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말로 설득하려고 해도 요지부동으로 ‘귀찮으니까 싫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레이무. 나도 그만 레이무를 움직이게 하는 걸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제 한시간 남짓 남은 시간으로 보아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게으른 레이무 때문에 골썩이고있는걸 뭐가 그리 재밌는지 옆에서 ‘킥킥’거리며 기분나쁘게 웃고 있는 니토리가 참으로 얄미워 보인다. 저 캇파년은 똥꼬 구슬만 좋아하는게 아니라 속도 아주 시커먼거 같구만. 그 점은 나에게 조건을 걸 때부터 알아봤었지만. 그 내면이 순진해 보이는 외면을 철저하게 배반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그도 그럴게 양 사이드테일을 한 귀여운 소녀지 않은가?
혹시나 니토리의 순진하고 귀여운 외향에 접근하는 분들이 있다면 미리 경고하겠다. 저래보여도 참 속이 시커멓고 변태스러운 속물이라고. 그래도 좋다면 말리지 않겠다. 인간이라면 부디 엉덩이 구슬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라.
어차차... 아무튼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레이무를 강제로라도 끌고가야겠다.
나는 레이무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일으키려고 했는데
「따악-!」
레이무의 불제봉이 나의 머리에 작렬했다.
자신의 겨드랑이는 소중하다 이거지? 나는 불제봉에 쎄게 맞아서 혹이 났을지도 모를 머리를 매만지며 레이무를 째려봤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움직이겠다는거야?”
나는 불만스런 어투로 레이무에게 짜증을 쏟아냈다. 레이무는 불만 가득한 나의 얼굴을 올려다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한다.
“삼시 새끼 고기반찬에 청소고 빨래고 전부 다해주면 생각해보지.”
아 정말.. 이기적인 무녀다. 이건 그냥 내가 하쿠레이 신사에서 경제력과 함께 삶림살이까지 떠맡으라는 거잖아? 아무리 남녀평등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이라고 할지라도 돈을 벌어오는 아내에게 삶림살이까지 맏기지않고 그건 남편이라도 마찬가지다. 맞벌이 부부라면 집안 일에 대해서는 서로가 양보하거나 협력해서 하지 누구 한쪽에 떠맡기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레이무가 나에게 원하고 있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기심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급하다해도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에 들어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나는 머리를 휘휘 내저으면서 말했다.
“진짜 글러먹은 무녀네. 너 그런 정신으로 무녀짓 하고있었냐? 으이그... 됐다 됐어!”
기가차서 더 이상 상대하기도 싫어질려고 한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서 어쩌러구? 작전은 실패하고 하타테를 돕고자 하는 나의 계획은? 아 정말 짜증난다.
그때 내 목덜미에서 간지럼을 느꼈다.
“제자, 레이무는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쓰자.”
나는 스이카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스이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대체 어디에서 들려온 목소리인거지?
목 부근에서 간지럼이 느껴졌었는데 혹시나 싶어 나의 쇄골쪽 부근을 눈을 굴려 바라보니 거기엔 손가락 만한 크기의 스이카가 앉아있었다.
내가 자신을 발견한 것을 알아차린 스이카가 나를 향해 두 팔을 흔들면서 웃고 있다.
“레이무를 포기하자니.. 그럼 다른 방법은 있는겁니까?”
나는 내 쇄골 위에 앉아있는 작은 콩같은 스이카를 내려보며 그렇게 물었다.
“레이무가 안된다면 레이무처럼 보이게 위장하는게 어때? 어차피 나는 당하는 역이니까 적당히 상대하는 척 하다가 쓰려지면 되니까 말야.”
“레이무처럼 보이게 위장이라니... 설마? 무녀복을 말하는 겁니까?”
“그래, 내 방에 내가 입던 무녀복이 있거든. 그걸 네가 입고 레이무인 척 연기하면 되지않아?”
“아.. 그건 싫네요. 하타테가 있는데 왜 내가 무녀복을 입겠어요. 아무튼 스승 말대로 그 방법으로 가는게 좋아 보일 듯 합니다. 뒷모습만 찍으면 적당히 속일수 있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나는 스이카의 대안이 의외라 생각했다. 왜 이생각을 못했을까? 비록 하타테가 레이무와 닮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찍어대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살을 붙어 날조에 가까운 기사를 쓰면 되지 않는가?
