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노스케는 콘파쿠 요우키라는 반인반령의 검객을 따라다니며 전국을 떠도는 방랑객이 되었다. 때로는 요괴를 퇴치하여 인간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또는 무고한 요괴를 도와 요괴들에게도 환대를 받는 기묘한 생활의 나날이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여러 경험에 린노스케 안의 세계는 점차 그 크기를 늘려갔다. 그날, 요우키가 말했던 다른 세상을 알게 된 린노스케는 더 이상 예전의 반요가 아니었다. 그렇게 인간성을 회복해 가던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콘파쿠 어르신?」
야영을 하던 어느 산속의 동굴, 콘파쿠 요우키는 린노스케 앞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볼일 등의 문제로 잠시 자리를 비웠거니 했지만, 반나절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그제서야 그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평소 보다 더 과묵해져 무언가 심상치 않아 보였던 요우키는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던 린노스케였다.
린노스케는 요우키가 사라져 버린 이유가 그가 떠안고 있던 고민거리와 관계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 버린 것은 분명, 자신이 관여해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 일거다. 그럼에도 린노스케는 그의 찾고 싶었다. 그리고 무리하게라도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히 이 상황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체념에 가까웠다. 언젠가 자신의 곁을 떠날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에게서 이별의 말이라도 들었어야 했다. 나를 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했던 그가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종적을 감춰버린 것은 린노스케에 대한 배신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건지 종적도 묘연하고 지금에서야 그를 쫒는 건 늦은 감이 있었기에 포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미련은 떨쳐 낼 수 없었다. 이제 혼자가 되어버린 린노스케. 그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혼자여도 아무런 고독이나 외로움 따윈 없었던 그는 가슴 한 컨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마냥 허전하고 시려왔다. 여태 겪어보지 못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나 세상뿐만이 아니라 지금 겪고 있는 상실의 감정이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상실감. 길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와의 동행은 그를 린노스케에게 있어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린노스케는 어떻게든 태연해 보려 애썼지만, 자꾸만 욱씬 거리는 가슴의 통증만큼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통증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린노스케의 바램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통이 심해져만 갔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아직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전하지 못한 진심이 담긴 말을 전하고 싶다.
정처 없이 방랑하던 린노스케의 머릿속은 온통 그에 대한 그리움뿐이었고, 잠시 라도 그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이대로 평생 그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린노스케는 그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다시 한 번 그를 만나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하여 린노스케의 방랑은 요우키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목표를 정하게 되었고,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지 모를 여정 길에 오르게 되었다.
*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지금이 에도 시대고 린노스케가 요우키를 만나 헤어졌던 게 가마쿠라 시대임을 비춰 보았을 때, 못해도 300백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그 기나 긴 세월 동안 린노스케는 끝내 요우키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그를 찾기 위한 여정이 지쳐갈 때 즈음, 요괴 퇴치의 실력자들이 모여 있다는 환상향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강대한 요괴들이 모여 있고, 그에 저항하는 퇴치사들이 머문다는 곳. 듣기로는 요괴와 인간의 전장이었다.
그곳이라면 있지 않을까?
추측일 뿐이지만, 그 어떤 퇴치사 보다 요괴를 더 잘 베었던 요우키라면 그 환상향이란 곳에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린노스케가 아는 그의 검술은 전국시대 때의 이름 날리던 검호 보다 예리 했으며 천재라 불리던 음양사의 술법 보다 치명적이었다. 그런 그가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면 당장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흔적만큼은 발견 할 수 있을 거다.
그런 희망을 품은 채, 린노스케는 환상향이란 곳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
「쌉니다. 싸요!」
「호수에서 낚은 싱싱한 생선 한 마리, 20엔!」
「거기 형씨, 외로운 남자면 필수품인 이 춘화 한 장 어때요?」
이상하다.
린노스케는 여기가 자신이 오고자 한 곳이 맞을 텐데. 소문으로만 듣던 곳이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유는 들었던 것과 분위기가 너무나 틀려서다.
