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는 벚나무 근처에서 소녀를 보자 곧 사이교우의 소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꽃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기라도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요괴가 볼 때마다 꽃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단지 가만히 꽃을 맞기만 하더니, 오늘은 빙글빙글 춤까지 추면서 즐기고 있다. 요괴는 아공간에서 나와 버렸다. 소녀를 가까이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요행 소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소녀는 집에 돌아갔다.
다음 날은 좀 늦게 벚나무 근처로 나왔다.
이 날은 소녀가 또 빙글빙글 춤추며 꽂놀이를 하고 있었다. 젖힌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뚝과 손목이 마냥 희었다. 한참 춤을 추고 나더니, 이번에는 나무에 손을 스윽 올려 본다. 숨이라도 고르는 것이리라. 갑자기 나무를 쓸어내린다. 무언가 피하기라도 하는 듯. 소녀는 요괴가 자신을 지켜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나무줄기를 쓸어내린다. 어제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갈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줄기에서 작게 가지를 꺾어 낸다. 벚꽃이 송이송이 달린 벚꽃가지였다. 그리고는 슬슬 걸어와 요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가까이 와서는 빤히 아공간을 바라보며,
"이 바보"
나뭇가지가 떨어졌다. 요괴는 저도 모르게 아공간을 닫았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되돌아 달린다. 벚나무 근처의 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아직 차가운 봄햇살 아래 빛나는 벚꽃뿐. 이제 저끔 길목으로 소녀가 보이리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아공간을 열어 보았다. 그러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저 쪽 산길에서 하얀 꽃송이가 슬쩍 나타났다. 소녀가 벚꽃을 한 웅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유난히 시린 봄 햇살이 벚꽃잎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벚나무가 산길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요괴는 그 벚꽃이 아주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보고 있었다. 문득, 소녀가 떨어뜨린 가지를 내려다 보았다.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요괴는 가지를 집어 아공간에 넣었다.
다음 날부턴 좀더 늦게 나무로 나왔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요괴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아공간 속 가지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한 어떤 날, 요괴는 전에 소녀가 서서 꽃놀이를 하던 벚나무 아래에 서 보았다. 벚꽃잎을 맞았다. 나무에 손을 대 보았다. 슬슬 쓸어내렸다. 묘한 기운이 그대로 흘러들었다. 싫었다. 요괴는 두 손으로 나무의 줄기를 밀치었다. 몇 번이고 밀치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아공간을 열었다. 소녀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지 않느냐. '숨어서 내가 하는 일을 엿보고 있었구나.' 요괴는 아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잘 닫히지 않았다. 소녀가 점점 다가왔다. 다시 기합을 넣어 아공간을 닫고 숨었다. 지금 건 잊어 줬으면 좋겠다. 저 쪽에 그 가지가 보인다. 아직 생생하다. 전에 없이 벚꽃 가지가 짜릿하게 기운을 내뿜는다고 생각했다. 입안이 씁쓸했다. 피였다. 요괴는 피를 멈추면서 그저 숨었다. 아공간 어디선가 '바보, 바보'하는 소리가 자꾸만 들어오는 것 같았다.
며칠 뒤였다. 벚꽃 근처에 가니,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뒤돌아서서 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모르는 체 나무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소녀 앞에서 한 번 실수를 했을 뿐, 여태 아무 나무처럼 보듯이 하던 벚나무를 오늘은 조심스레 바라본다.
"얘."
못 들은 체했다. 눈을 감고 합장을 한 채로 다가갔다.
"얘, 이게 누구 싯구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떴다. 흥얼거리는 소녀의 맑고 붉은 눈과 마주쳤다. 얼른 다시 눈을 감았다.
"사이교 법사."
"아는 것도 참 많다."
산길 앞까지 왔다. 여기서 요괴는 단지 아공간을 열고 들어가고, 소녀는 길을 따라서 쭉 걸어가야 한다.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너, 다른 곳에 가 본 일 있니?"
싱긋 웃어왔다.
"없다."
"우리, 가 보지 않으련? 혼자 있으려니 심심해 못 견디겠다."
"이래봬도 어렵다"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기에? 다른 요괴들은 훨훨 날아다니는 것도 봤다."