스이카가 나에게 미리 자신의 분신을 심어둔것과 이런 대안을 제시한 것을 보니 머리가 아예 없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그동안 오니라는 요괴에 대해 편견을 가졌다는 것이겠지.
스이카의 대안을 채용하기로 한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차가운 철판에 배를 밀착시키고 있는 글러먹은 무녀와 옆에서 기분나쁘게 웃어대는 캇파를 내버려 둔채 스팀펑크같은 집을 나왔다.
이번에도 하타테가 수고해야겠지만 루쨩☆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는 나이기에 무녀복을 입고 레이무인 척 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여장은 NAVER 라는거다.
현무의 계곡을 나와 하타테가 있는 요괴의 산 근처로 날아갔다.
하타테는 나를 보자마자 걱정스런 시선으로 물어온다.
“레이무는 오는거야?”
하지만 나는 하타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니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타테는 레이무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썹이 아래로 쳐졌다.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하타테에게 나는 스이카에게 들은 대안에 대해 말하기로 한다.
“레이무를 끌고오는건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건 아니야. 어차피 처음부터 꾸며낸 소동이니 끝까지 충실하면 되는거야?”
“끝까지 충실하면 된다니? 무슨 말이야?”
“레이무도 가짜로 만들어내는거지. 쉽게말해 무녀복을 입고 레이무인 척 연기하면서 스승과 대적하는 척 하면서 해결하는 모습을 멀리서 내가 찍으면 된다는거지. 그러니까 잘 부탁해.”
나의 설명을 끝까지 들은 하타테는 내가 무엇을 시키는지 알아채고는 안색이 퍼래졌다. 자기 더러 레이무가 되어 스이카에게 맞서라는 것은 아무리 연기라지만 하타테에겐 쉬운일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 어쩌겠는가? 이 내가 무녀복을 입을까? 그러니까 하타테가 해야한다고. 겁먹어도 소용없어.
하타테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나에게 항의하듯이 말을하기 시작한다.
“안돼, 난 못해... 내가 레이무를 연기하다니 거기에 이부키님과 대적하라는건 농담이지?”
“그러니까 연기잖아. 도대체 망설일 이유가 어딛어?”
“연기라도 무섭단말야. 산의 사천왕은 텐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나 마찬가지고 거기에 하쿠레이 레이무가 자신을 흉내낸걸 알기라도 하면 무사하지 못할거야.”
“너 진짜 겁이 많네. 이번 일에 있어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지니까 상관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
“솔직히 이건 네가 책임질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 애초에 처음 말했던게 취재는 네가 맡고 나는 옆에서 취재 내용을 적으며 촬영하는거 뿐이었잖아. 그 이상은 내가 따를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나는 사진만 찍고 기사나 적을거야. 나머지는 네가 하라고.”
왜 저렇게 까지 거부하는거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갔다. 설마 하타테가 저 정도로 완고할줄은 몰랐었고 내가 처음 조건을 걸었던 것이 족쇄가 되어왔으니 말이다. 기껏 스이카가 좋은 대안을 제시했는데 써먹지 못하게 생겼다.
내가 레이무가 된다는 선택을 제외하고는...
“역시, 네가 하면 되잖아.”
벼랑 끝에 몰린 나의 심정을 꿰뚫어보기라도 했는지 내 어깨에 앉아있던 콩 스이카가 나에게 무녀복을 입으라고 재촉해온다.
아아... 정말 싫다. 그래 내가 하면 되잖아!!!!
“그래, 내가 레이무 역을 할테니까 너는 최대한 내 모습이 안나오도록 찍어. 어차피 체격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무녀는커녕 변태로 밖에 안보일테니 적당히 네 선에서 포샵한 듯 무녀복만 나오도록 찍으라고. 알았지?”
나는 체념한채 그렇게 하타테에게 말했다. 그리고 콩 스이카의 안내를 받아 하쿠레이 신사로 향한다. 아직 무녀복을 입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마음이 지쳐가는 것 같다. 으이구... 이러다 자칫 잘못하면 나의 흑역사가 또 다시 추가될것만 같은데... 제발 그런 불상사 만은 없었으면 한다.
◆
하쿠레이 신사의 스이카의 방으로 들어온 나는 콩 스이카가 가리키는 옷장을 열어서 아무렇게나 구겨넣은 홍백의 무녀복을 발견했다. 사이즈는 스이카에게 맞춰져 있는지 상당히 작았지만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다. 이제 남은 시간도 별로 없으니 재빨리 무녀복으로 갈아입고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봤다.