수년을 수소문 끝에 도착한 환상향이건만, 막상 도착해 보니 그가 상상했었던 전장이 아니었다. 인간이 모여 산다는 마을은 철통같은 경비에 지켜지고 있긴 하나, 상인과 행인으로 활기를 띈 거리에서는 요괴의 습격에 대한 불안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네는 오랜만에 찾아온 외지인으로 보이는군.」
생선가계의 주인이 린노스케를 보며 드물다는 듯이 물었다.
퇴치사들만 찾는 마을에 외부자라니, 이미 오래전에 외부와의 왕래가 끊겨져 있던 곳이라 한 눈에 봐도 외지인 같아 보이는 린노스케가 상당히도 신선해 보일 것이다. 이번에 새로 유입된 퇴치사인가?
그렇다 쳐도 퇴치사 조차 모일대로 모여 더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네, 저는 어떤 사람을 찾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구만, 찾는 사람이 퇴치사라도 되나 보지?」
생선가계 주인은 저 외지인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퇴치사의 지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퇴치사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시기가 언제였더라? 최근은 아니고 적어도 몇 년 전이 마지막일 것이다. 이곳도 이젠 옛날처럼 살벌하기만 한 곳이 아니고, 적당히 살만한 곳이 되었으니 말이다.
생선가계 주인은 저 외지인이 퇴치사라고 한다면 이곳에 생계를 꾸려 살아가길 권해보고 싶었다. 자신은 장사치라서 잘 모르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퇴치사들은 어째서인지 몰라도 만족감이 높아 보였으니 말이다.
「전문 퇴치사라기 보다는 검객입니다.」
「검객이라... 흐음.. 그쪽도 검객 같아 보이는데.」
「저는 그분에 비하면 애송이지요.」
외지인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검을 고개를 끄덕 거리는 생선가계 주인. 외지인은 겸손을 부리고 있지만, 필시 높은 경지의 검객이겠지.
달라진 생선가계 주인 눈빛에 린노스케는 다소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요우키에겐 미치지 못하나 자신은 상당한 실력자임은 분명하다. 생선을 팔고 있는 장사꾼이지만, 한 눈에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건가? 전장이라는 소문과 달리 평화로워보이지만, 각지의 실력 있는 퇴치사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평범한 사람은 없을 테지.
린노스케는 자신의 겸손에 허허 웃는 생선가계 주인과 헤어져 다른 장소로 향했다.
자신의 경지를 한 눈에 알아본 생선가계 주인을 만났기 때문일까? 상점가가 늘여서 있는 거리에 무수히 오가고 있는 주민들이 하나 같이 범상치 않게 느껴진다. 저들은 모두 요괴 퇴치를 위해 환상향으로 들어온 퇴치사들일 것이다.
그렇군, 전장이라는 말 틀리지 않았다.
앞에 전(前)자가 붙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 전장의 용사들이 터를 잡고 살게 된 마을이라는 실감이 드는 린노스케였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서 콘파쿠 어르신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평화롭다면 이미 떠났을지 모른다. 게다가 생각보다 퇴치사들의 수가 많았다.
린노스케는 쉽지 않은 난관이 될 것임을 예상하며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린노스케는 거지나 다를 바 없는 행색의 노숙자가 되어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린노스케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에 한탄을 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검술뿐인 자신에게 이 마을은 너무나 비정했던 것이다. 퇴치사 투성이인 마을에서 누가 자신에게 요괴 퇴치를 의뢰해 오겠는가. 전부 제 한 몸 지킬 힘을 지니고 있었고,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요괴라면 증명된 실력자에게 맡기면 된다. 때문에 외지에서 들어온 자신에겐 의뢰가 들어 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가. 퇴치사이면서 요괴퇴치의 업을 벗어던지고 장사나 농지를 일구며 살아가는 주민이 많았다. 자신도 이곳에 눌러 살게 된다면 아마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겠지.
