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두둑 투두둑.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고도구점의 지붕을 연신 때리고 있었다. 한 바탕 퍼붓고 있는 폭우는 벌써 세 시간 째 기세를 꺾지 않았고, 찌르르 대는 곤충 소리와 꺄르륵 거리는 요정들의 웃음소리도 빗방울 속에 묻혔다. 모든 소리는 쏴아아. 투두둑 하는 빗소리에 묻혔다.
그런 빗소리뿐인 정적 속에서 고도구점의 점주는 평온을 만끽하며 책장을 넘긴다. 회백색의 머리, 안경을 낀 이지적인 외모를 지닌 그는 모리치카 린노스케란 이름의 반요이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이 고도구점의 명칭은 향림당(香霖堂).
평소에 찾는 이가 없는 낡아 빠진 물품들만 취급하는 고도구점이지만,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손님을 가장한 도둑 아가씨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 점이 현재로선 그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 그저, 빗소리만 들려오는 정적 속에 차분한 기분으로 책을 잃는 것은 그에 있어 하나의 큰 기쁨이니까.
그러나 이런 날인데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딸랑. 출입문에 달아놓은 방울 소리가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폭우로 인해 빗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도구점이라 그런지, 딸랑하는 방울 소리 역시 빗소리에 묻혀 꽤나 조용하게 울렸다.
점주는 자기 무릎위에 조용히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악천후 속에서도 이 별 볼일 없는 고도구점을 찾은 특이한 손님의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저기... 린노스케 씨.」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회백색의 단발, 녹색으로 된 조끼와 스커트. 명계의 백옥루에서 망령 공주를 모시는 정원사. 콘파쿠 요우무였다.
지금 쯤, 망령 공주의 시종을 들어야 할 그녀가 어째서 이런 악천후 속에 자신의 고도구점을 찾은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아 자신에게 중한 소식을 전하려 급하게 뛰어 왔을 거라 판단을 하는 린노스케가 그녀의 얼굴을 담담히 쳐다보며 물었다.
「꽤나 급하게 온 모양이구나. 설명을 천천히 해도 좋으니 일단, 숨부터 가라앉히도록 하자.」
린노스케는 자신의 의자 바로 옆에 놓아두었던 물주전자를 들고 컵에다 물을 따랐다. 이어, 물이든 컵을 요우무에게 건네주고 나서 그녀가 물을 들이키며 숨 돌리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 보았다.
푸하-. 물 한잔을 다 들이 킨 요우무가 참아왔던 숨을 한 번에 내뱉고 안정을 되찾는다. 입가에 흘러내린 침이 섞인 물줄기를 손등으로 닦아낸 요우무는 마음이 진정된 것을 확인 한 후, 고도구점의 점주인 린노스케를 찾은 이유를 말했다.
「돌아왔어요.」
차분하지만, 격양된 어조로 전한 이 한 마디. 무엇이? 누가 돌아왔는지에 대해 전혀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린노스케에겐 충분했다. 단지, 돌아왔다는 그 한 마디만으로 린노스케는 모든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그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그간 기다려왔던 그인데. 자신을 끝내 배신하고 떠나갔던 그인데...
요우무는 뒤에 자신의 말을 보충할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모든 걸 납득하고 가만히 눈시울을 붉히는 린노스케를 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쏴아아. 후두둑 후두둑. 고도구점 안. 한명의 여자와 한명의 남자. 거센 빗소리 속에 둘의 침묵은 한없이 고요한 정적을 만들어 냈다. 고도구점의 안은 처음부터 고요했고 정적이었다는 듯이 둘은 언제까지고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는 린노스케를 보며 요우무는 간절함을 담아 외쳤다.
「가요. 린노스케 씨는 반드시 만나셔야 되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또 다시 침묵이 이어졌고, 빗소리와 함께 정적이 되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린노스케는 조용하게 떨리는 음색으로 말했다.
「또... 거절당하라는 건가? 몇 번이나 나를 거부했던 사람인데. 나를... 배신했던 사람인데!」
울었다. 린노스케의 두 뺨을 타고 흐르는 짜디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며 바닥을 적신다. 그가 돌아온 것은 기쁘지만,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은 배신감이 다시금 되살아난 린노스케는 너무나도 아프고 슬펐다. 하지만, 기쁘다. 이 복잡한 심정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말없이 자신을 보고 있던 요우무 마저 린노스케의 감정에 동화가 되었는지, 눈시울을 붉히며 닭똥같이 큼직한 물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린노스케의 아픔을 알진 못하지만, 그의 기분만큼은 공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비슷하니까.
흑.. 끅끅 하는 소리가 빗소리만 가득했던 공간을 깨트렸다.
「린노스케 씨는 배신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할아버지는 아직도 린노스케 씨를 잊지 못하고 있어요. 틀림없어요. 할아버지는 아직도 린노스케 씨를..」
「그만.」
「......」
린노스케는 차갑게 분노했다. 그리고 요우무를 노려보며 이를 악 물었다. 하지만, 그 눈에 담긴 것은 비단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분노보다도 뜨거운 격정적인 감정과 그리움을 내비치고 있었다. 요우무는 그것을 보며 확신했다.
「역시... 린노스케 씨는 아직도....」
린노스케는 요우무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속으로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겼던 그였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를 향한 갈망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풀려난 것이다.
사실, 몇 번을 거부당하건 배신을 당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또 다시 거부를 당해 상처를 입건 또 다시 자신의 곁을 떠나 배신감을 느끼게 되더라도 린노스케는 그를 원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마음에 새겨지더라도 그를 향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반요였던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 줬던 그.
잘못된 자신을 바라 잡아줬던 그.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그.
너무나 올곧았던 그.
자신이 동경했던 그.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린노스케는 지금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가자. 백옥루로 가서 너의 할아버지를 만날 거다.」
그의 결단에 요우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 울고 있었지만, 지금은 기쁨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린노스케 씨가 그렇게도 바랐던 자신의 할아버지와 재회하게 된다. 자신도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는 것이 기쁘지만, 어찌 린노스케 씨 만 할까.
요우무는 부디 린노스케 씨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마음속 깊이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