초췌한 얼굴의 남자가 어중간한 길이의 단발을 끌어모아서 묶은 꽁지에 커다랗고 빨간색에 프릴이 들어간 리본, 그리고 벌어진 어깨로 유난히 작아보여서 흡사 아동복처럼 보이는 상의와 노출된 겨드랑이에서 삐져나온 겨털.
나는 거울속에서 입덧을 하듯이 입을 막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변태를 바라보고있었다. 이건 정말이지 맨 정신으로 볼수가 없는 몰골인 것이다. 제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살의가 생겨나는 것 같다.
“우웩....”
더 이상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간 정신 건강상 너무나도 나쁘다. 이 몰골로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그 이상으로 과연 이 모습으로 레이무라고 칭할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타테가 제 아무리 나를 레이무 스럽게 찍는다고 해도 한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레이무가 되기로 한 이상 망설일수는 없다.
“제자의 늠름한 모습에 눈물이 다나는 구나. 이 스승은 원래 눈물을 잘 안 흘리는데...”
콩 스이카가 괜한소리를 해왔다. 도대체 이 몰골이 어딜 봐서 늠름하다는 겁니까? 차라리 ts화 해서 진짜 여자가 되고 싶은 심정이라구요!
원하지도 않았는데 시각 테러범이 된 나는 행여나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하는 조마심을 가지고 요괴의 산으로 향했다.
◆
스이카의 본체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 곳으로 간 나는 그곳 일대가 말 그대로 산림파괴범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스이카와 그의 난동으로 인해 생긴 커다란 크리에이터와 마주했다. 난동을 부리라고는 했지만 이건 좀 과한게 아닌가 싶지만. 좋은 기사에는 그만한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정당화를 한 채 스이카에게 다가갔다.
“드디어 나타나셨구만, 레이무!”
10미터 가량의 거대한 스이카가 이 일대가 울려퍼질 정도의 성량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삿대질을 했다.
지금 나는 레이무다. 그런 암시를 걸어가며 나의 꼴불견 스런 모습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 가며 작전대로 스이카와 적당한 치고 받음을 할려는 찰나 ─
“어이―, 스이카!”
나의 발 아래쪽에서 스이카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고개를 내려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주인을 찾았는데 그 주인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이마 한 중간에 빨갛게 솟아오른 뿔과 찰랑거리는 금발. 여자인데도 내 키를 훌쩍 넘을 정도의 거구.
내가 연회에서 루쨩☆으로 있을 때 봤던 스이카의 옆에 있었던 그 오니 여성이었다.
거대한 스이카가 그 오니 여성을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줄어들어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버렸다. 이게 도대체 왠 변수란 말인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머리를 쥐어잡았다. 도대체 저 오니는 왜 갑자기 나타나선 방해하고 있는거지?
나는 당장이라도 저 오니를 탓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뼈도 못추리겠지. 하필이면 오니가 끼어들고 지랄이야!!
스이카도 저 오니에게 관심을 주지말고 제발 말로 잘 설득해서 돌려보냈으면 하는데.
「쿠아앙-!」하는 엄청난 파공음이 들리더니 스이카의 몸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게 보였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저 거구의 오니가 스이카를 주먹으로 날린 것 같다. 설마, 저 오니는 스이카의 난동을 막으려고 저러는건가? 이대로는 계획이 엉망진창이 될 것 같았지만 내가 할수있는건 이대로 손을 빨면서 지켜보는 것 뿐이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나도 스이카처럼 한 대 맞고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거구의 오니에게 맞아 나무들을 뚫고 날아간 스이카가 눈이 쫒을수 없을 속도로 그 거구 오니의 품안으로 파고들어 한 대 치는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오니도 스이카와 마찬가지로 뒤로 일직선으로 날아가며 나무들을 부려뜨리고 있었다.
이젠 레이무가 이변을 해결하는건 온데간데 없이 오니 대 오니로 상황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나는 나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었다는 사실에 씁쓸하게 웃었다. 이렇게 된거 특종의 노선을 바꿀 수밖에 없다. 산에서의 두 오니의 대결 역시 좋은 기사가 될수있으니 그 쪽으로 가닥을 잡자.