담벼락에 붙어 잠을 청하던 린노스케는 이 이상 이곳에 머물렀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될 판이었다. 콘파쿠 어르신에 대한 단서는 얻지 못했고, 돈도 떨어져 갔다. 마을에서 노숙할 정도면 오죽할까? 이미 내일 당장 입에 풀칠할 돈 조차도 남지 않았다.
마을에서 노숙하게 된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처량하게 느껴지면서도 내일 당장 허기를 달랠 식량을 구해야하는 문제로 쉬이 잠에 들기 힘든 린노스케. 그는 이런저런 고민 끝에 버섯이 자생한다는 마을 인근의 숲으로 가보기로 정하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
다음날, 린느스케가 눈을 뜬 시각은 해가 하늘 정 중앙에 위치해 있을 시각이 되어서였다. 어제 밤늦게 고민하다 잠든 게 늦잠으로 이어진 것이다. 덮고 있던 담요를 가지런히 갠 뒤, 머리맡에 놓았던 짐짝 위에 줄로 묶어 고정시킨 린노스케는 그 짐짝을 등에 매고 나서 어젯밤 가보기로 했던 인근 숲으로 향했다.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 속에는 한 끼 식사도 해결 못할 정도의 돈 밖에 남지 않았다. 배에서는 야속하게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공복감이 가져다주는 불쾌감이 숲으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좀 더 서두르도록 재촉했다.
그렇게 비교적 빠른 걸음걸이로 숲에 도착한 린노스케는 숲 안쪽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진한 포자의 냄새를 맡았다. 반요라 보통 인간에 비해 수배 정도는 예민한 후각을 지닌 린노스케는 이 숲에 자생하는 버섯들이 상당한 수라는 것을 바로 알아 챌 수 있었다.
그 수많은 버섯들 중에서는 식용이 불가능한 독버섯도 많겠지만, 오랜 방랑 생활로 쌓은 경험은 이럴 때 빛나는 것이다. 버섯 채취를 위해 숲을 거닐던 린노스케의 짐짝 안에는 어느새 식용 가능한 버섯들로 가득 찼다.
이미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채취한 버섯.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 했던지 좀 더 숲 깊숙한 곳 까지 걸어 들어가는 린노스케. 이만치의 다양한 버섯들이 자생한다면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버섯들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그를 점점 숲 깊은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여긴?」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숲의 깊은 곳 까지 들어온 뒤였다. 포자 향은 더욱 진해졌으며 계속 들이키고 있다간 제아무리 반요인 몸이라도 버티기 힘들다. 린노스케는 포자에 섞여있는 독성분에 위기를 느꼈다.
요괴들이 많다던 환상향 중에서 유독 요괴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마법의 숲. 이 숲에 자생하는 독버섯의 포자들이 상당히 치명적이라는 반증이었다. 린노스케는 자신이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려고 했으나 몸이 점점 둔해지는 걸 느꼈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이미 그의 체내에 상당한 양의 포자의 독성분이 퍼진 후였다.
점점 굳어가는 자신의 양다리. 그리고 시야가 초점을 잃고 흐려져 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잘근 깨무는 린노스케. 이 숲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자신의 경솔함에 화가 났다. 여기서 쓰려지면 자신은 죽는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독성분의 포자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린노스케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갈수록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지만, 주저앉을 수 없었다. 아직, 그를 다시 만나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어이없이 죽는 건 사양이다.
앞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린노스케는 멍해져 가는 정신을 최대한 오래 잡고 있기 위해 예리한 검으로 자신의 팔목을 살짝 베었다. 베어진 틈으로부터 붉은 피가 왈칵 쏟아져 은색의 검날을 붉게 물들였다.
「윽!.....」
그렇게 자해를 해 가면서 까지 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른 린노스케. 이제 더 이상 움직여 주지 않는 몸은 땅을 향해 일자로 떨어지고, 그대로 목석같이 굳어진 린노스케는 찬찬히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은 깊은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한 청년에게 구해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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