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와 같은 눈을 하고 있구나.」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들은 말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요우무와 같이 명계로 향하던 린노스케는 곧 만나게 될 그와의 첫 만남이 문뜩 떠올랐다. 장대비가 얼굴을 세차게 때렸고, 요우무의 손을 잡은 린노스케는 그녀와 함께 빗속을 뚫으며 날아오른다.
빗줄기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비구름 위로 날아오르면 더 이상 비의 방해는 없을 것이다. 린노스케는 그 비구름 위로 날아오르는 동안 그와의 추억에 잠겨들었다.
*
먼 과거, 아직 환상향에 환상과 현실을 가르는 경계가 생겨나기 이전의 얘기다. 반요로 태어나 인간에게 배척당하고 요괴들로부터 경멸되어온 린노스케는 유년기를 벗어나자마자 노략질을 일삼으며 연명해 왔고, 그것이야 말로 자신의 삶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린노스케는 어깨너머로 배운 검술로 사람을 베는데 주저 않았다. 그것은 요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엔 믿을 만한 존재는 없었으며, 오로지 자기 자신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다. 오랜 산적 생활은 그를 유명한 요괴로 만들어 놓았고, 그가 활동하던 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그의 횡포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섣불리 퇴치하려 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 린노스케가 인간만 해치는 게 아니라 인간을 해하던 요괴들도 상당수 줄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인간도 요괴도 모두 베어버리는 린노스케 덕분에 그를 제외하고는 요괴로 인한 피해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마을 주민에게 있어 고마운 일이긴 하나, 마냥 고마워 할 수도 없는 모순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는 요괴를 죽인다 해도 인간도 죽이는 반요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가 없어진다면, 주변의 요괴의 수는 늘어날 것이다. 해서 아무리 그로 인한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퇴치하지 않기로 하는 게 주민들의 암묵적 동의였다.
그러나 그 암묵적 동의가 어느 날 찾아온 외부인에 의해 깨어지게 되었다. 삿갓을 쓴 긴 수염의 남자. 반인반령의 검사인 콘파쿠 요우무에 의해서.
자신이 모시던 사이교우지 가문이 몰락하고 갈 곳이 없어진 요우키가 정처 없이 떠돌다 들리게 된 어느 한, 산중턱의 작은 고을. 음의 기운이 강해 주변엔 요괴가 득실 거려야 할 산자락이지만 고을로 오는 내내 요괴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게 이상하다 여긴 요우키는 고을의 한 주민에게 그 연유에 대해 물었고 주민은 그것이 어느 한 반요에 의해서라고 말해줬다. 그 반요. 린노스케라 불리는 산적은 인간을 해치며 약탈을 일삼지만, 요괴도 죽인다. 예로부터 요괴로 인한 피해가 많았던 지역 주민들은 그 반요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 까지 알게 된 요우키는 반요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곧 그 반요의 퇴치로 이어졌다. 주민들이 반발을 하며 막아섰지만. 요우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아무리 그 반요가 해로운 요괴의 수를 줄여준다 해도 사람을 해친다는 것 또한 사실. 무엇보다 반요가 어떤 인물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고을을 떠나 반요가 자주 출몰할 법한 고갯길을 거닐던 요우키의 머리위로 한 줄기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점차 많아져 폭우가 되었을 때, 자신이 만나고 싶어 했던 반요가 모습을 드려내었다. 하얀 머리털. 붉게 빛을 뿜는 안광. 반요는 그야말로 흰 이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반요의 모습을 확인한 요우키는 곧 이어 자신에게 휘둘려 오는 은색 섬광을 피해내며 검을 뽑아냈다.
다시 자신을 향해 내려쳐지는 은색 섬광. 요우키는 뽑아낸 검으로 간단하게 흘려보낸다.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반요는 뒤로 몇 발자국 물려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공방이 이어졌다. 흰 이리. 반요 린노스케는 전력을 다했지만, 검객 요우키는 실력을 숨겼다. 전력과 비전력이 비등함을 이루고 있자니, 당연히도 지치는 쪽은 전력으로 임하는 린노스케다.
자신은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상대는 여유가 넘친다. 린노스케는 그것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 여겨 분노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나를 농락하지 마라!」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검을 휘두르는 요우키. 이제 검객의 검을 막아내는 것조차 힘들어진 린노스케는 자신이 곧 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허나,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쇄도해 오는 서슬 퍼런 섬광에 몸 이곳저곳에 생채기가 생겨나는 데도 마지막 까지 검객과의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어려울 텐데, 끝까지 저항을 하는 반요를 보는 요우키의 눈매는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그 속엔 그를 향한 동정심이 엿보였다. 그것이 매우 불쾌한 반요가 으르릉 대며 소리를 질렸다.
「나를 무어라 생각하는가! 자비를 베풀 생각을 말고 어서 배어라!」
폭우에 젖어서인지 반요의 모습은 마치 물에 흠뻑 젖은 짐승과도 같았다. 눈은 아직 살기에 차 있었고, 뿌드득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요우키는 말없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 검을 반요의 목에다 갖다 댔다. 린노스케는 그 순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분명 자신은 아직 저항을 계속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 어째서? 너무나 기이한 일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에 걸쳐진 검. 눈이 따라잡지 못할 만큼의 쾌검도 아니건만,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아직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지만, 사실상 전의를 상실해 버린 린노스케는 분함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노려볼 뿐이었다.