소녀의 눈이 금세 '바보, 바보' 할 것만 같았다.
오솔길목으로 돌아섰다. 꽃에 뒤덮인 식물 곁을 지났다.
고양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요괴가 그것을 안아올렸다. 고양이는 품에서 야옹하고 울었다.
'참,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란에게 식신 교육을 시키라 할 걸.'하는 생각이 든다.
"아, 귀엽다!"
소녀가 눈길을 준 곳에는 다른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들이 냥냥거리며 길 이곳저곳을 뛰논다. 소녀의 왼쪽 볼에 살포시 보조개가 패었다. 저만큼 고양이 무리가 또 있다. 소녀가 그리로 달려간다. 그 뒤를 요괴도 달렸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관리 업무에 힘써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소녀의 곁을 스쳐 그냥 달린다. 바람이 슬슬 불어와 얼굴을 흝는다. 옥빛으로 한껏 갠 봄 하늘이 요괴의 눈앞에서 맴을 돈다. 어지럽다. 저놈의 요정, 저놈의 요정, 저놈의 요정들이 맴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다보니, 소녀는 방금 새로 찾은 고양이 무리에 껴서 놀고 있다. 좀 전 고양이보다 더 생기있다. 오솔길이 끝난 곳에 작은 도랑이 하나 있었다. 소녀가 먼저 뛰어 건넜다.
거기서부터 보이는 것은 죽림이었다. 근처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가게 하나를 지났다.
"저게 뭐니?"
"꼬치구이집."
"저기 음식, 맛있니?"
"별로. 술 맛도 그렇지만, 꼬치 맛도 이상하다."
"그래도 하나 먹어 봤으면."
요괴가 포장마차의 작은 문으로 들어가, 꼬치 두 개를 가지고 왔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었다. 음식의 양념이 손에 묻지 않도록, 소녀에게 한 개 건넨다. 그리고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듯이, 먼저 끝부분을 살짝 깨문 다음, 꼬챙이를 당겨 고기를 작게 빼어낸다. 소녀도 따라 했다. 요괴가 자신의 몫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아, 맛있었어."
하며 빈 꼬챙이를 근처의 나무더미에 던진다.
"음, 지금 먹어 보니 맛있다."
요괴가 더 게걸스럽게 먹어버렸다.
들판이 펼쳐졌다. 날아다니는 탄막이 눈에 따가웠다.
"야아!"
소녀가 탄막을 보며 경탄한다. 이번은 요괴가 따라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그보다 더 많은 기술을 소녀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야쿠모 란, 이게 생과 사의 결계, 이게 이중 흑사접..."
"탄막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나비가 좋아!.... 그런데, 이 벚꽃같이 생긴 기술은 뭐지?"
"생과 사의 경계."
소녀는 탄막 아래로 가 벚꽃놀이 하듯 서 있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요괴는 기술 몇 개를 꺼내었다. 예쁜 기술만 골라 소녀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소녀는
"전부 보여줘라."
다시 산 위쪽으로 올라갔다. 맞은편 골짜기에 오순도순 작은 집들이 몇 모여 있었다.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바위에 나란히 걸터 앉았다. 유달리 주위가 조용해 진 것 같았다. 차가운 봄 햇살만이 아직 남은 탄막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탄막이지?"
적잖이 비탈진 곳에 오색으로 빛나는 별모양 탄막이 떨어져 있었다.
"꼭 진짜 별 같네. 우리 집에서 올려보는 밤하늘엔 별이 적었단다.
저 탄막을 보니까 처음 별을 보고 기뻐하던 생각이 난다."
소녀가 조용히 일어나 비탈진 곳으로 간다. 반짝이는 탄막을 집으려 조심히 손을 뻗어본다.
좀처럼 닿지 않는다.
겨우 손가락이 다다르자, 별이 작게 터지고 만자. 팔을 거두어들였다. 요괴가 놀라 달려갔다.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상처를 쳐다보며, 요괴는 제가 주워다 줄 것을 잘못했다고 뉘우친다. 소녀의 손바닥에 피가 흐른다. 요괴가 아공간을 열어 팔을 휘두르자 여자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요괴는 아공간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좀 만에 다시 나타난 요괴는
"이걸 바르면 낫는다"
대나무 냄새가 나는 고약을 상처에 문질러 바르고는 다시 아공간 속에 들어갔다가, 별을 한 무더기 들고 돌아온다. 그리고는,
"저기 마녀가 있다. 그리 가 보자."
