쓰려진 린노스케를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그렇게 남자에 의해 죽음을 넘기게 된 린노스케는 꼬박 하루가 지나서 눈을 떴고, 자신의 침상에서 눈을 뜬 린노스케를 알아챈 남자가 당장 자신을 소개해왔다.
「오, 일어났네. 나는 키리사메 마시라고 해. 넌?」
린노스케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남자가 자기소개를 해오자 당황한 얼굴로 혼란스러워 했다. 분명, 자신은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감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아직 살아있었고 왠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대고 있는 건지 지금 상황에 대해 전혀 정리가 안 되었다. 그리고 키리사메 마시라고 밝힌 남자도 이제 막 정신을 차린 린노스케에게 상황 정리를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주절주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여긴 말이지.. 음.... 그래, 나만의 훌륭한 집이야. 우리 집은 마을에서 용품점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에 독립을 했거든. 나중에 가업을 이어받긴 할 거지만, 지금은 내 맘대로 살고 싶어 나왔어.」
「잠깐...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난 이 숲에 있는 버섯에 관해서는 마을의 누구보다도 상세히 알고 있지. 가령 널 중독 시킨 포자의 독은 보라색 반점이 있는 버섯일 거야. 그 외에도 갓 끝 부분이 뾰족하고 새빨간 버섯도 독 포자를 내 뿜지. 숲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그런 독버섯들이 잔득 있어. 그래서 요괴들도 발을 안 들이는 곳이야. 하지만, 나는 언젠가 이 숲의 가장 깊숙한 곳 까지 발을 들이고야 말겠어! 분명 누구도 보지 못한 굉장한 버섯이 있을 거야. 그러기 위해...」
「자.. 잠깐.... 자네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따라갈 수 없군.」
「내가 고안한 이 포자를 거르는 가면만 있으면 독 포자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거야. 어제도 이 녀석을 시험하기 위해 깊은 곳 까지 갔었는데. 네가 쓰러져 있었지 뭐야. 하하핫.. 만약, 이 가면의 실험을 오늘로 미뤘다면 아마도 넌 살아있지 못했겠지.」
남자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린노스케는 자신의 질문에도 무시한 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남자가 무척이나 괴짜로만 보였다. 숲의 독 포자로부터 자신을 옮겨와 준 것은 매우 고마운 사실이긴 하나,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전혀 안 되어 있는 모습. 즉, 예의가 없었다. 이제 막 눈을 뜬 자신에게 그것도 환자나 다름이 없을 건데. 저리도 수다스럽게 얘기를 떠들어대는 건 뭐랄까?
‘아무래도 난, 꽤나 별난 인물에게 구해진 모양이다.’
린노스케는 아직도 자기 얘기를 떠들어대는 남자를 무시하기로 하고 그대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
다시 눈을 떴을 땐, 그 수다스런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 남겨진 린노스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집안을 둘려보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를 이리저리 붙여 만들어 놓은 듯, 벽은 까칠한 나무의 표피가 그대로 살아있었고 거기에서 풍겨 나오는 나무의 향은 미세한 포자의 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천장을 살펴보니 비올 때를 대비해서 비교적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그래도 비만 새어나오지 않을 정도지 어딘가 엉성해 보이긴 마찬가지. 집안의 가구들도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보이는 건 자신이 누워있던 서양식 침구와 무언가가 담겨져 있을 궤짝 정도가 다였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이 집은 그 키리사메 마시라는 남자가 자신의 버섯 수집을 위해 숲 근처에 지은 임시 거처 정도가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집 밖을 나섰는데.
농후한 포자 향이 린노스케의 코를 어지럽혔다.
숲 근처가 아니라. 숲 안?!
독 포자가 가득한 숲에다 거처를 마련하는 인간이라니. 남자의 버섯 사랑은 아무래도 진짜인가 보다. 아직 완전히 쾌유 되지 못했는지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지만, 허기로 인한 빈혈기 탓도 있었다. 일단, 뭐라도 먹지 않으면.