나는 멀리서 나를 보며 공중에서 굳어있는 하타테에게로 향했다. 이제 내가 할 역할은 여기까지이니 이 사이즈에 맞지도 않은 무녀복도 벗어버려야지.
“세상에... 산의 사천왕이 서로 싸움을 하다니....”
하타테가 뭐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그걸 자세히 듣고 싶어서 물어보기로 했다.
“산의 사천왕은 대체 뭐야? 그리고 둘이 싸우는게 그렇게 큰 일이야?”
“... 어..어!”
내가 갑자기 물어오는게 놀란모양이다. 그러나 이내 침착성을 되찾은 하타테가 나를 응시하다가 싸우고 있는 두 명의 오니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저 두 분은 한때 요괴의 산을 지배하던 오니들의 두령이야. 산의 산천왕이라고 모든 인외들의 경외를 받던 존재로 사실 나도 저 분들을 이렇게 직접 보게된건 처음이야. 어릴 때부터 이야기로 들어오던 사천왕은 텐구 사회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그런 존재라고.”
파랗게 질려있는 얼굴의 하타테지만 그의 눈에는 그들을 향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백귀야행의 이부키 스이카 그리고 괴력난신의 호시구마 유우기. 산의 사천왕의 칭호를 가진 저 두 분의 강함은 단신으로 우리 텐구 사회를 박살낼수 있을 정도라서 존재 만으로도 무서워할 수밖에 없단 말야. 그런데 천년전에 요괴의 산에서 사라졌던 오니들과 두령이 지금 와서 모습을 드려낸건 정말이지 큰 일이었어. 다행히 얌전히 있다는 사실이 모두를 안심시키고 있었지만 저렇게 사천왕 두 명이 싸우는 모습을 누구라도 봤다간 경악하지 않을수 없어.”
하타테의 말을 들어보니 나의 스승을 자처하는 스이카가 실은 엄청난 인물이란걸 깨닳을수 있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오니의 두령이라니. 거기다 단신으로 텐구들을 몰살시켜? 이거 완전 캐사기 먼치킨이구만. 그런 존재가 4명이나 있고 그 중에 두 명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있으니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이 보통일도 아닌 사천왕이 끼리의 싸움이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비록 레이무의 영웅담 기사는 쓸수없겠지만 저 정도의 존재가 서로 주먹다짐을 벌이고 있는 것 모습이야 말로 특종이 아닌가?
하타테에게는 재앙이지만 나에겐 뜻하지 않은 횡재다.
“하타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천왕의 싸움을 절대 놓치지 말고 찍어대. 이건 특종이야.”
그렇게 명령을 하고있는 나를 보는 하타테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녀에게는 황당무계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이건 놓칠수 없는 찬스였다. 그리고 기껏해야 사진 몇 방 찍어대는 것인데 뭘 망설인단 말이냐? 혹시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겁을 먹고 있는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니 하타테에게 마냥 맡겨놓을수가 없다.
나는 하타테의 폴더폰을 빼앗기위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자신의 폰을 빼앗으려 한다는걸 눈치 챈 하타테는 몸을 뒤로 빼며 나를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뭐하는거야? 왜 내 휴대폰을 뺏으려는거야?”
“거기서 쫄고있으면 제대로 못 찍을거 아냐? 그러니 내가 대신 찍으려는거지. 이리내.”
“... 이건 남에게 함부러 맡길만한 물건이 아니란 말야.”
“어떻게 하는지 사용법 정도는 잘 알고있으니까 걱정말고 나한테 맞기라니까!”
참 답답하네. 내가 망가뜨릴거라고 생각하는건지 자신의 휴대폰을 소중한 물건처럼 대하는 하타테를 보니 신경질이 난다. 그렇게 소중하면 자신이 제대로 찍던가. 계획이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덜덜 떨고있으면 어쩌란건지?
나는 짜증섞인 투로 말한다.
“나한테 맡기기 싫으면 제대로 하라구. 이미 계획은 변경되었고 아야에게 이기려면 저 둘의 싸움을 최대한 멋지게 찍는 수 밖에 없다는건 너도 알거 아냐?”
“아..알았어... 이번 만은 너한테 내 휴대폰을 맡길게, 사용법은 안다고 했지.”
“그래, 바깥세계에서는 흔한 물건이었으니까 말야.”