흑백의 마녀였다. 마녀는 아직 요괴를 눈치채지 못했다. 요괴가 슬금슬금 다가가 인사하는 체 훌쩍 기술명을 외친다. 마녀가 껑충거리며 대응한다. 소녀의 흰 얼굴이, 하늘색 옷이, 짙은 분홍빛 머리가, 안고 있는 별과 함께 범법이 된다. 모두가 한 폭의 큰 그림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그만두지 않으리라. 기뻤다. 이것만은 소녀가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자기 혼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너희, 예서 뭣들 하느냐?"
무녀 하나가 하늘에서 날아들었다. 쏘려던 탄막을 거두었다. 왜 또 괜히 인간을 괴롭히냐고 무녀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그런데, 홍백의 옷을 입은 무녀는 소녀 편을 한 번 훑어보고는 그저 마녀의 팔을 잡아끌면서,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이변이 생길라."
참, 요상한 마력이 얕게 짙게 드리워져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무언가가 힘을 뻗쳐나가고 있었다. 목덜미가 선뜩선뜩했다. 그러자, 대번에 느껴지는 대량의 사기(死氣). 소녀를 숨길 곳을 찾다가 자신의 집이 떠올랐다. 그 안으로 소녀를 들일 수밖에. 그러나, 집에 있던 식신들은 처음 보는 소녀를 반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대로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소녀를 쉬게 했다.
소녀의 입술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깨를 자꾸 떨었다. 자신이 모아온 진귀한 것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소녀는 간간이 미소지을 뿐,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아까 들고 온 별 중에서 찢어지고 빛바랜 것들을 골라낸다. 갑자기 아까의 사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 거기에 소녀를 둘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요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공간을 열어 그 안에 들어간다. 잠깐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금세 조용해진다. 얼굴만 슥 내밀고 웃으며 소녀에게 손짓을 한다.
아공간 속은 어떠한 기운도 침입하지 않았다. 그저 어둡고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게 안 됐다. 옆에 나앉은 요괴는 아공간 속의 기운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런 요괴는 숨을 가삐 쉬고 있었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저는 괜찮으니 옆에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그만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바람에 소녀가 모아 둔 별들이 망그러졌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깨진 별조각이 아공간 속으로 떠오르며 퍼져나갔다. 그것을 그저 바라보았다. 도리어 아공간 속에 별빛이 가득차, 불길한 느낌마저 신비하고 아름답게 변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요괴가 일어나 아공간을 열었다. 사기가 누그러들었다.
아공간 속에서 빠져나왔다. 멀지 않은 앞쪽에 한 식신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아공간으로 다가와 안을 바라보니, 그 눈에 흐드러질듯한 별빛이 가득 차올랐다. 마치 처음부터 오색의 눈을 가진 듯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식신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식신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요괴는 나비를 날려보냈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지르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셋이 벚나무로 다시 다다르기 전에 공기는 언제 그랬는가 싶게 요기 한 점 없이 투명하게 개어 있었다.
그 뒤로는 소녀의 모습은 뵈지 않았다. 매일같이 벚나무로 달려와 봐도 뵈지 않았다. 식신에게 소녀의 모습을 보았는지 묻기도 했다. 아공간을 열어 소녀가 있을 법한 곳을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뵈지 않았다.
그 날도 요괴는 아공간의 벚꽃 가지를 들여다보다가 벚나무로 향했다. 그랬더니, 밑둥 근처에 소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요괴는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그 동안 앓았다."
어쩐지 소녀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그 날, 이상한 기운에 시달린 탓 아냐?"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인제 다 났냐?"
"아직도......"
"그럼, 누워 있어야지."
"하도 갑갑해서 나왔다. ......참, 그 날 재밌었어...... 그런데, 그날 어디서 이런 게 날아들었는지 계속 내 주위를 맴돈다."