집안으로 돌아온 린노스케는 자신의 짐짝부터 찾았다. 다행히도 짐짝은 침구 옆에 잘 보이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린노스케는 자신이 채집했던 버섯을 짐짝 안에서 꺼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꼬박 이틀은 굶었던 탓에 시장기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버섯의 반절을 먹어치우고 나서야 겨우 포만을 느낀 린노스케는 이번엔 조심하기로 한 채 다시 버섯 채집을 위해 집을 나섰다.
*
자신의 후각을 경계등 삼아 독 포자향이 감지되는 곳을 제외한 곳을 탐험하는 린노스케. 그래봤자, 키리사메 마시의 집을 중심 삼아 근처를 빙글 도는 것뿐이었다. 독 포자에 당한 경험이 그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들어 놨다. 그래도 주변을 도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의 버섯을 채집하는 데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손쉽게 채집되는 버섯에 오히려 의아함을 느꼈다. 이 숲의 버섯 자생은 비정상 적이며, 이렇게 많은 버섯 수에 비해 마을 장터에서 파는 버섯은 결코 싸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으아앗!’ 하는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린노스케는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그 근원지를 향해 검을 빼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근원지에는 이상한 모양의 가면을 쓴 남자가 네발 달린 짐승 형태의 요괴에게 둘려 쌓인 채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저 가면 쓴 남자는 자신을 구해준 키리사메 마시란 남자겠지.
남자가 수다스럽게 떠벌였던 말의 내용을 떠올려 보았을 때, 쓰고있는 가면은 자신이 발명했다는 포자 거르는 가면으로 보였다.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흘려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 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린노스케는 듣기 싫어했던 남자의 수다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자신에게 한숨이 다나왔다.
그건 그렇고 상황을 보아 남자는 절제절명의 위기. 은인을 내버려 두는 건 예의가 아닌지라 린노스케는 얼른 그를 구해주기로 했다.
‘요괴의 수는 대략 4마리 군.’
가장 가까이 있는 요괴부터 베어내는 린노스케. 그 모습은 섬광이었다. 과거 요우키로부터 전수 받은 도법으로 먼 거리에서 눈 깜짝할 새에 품안 까지 파고든 그가 내지르는 일격은 급소를 단박에 베어내는 필살. 단, 일격에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을 하는 요괴. 한 마리를 처리하는 데 남은 세 마리가 눈치를 채지 못한다.
바로 다음 대상을 향해 내달리는 린노스케. 이번엔 린노스케의 기척을 눈치 챈 요괴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날리며 자신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린노스케의 목덜미에 박아 넣으려 했지만 되러 자신의 목덜미에 린노스케의 검이 박혀드는 결과가 되었다. 매우 날쌔긴 해도 너무 직선적인 공격은 린노스케가 피하지 못할게 아니다. 공격의 궤도를 간파한 린노스케가 허리를 틀며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요괴의 공격이 비껴 나갔고, 그 직후 무방비 상태가 된 요괴의 등 뒤로부터 검을 찔려 넣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이제 두 마리 남은 요괴. 자신의 동포가 린노스케에게 죽어나가는 모습을 본 두 요괴는 서로 약속이나 했다는 듯. 동시에 몸을 날려 린노스케에게 달려들었다.
휘익.
푸하악. 푸학!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몸뚱어리가 양단되는 요괴.
한 마리는 허리가 가로로 또 한 마리는 어깨부터 골반까지 대각선으로 양단되었다. 그 놀라운 린노스케의 검술에 위기에 처했었던 가면 쓴 남자가 그대로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찍고 만다. 자신이 구해주었던 남자가 저리도 강했었다니.
자신을 둘려쌓던 요괴들을 전부 처리한 린노스케가 남자에게 다가갔다. 땅에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있는 남자는 린노스케를 보며 감탄과 놀라움으로 멀뚱히 그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앞까지 다가오자.
「우오오오오! 굉장해!!」
엄청 기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너 대체 뭐야? 그 검술 어디서 배운 거야?? 어지간한 퇴치사 보다 쌘 거 같은데??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듣지 못했네.」
남자. 키리사메 마시는 가면을 벗어 재끼고 린노스케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를 했다.