결국 자신이 나설수 없었던 하타테가 나에게 휴대폰을 맡기고는 산의 사천왕의 싸움 장소로부터 멀리 몸을 내뺐다. 비록 겁 많은 하타테지만 저정도로 두려워 하는 존재라면 설령 아야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접근해서 찍을수 없을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 아야나 다른 경쟁자들로부터 우위를 점할 수가 있다.
사천왕이라는 존재의 공포가 뼈속 깊이 새겨들어있는 텐구들은 결코 나와 같은 사진을 찍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겠지.
하타테의 휴대폰을 손에 든 나는 스이카와 유우기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접근하기로 했다. 내가 하타테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벌어진 싸움이 상당히 격렬했는지 그녀 들의 주변으로 크고 작은 크리에이터가 생겨나있었다. 그리고 입에 한 줄기 가느다란 피를 흘리는 두 명의 오니. 그 중에 덩치가 큰 호시구마 유우기가 허리를 세우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가의 피를 닦는 것이다.
“이 꼬맹이가. 힘으로는 나 한테 안될텐데 육탄전을 벌이고 있네.”
“그러는 넌, 이제 그만 적당히 하는걸 그만두는게 어때?”
자세를 가다듬은 두 명의 오니는 숨이 막혀올 정도의 짙은 요기를 뿜어내며 몸 안의 요력을 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빠짐없이 찍어대고 있었지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길래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고있었다.
이제 곧, 이 일대는 큰일이 날것이다. 그것이 나의 직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쿠우우웅 - !」
유우기의 발구름에 그 주변으로 반경 100미터 이상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크리에이터가 생겼고 유우기의 몸으로부터 강대한 요력이 방출됬다. 그것은 나의 몸이 당장 이곳에서 달아나야 한다고 경고를 해올정도로 압사할 만큼 위험한 사기였다.
주변을 집어삼킬 만큼의 요력을 방출하던 유우기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눈이 쫒을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스이카를 향해 주먹을 찍어내린다.
피할수 없을 만큼 빠른 공격. 그러나 스이카는 여유로워 보였다. 자신의 허리에 차고있던 이부키효를 들이마신 스이카가 몸을 가볍게 뒤로 빼고는 유우기에게 외친다.
“캬하하.. 그렇게 나와야지 재밌지. 이쪽도 장기인 요술을 보여주지.”
스이카가 손을 폈다가 주먹을 쥐니 무언가가 유우기의 주먹을 막았다. 그 충격으로 주변의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누웠고 강한 돌풍에 의해 나의 몸도 날려져버렸다. 돌풍에 의해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였지만 나는 그 순간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떠서 유우기의 주먹이 내질려진 장소를 바라보았다.
유우기의 무시무시한 주먹을 막은 것은 땅에서 튀어나온 단단한 바위였다. 보통의 바위라면 유우기의 주먹을 막기는커녕 흔적도 남지 않을만큼 산산조각 났을테지만 저 바위는 달랐다. 한 눈에도 알수있을 만큼 바위에 함유되어있는 금속성분이 쇳덩어리로 보일 정도로 거뭇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것은 어떠한 바위보다 단단하게 뭉쳐져서 압축되어있는 덩어리 그 자체였다.
“내 주먹에도 멀쩡하다니, 정말 네 요술은 혀를 찰 정도로 신기하기 짝이없어. 하지만 이건 어떨까?”
‘흐아압!’하고 기합을 내지른 유우기가 주먹을 허리에 대고는 그대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내질려지는 주먹.
「콰아아아앙 ─ !!」
믿을수 없을 만큼 엄청난 파공음이 울려퍼졌고 유우기가 내지른 주먹 넘어로 보이는 것은 귀신과도 같은 패력이 담긴 권압에 의해 일방적으로 개통된 광경이었다.
분명 유우기가 주먹을 내지르기 전에는 나무나 바위 등, 울창한 산림이 존재했었지만 주먹을 내지른 이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순전히 괴력으로 인한 권압에 어디까지 뻗어나간지도 모를 정도의 땅을 파버린 길을 낸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믿을수 없다는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주먹질 한 방에 대형 공사현장이 생겨버린단 말이냐? 그것도 고속도로를 내버리다니. 오니가 무식하게 쌔다는건 알고있었지만 저건 격이 다른거다. 스쳐도 최소한 가루가 되버릴 정도의 위력. 그냥 존재 자체가 재앙급인 것이다. 어떻게 저런 놈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있을까? 텐구들이 거품을 물고 자빠질만 하다.