강하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린노스케는 자신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강자에게 패한 것이다. 왜 이제 와서? 이곳 주민들은 자신을 퇴치하지 않기로 한 게 아니었나? 물론, 그것은 요우키의 독단이었지만, 린노스케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야수 같은 눈을 하고 있구나.」
묵묵히 검을 휘두르던 검객의 입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요우키는 승패를 떠나 눈에서 살기를 지우지 않고 있는 반요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치기 넘치던 소싯적의 자신 역시 저런 눈을 했었지.
─ 스릉-. 탁.
요우키는 반요의 목에 대었던 검을 자신의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 순간 반요의 눈가가 씰룩이며 일그러진다.
「흥, 날 지금 살려둔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다!」
린노스케는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검객을 향해 지금이라도 회심의 일격을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뿐.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검객과 자신의 차이를. 그 격을 몸이 기억한 것이었다.
만약, 여기서 억지로라도 저 검객에게 대든다면 그땐 확실하게 자신은 죽게 될 것이다. 그 바뀌지 않는 확고한 운명이 린노스케에게 커다란 공포를 안겨주었다. 결국, 검객을 향한 살기는 생존 향한 욕구로 바꾸고 만다.
린노스케는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그에게 요우키는 말했다.
「네 놈은 산적 질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가?」
검객의 목소리는 잔잔하면서도 고요했다. 그러면서도 대나무와도 같이 올곧았다.
그에 대한 린노스케의 대답은.
「하하.. 내가 노략질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
요우키는 반요를 차갑게 쳐다보다 노성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몇 합이나 겨룰 정도의 검술이 있지 않은가. 그 검술을 노략질 같이 한심한 데에만 쓰다니 쯔쯧..」
그때였다. 요우키가 혀를 찬 직후, 더 이상 자신에게 대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반요가 자신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렸다.
쳉. 그 기습적인 일격이 요우키의 검집에 막혀 미수에 그치게 되었지만, 요우키는 적잖이 놀라했다. 이제 생존 본능만 있을 거라 여겼던 반요가 다시 자신에게 살의를 비추다니. 자신과의 격차를 몸이 기억 할 터인데. 그걸 이겨냈단 말인가?
린노스케는 미수에 그친 기습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침을 뱉었다.
「역시, 당신은 너무 강해.」
검을 거두는 척 하며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려는 린노스케. 그의 의도를 간파한 요우키가 검집을 반요의 복부에 겨누고는 그대로 강하게 밀어 넣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복부를 강타 당한 린노스케는 뒤로 쓰려져 바닥을 뒹굴었다. 켁켁. 강한 복통으로 기침을 연신 토해내는 린노스케는 거만하게 서있는 검객을 노려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크큭.. 그래, 당신이 대체 뭘 안다는 거야. 반요인 내가 검술을 부리는 정도로 평범하게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 갈수 있다고 생각하나? 늦었어. 난 이미, 너무 많은 인간을 죽여 왔으니까.」
그것은 그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들과 어울려 살고 싶어 했고, 덧없는 후회가 담긴 말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된 원인은 인간들에게 배척당해 온 유년기에 경험 때문이지만, 지금은 스스로 인간과 어울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 더러 평범하게 살아가란 말이야? 저 검객은 강하지만 너무 오만하다. 자신의 기준에서 모든 걸 판단하는 위선자일 뿐이다.
린노스케는 자신을 오만한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는 검객을 향해 분노를 담아 말했다.
「당신이 이런 나를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차라리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 난 단지, 인간을 죽이고 요괴도 죽이는 괴물일 뿐이야!」
요우키가 머리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언성을 높여 일갈 한다.
「너를 정하는 건. 네 자신이 아니다!」
그 박력에 분노하던 린노스케가 쥐죽은 듯 조용해 졌다.
「내가 너를 정해주마. 내가 너를... 제대로 된 반요로 만들어 주겠다.」
자신을 제대로 된 반요로 만들어 주겠다니? 린노스케는 검객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다만,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반투명의 하얀 혼령이 검객의 옆에 두둥실 떠있다는 사실만 알아차릴 뿐이었다.
도대체 저 혼령은 무엇일까? 린노스케는 곧바로 혼령의 정체를 본능적으로 파악 했다. 저것은 저 검객의 일부다. 자신의 혼령이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인간. 저 검객은 대체...
「허허.. 이것은 나의 반령. 내 반쪽이다.」
「반쪽이라니.. 그럼, 설마 당신은..!?」
「너와 같은 반요지. 엄밀히 따지면 반인반령이란 존재다.」
검객은 자신과 같은 반요였다.
다른 것은 자신은 요괴와 인간의 사생아이고 저 검객은 반인반령이라는 종족이라는 것. 하지만, 왜 일까? 검객이 반요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뿐인데. 살아온 인생도 전부 자신과는 다른 타인에 불과 한 그인데.
린노스케는 검객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끌리고 있었다. 저 자라면 의지하며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여태 자기 자신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온 린노스케는 혼란스러웠다. 타인에 불과한 검객에게 이렇게 까지 마음이 흔들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이 거센 파도와 같이 요동쳤다.
수십 년간 변함없었던 린노스케의 마음이, 가치관이 급격한 변화의 물살에 흔들리며 그를 갈등 하게 만들었다. 그를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를 믿어보고 싶다.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요우키는 반요에게 길을 제시해 주며 손을 내밀었다.
「나를 따라 오거라. 너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마.」
린노스케는 검객이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고민도 주저도 하지 않는다. 린노스케는 검객을 믿어보기로 했다. 살아가며 쌓아 올린 명예도 재물도 인연도 없기에 미련이 없다. 린노스케는 그를 따르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 나가기로 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그 날, 둘은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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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다 살다 이렇게 진지한 글 처음 써봄. 진짜로!
BL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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