「거듭 말하는 거지만, 나는 키리사메 마시! 버섯을 사랑하는 애호가로 이 가면의 성능을 실험하던 차였어.」
「난 모리치카 린노스케라 한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남자에게 이름을 알려준 린노스케는 한 번 크게 휘두르는 것으로 검신에 묻은 요괴의 피를 떨쳐 내고는 허리춤에다 고정시켰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도록 할까?」
마시는 씨익 해맑게 웃어 보이며 그렇게 물었다. 그에 린노스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의견에 수긍을 했고 그 둘은 요괴 시체가 4 구가 나 뒹구는 장소를 떠나 마시의 집으로 향했다.
*
키리사메 마시는 특이하게도 금발 머리를 한 황목인이었다. 모리치카 린노스케도 회백의 머리를 한 흔하지 않은 외모였지만, 반인반요. 그에 비해 마시란 남자는 요괴의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간이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마시는 곧 바로 간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데웠고 그런 그에게 린노스케가 물었다.
「순수 인간이 흔치 않은 외모인걸 보니 자네는 바다 건너에서 온 색목인인가 보군.」
그러자 마시는 헤헤 거리며 웃다가 바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뭐... 그렇지. 내 부모님은 이곳에 정착해서 이름까지 이쪽에 어울리도록 개명을 했지.」
「흠.. 색목인이 그것도 이런 환상향이란 곳에 정착을 하다니.」
린노스케가 턱을 매만졌다. 전국 시대때부터 이 땅에 정착해 살던 색목인들을 만나왔지만, 저 키리사메 마시란 남자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의 가계가 퇴치사일 리가 없을 텐데 왜 하필 이곳에 정착을 한 것일까? 의아함에 눈썹을 찡그리던 린노스케의 얼굴을 마시가 헤헤 거리며 쳐다보다 ‘크흡’하고 목을 다듬고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 흘러든 것은 우연이야. 그리고 우연히 요괴와 퇴치사를 목격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매료돼 버렸지. 아버지가 말하길 판타스틱!」
판타스틱?
마시가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내 뱉은 말이지만, 린노스케가 그 생소한 단어를 알 리가 없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 거리자, 마시도 따라 갸웃거렸다.
「놀라워! 라는 의미를 지닌 잉글랜드 말이야.」
전혀 몰라 하는 눈치에 마시가 부연 설명을 해주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하는 린노스케. 냄비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준비해둔 컵에 황록색의 가루를 넣고 끓은 물을 채워 넣은 마시가 가루가 물에 잘 섞이도록 스푼으로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대대로 호기심이 강한 편이거든. 신기한 것투성이인 이곳에서 정착하기로 한 거야.」
컵 안의 가루가 충분히 섞였는지 그걸 린노스케에게 건네주는 마시. 린노스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컵을 받아들고는 살짝 코를 갖다 대어 냄새를 맡았다. 자신이 여지 것 마셔봤던 어떠한 차의 향도 아닌 매우 이질적이고 특이한 향.
「퇴치사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손수 제작해서 제공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그 덕분에 나도 요괴 한 두 명 쯤은 쫒아낼 만한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특히 연금술을 이용한 폭약 제조는 나만의 특허야.」
마시는 자랑을 하듯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쳤다. 콧방귀 까지 뀌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시를 보며 피식하고 작게 코웃음을 친 린노스케는 손에든 컵을 입에다 대고 안의 내용물을 홀짝하고 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우웨에에엑!! 쿠우어억..」
린노스케의 미각은 고통을 호소하며 삼켰던 내용물은 물론이고, 전에 먹었던 버섯들 까지 입 밖으로 토해내 버렸다.
마시가 건네준 액체는 차는커녕 인간이 마실게 못되었다. 약이라고 생각하기에도 그 맛이 너무나 역했다. 마치 지옥의 오물이 코를 타고 올라와 뇌 속까지 오염시키는 끔찍한 향이 반요의 뛰어난 후각과 만나니 그 효과는 참을 수 없는 구토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입안의 내용물을 게워내 버린 린노스케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 사색이 된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어라? 맛없었나.」
미각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린노스케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마시는 자신의 몫으로 타놓은 액체를 한 모금 마시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희한하네? 이렇게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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