하타테 그동안 미안했어. 네가 겁이 많은게 아니라 저 작자들이 그냥 규격외인 것이었던 거구나.
저런 놈을 막으려면 최소 z전사가 와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dc의 슈퍼맨이나 마블의 헐크가 와야하지 않을까? 뭐 저런 미친 캐사기가 다있담? 그리고 그 캐사기와 맞먹는다는 스이카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나는 넋잃은 듯한 얼굴로 유우기가 내버린 고속도로를 쳐다보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하타테의 폰을 들어서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기절 초풍할 상황이라도 중요한 건 절대로 잊지않는다. 그것이 나의 철칙.
유우기의 턴이 끝났으니 이번엔 스이카의 턴이라고 말하는 듯이 스이카로부터 무시무시한 요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스이카가 손을 번쩍 드니 땅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최소 진도 8.0 수준의 지진이었다. 이 엄청난 지진에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 무너져 내릴것만 같았다. 그리고 장관을 이루고 있던 바위의 한 부분이 무너져내렸다.
그와 동시에 스이카의 발 밑을 기준으로 유우기 까지 일직선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대지. 그 밑으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붉은 액체가 용솟음쳤다. 갈라진 땅으로부터 용암이 솟아 올랐는데 그것이 지상으로부터 6미터 이상을 치솟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치솟은 용암들이 한데로 뭉쳐지더니 커다란 공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것은 점차 크기를 줄여가더니 어느새 손바닥 만한 크기의 공이 되었다. 하지만 저 용암으로 이루어진 공은 결코 위력도 같이 줄어든게 아니다. 처음 바위같은 크기에서 투포환 수준으로 압축된 만큼 상상도 할수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는것이었다.
그것을 자기 손위에 올리고 있는 스이카가 유우기를 향해 이를 드려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건 내 선물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유우기를 향해 용암이 압축된 공을 가볍게 던지는 스이카.
유우기는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지 양 주먹을 허리에 붙이고 자세를 낮추고는 ‘크아아아아-!’하는 괴성을 지르며 요력을 단번에 상승시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구체를 향해 양 주먹을 내지르는 유우기.
「쿠콰콰쾅 ─ !!!」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솟아올라 주변 일대를 뒤덥었다. 그 이어서 다시 들려오는 굉음. 몸을 뒤덥는 뜨거운 열기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급하게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열기가 올라오고 있는 지상을 바라보니 그곳은 말그대로 불바다가 되어있었다. 유우기의 권압과 스이카의 압축된 용암이 격돌해서 일어난 참사.
엄청난 열 에너지를 품은 구체가 유우기의 주먹에 의해 사방으로 펴져나간 것이었다. 그것은 곧 화재를 불려일으켰고 구체가 흩어지면서 나온 열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녔는지 산의 곳곳에다 구덩이를 만들어 놨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낸 유우기는 양손이 숯이 될 만큼 큰 화상을 입은 듯 보였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짓는 유우기. 참 경악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대로 저 둘이 계속 싸움을 해댔다간 요괴의 산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방금 전에 그들의 싸움에 쾌재를 불렸던 내 자신이 참으로 멍청하다고 느껴졌다. 단지 둘의 싸움일 뿐인데 산이 이정도로 엉망이 되 버리다니. 처음엔 단지 스이카의 난동으로 나무 몇 십 그루나 크고 작은 공터를 만들어 냈던 것이 이제는 산의 일부분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일이 걷잡을수 없이 커진 것을 깨닳고 있지만 이젠 내 손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당하게 된다면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묻지않을수가 없을거다. 쉽사리 용서받지 못할 사안이라면 나는 정말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일인 것이다.
그렇게 불안한 경우들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등 줄기로부터 식은땀이 쉴새없이 흐르는 것이다. 어떻게든 저 두 오니가 산을 이 이상 망가뜨리지 않게 말려야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말릴수 있을지 수단이 서질 않는다.
그나마 나를 제자라고 해주는 스이카에게 부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산의 신님들이 와서 말려줬으면 했지만 과연.. 저 광경을 보면 신이라고 할지라도 끼어들기 힘들 것 같다. 역시 여기선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지?
나는 각오를 다지고 스이카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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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서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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