소녀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주위로 사접이 날아 들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그래 이게 누구 것 같니?"
요괴는 사접이 나는 모양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내, 생각해 냈다. 그날, 하늘을 날면서 네가 나비를 날린 일이 있지? 그 때, 그 중에서 남은 아이다."
요괴는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저, 오늘 아침에 노래를 들었다. 낼 제를 지낸다고......"
가만히 노래를 부른다. 요괴는 조용히 노래를 듣는다.
"사이교우 아야카시(西行妖) 만개(滿開)의 때, 유명을 달리하니, 그 혼, 백옥루 안에 편히 잠들도록, 사이교우 아야카시의 꽃을 봉인하며 이로써 결계로 한다. 바라건대, 두 번 다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영원히 전생함을 잊으라..."
요괴는 밝은 목소리로
"참, 목소리도 곱다!"
"그리고 저, 나 이번에 제사 지내고 나서 좀 있다 이 나무에 못 오게 됐다."
요괴는 벌써 전의 사기의 근원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서, 벚나무가 상스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아마 인간들에게도 알려져 소녀를 오지 못하도록 한 모양이었다.
"왜 그런지 난 그게 싫다. 해야만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에 없이, 소녀의 검붉은 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 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디뎠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양과자를 함부로 넣었다가는 모양이 상한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장 아끼던 이 과자를 어서 소녀에게 맛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더러 제를 지내거들랑 이 나무 앞으로 한 번만 다시 나와 달라는 말을 못 해 둔 것이었다. 바보 같은 것, 바보 같은 것.
이튿날, 요괴가 잠시 벚나무 쪽으로 산보를 나오니, 인간들이 합장하고 곡을 하며 제를 올리고 있었다. 무엇인지 가까이서 듣기로 했다.
요괴가 온 것은 눈치도 못 채고, 인간들은 그저 곡을 하면서,
"후지미의 소녀..."
같은 시구를 부르다가
"두 번 다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영원히 전생함을 잊으라..."
요괴는 요기를 감추고 뒤쪽의 인간들에게 다가가,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다.
"저, 악한 나무를 봉인하신 분에 대한 제를 올린다. 편히 쉬시라고....."
"그럼, 좋은 터라도 잡지, 왜 벚나무 앞에....."
이 말에 인간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보게, 그 분은 이 벚나무를 좋아하셨다네."
요괴는 공연히 열적어, 급히 감사를 표하고는 인간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아공간을 열어 그 속으로 들어가 합장했다. 기도라도 하는 체.
벚나무는 날로 시들어 갔다.
요괴는 요전의 바위로 올라가 보았다. 높은 데서 바라보는 나무는 쪽빛 하늘 아래 기운을 잃어 더 시들해 보였다.
인간들의 말이, 그 소녀가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것만 누리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요괴는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양과자를 느끼며, 마음 속으로는 수없이 벚꽃모양, 나비모양 탄막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날 밤, 요괴는 밤길을 걸으면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소녀가 다른 곳에 가기 전에 만나러 가 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가 반겨 줄까 어떨까.
그러다가 다시 벚나무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허, 참, 세상일도....."
아직도 남아 예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사이교우 가도 말이 아니야. 그 부를 다 잃어 버리고, 대대로 지켜오던 전통까지 끊어지더니, 여식까지 희생시킨 걸 보면....."
조용히 곡을 하던 다른 이가,
"여식이라곤 그 분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던 나무랑 같이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불운할까요."
"글쎄 말이지. 이번엔 꽤 능력이 있으신 걸 변변히 활용도 못 해 보셨다더군. 지금 같아선 사이교우 가도 가문이 망한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여식은 어린 분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묻히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별모양 나비모양 장신구를 꼭 같이 묻어달라고....."
===
이번 건 좀 더 원작에 가까운 설정이 돼서 그런지 약간이라도 여운이 남는 것 같네요.
신비한 듯 연약한 소녀 (유유코 님),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위해주는 친구 (유카리)..
오랜만에 글쓰느라 정신 없었는데, 슬슬 느낌이 돌아오는 기분!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읽고 있자면 한국 고전문학은 정말 예쁜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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