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는 의도치 않게 40kb 용량 까지 가버린 회입니다.
그래서 스압 표시를 달았음.
이렇게 길어져 버린 이유는 본편에서의 주인공과 히지리의 논쟁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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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토라마루 쇼우의 주변을 서성이며 적당한 타이밍을 재고있었다. 어제는 쿄코쨩이 지쳐있었기에 오늘로 미뤄왔던 쇼우의 공략.
이치린이 지나치게 음탕한 관계로 본의아니게 공략이 아닌 커밍아웃을 시켜버렸지만 쇼우의 경우는 본 성격이 거칠다는것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차분한 모습을 하고있어 쿄코쨩의 행복감에 대한 저항이 없을것이다.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계획을 짜고있는 나는 흡사 엘X社의 모게임에 나오는 향상 목에 노란 수건을 걸친 체육복의 아저씨와 같아보인다. 하지만 진짜 그 아저씨 처럼 행동했다간 큰일이 날지도 모르지. 이건 픽션이 아니니까.
그러나 남자라면 한 번씩은 꿈꿔볼만한 일이 아닌가? 여자들을 공략하여 자신의 발 밑에 두게한다는것 말이다. 단지 그 실행역으로 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세워서 자신의 일에 대한 댓가로 몰락해 가는 모습을 조소를 흘리며 구경하고 싶지만 여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데다 지금은 내가 실행역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너무 막나가서 몰락해버리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문제가 심해질것 같으면 언제든지 관둘 대비가 되어있다.
쿄코를 이용한 명련사의 여자들을 공략하는것도 남자의 꿈에 준하는 맛을 느껴보기 위한 일종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 벗어나게 될지 모르는 곳이라 그 동안의 따분함을 잊기위한 유희.
쇼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로 있는 곳은 법당이었다. 불상이 놓여져 있는 자리 옆에서 비사문천으로 신도들의 신앙을 받기위해 자세를 유지한체 서있는게 쇼우다.
이 상태에서 쿄코쨩의 행복감을 맛보게 했다간 이치린과 비슷한 꼴이 되고말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쇼우가 법당을 나올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비사문천으로서 계속 법당에서 서있기만 한게 아니라 어느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법당의 문 옆으로 나오는 쇼우의 모습이 보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은 나는 쇼우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로했다.
"비사문천 대리님, 법당에서 자세를 유지하느라 피곤하시죠?"
"명련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피곤할 일도 아닙니다."
모범적인 대답을 하고는 나를 지나치려고 하는 쇼우. 하지만 이 눈을 속일수는 없다. 쇼우의 본성은 사실 가만히 있는걸 좋아하기 보다는 뛰어놀고 싶어하는 한마리의 야수라는 것을.
육체적으로 문제없다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일을 하고있는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파고들어서 쿄코의 행복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파하기로 했다.
"제가 피곤하냐고 물은것은 육체만을 말한게 아닙니다. 실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있으니 피곤한게 아니냐고 한거죠."
"비사문천이라면 문제될게 없습니다. 피곤한 부분은 스스로 인지하고 충분히 쉬고있기 때문에 걱정할 사안은 아닙니다."
피곤함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쇼우. 이야기가 쉽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충분히 쉰다는 것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피곤을 덜어낼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떻겠습니까? 들어보시겠어요?"
"딱히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으나 한 번 들어나 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쿄코쨩을 쓰다듬는 것으로 그 기분을 만끽해보는 겁니다."
"으음...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어째서 쿄코쨩을 쓰다듬는게 피곤을 덜어낸다는 거죠?"
"백문이 불허일견이라 한 번 보시는게 어떨까요?"
"그러도록 하죠."
너무나 쉽게 응해준 쇼우가 참으로 조으다~
여기까지 설득시켰으면 이젠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이는것 뿐. 도마위의 생선과도 같아서 쿄코쨩만 찾으면 마음대로 요리해 버릴수도 있다. 과연, 고고한 비사문천의 대리 씨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살살 녹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크흐흐흐
나는 마당을 쓸고있는 쿄코쨩에게 손을 흔들면서 이리로 불렸다. 쿄코쨩이 나를 보며 뛰어오는걸 보면서 이제 모든 준비는 끝마친 셈이라고 속으로 웃었다.
나는 한적한 툇마루로 쿄코쨩과 쇼우를 안내한뒤 쿄코를 마루위에다 눞혔다. 나의 이러한 행동에 아무런 의심도 않고 바라보던 쇼우에게 나는 불편하게 서있지만 말고 마루에 걸터 앉으라고 권했다.
쇼우가 마루에 앉은걸 확인한 나는 능력을 써서 쿄코쨩과 쇼우의 감정을 익숙하게 연결한 뒤에 쿄코쨩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쿄코쨩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기분좋아한답니다. 더불어 턱을 간지럽히는것도 좋아하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쿄코쨩의 턱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등을 쓸어넘기고는 쿄코쨩을 배가 보이도록 돌려 눞힌 뒤 배쪽을 쓰다듬었다.
"특히 이 배를 쓰다듬어주는걸 정말로 좋아하죠."
나는 쇼우쪽을 힐끔 쳐다봤다. 쇼우의 얼굴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살살 녹는 얼굴로 애수에 젖은 눈망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무라사나 나즈린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민감하고도 솔직한 반응이었고 마치 이치린이 법문 중에 가버리기 직전의 표정과 흡사했다.
그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길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녀가 술 한모금에 성격이 돌변하던것을 떠올려냈다. 사실 비사문천의 대리란 자리도 그녀가 원해서 자처했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맞지않은 자리임을 깨닳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반전해버릴 수준으로 스트레스가 쌓일리가 없을테니 말이다.
쿄코쨩의 기분좋음을 느껴 행복에 젖은 표정이라기 보단 마음 깊이 꾹꾹 눌려왔던 본능의 편린들을 전부 해방이라도 시킨듯이 천국에 다다른 듯한 희열의 표정을 하고 있는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어쩐지 나도 그 행복의 일부라도 맛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태까지 해왔던 1:1이 아닌 1:1:1이라는 식의 연결은 시도해본적이 없었기에 잘 될지는 알수없었으나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나는 능력을 써서 쇼우가 느끼고있는 행복감을 맛보고 싶은 욕망에 그녀와 나의 감정을 연결 지어보았다. 당장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쿄코쨩의 배를 한번 쓰다듬는것으로 '찌릿'하고 가슴의 깊은 곳부터 애달픈 감정을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친 파도처럼 빠르게 물결쳐서 나의 마음 전체를 해방감이라는 희열과 포근한 행복감이 뒤섞여 마치 음과 양 두개의 성질이 조화를 이루어 태극을 이루듯이 그 두가지 확연한 감정은 서로를 상쇄시키지 않고 나의 이성까지도 물들여 갔다.
쿄코쨩의 행복감이 쇼우의 해방감을 자극시켜 극상의 희열로 재탄생 시킨것이다.
어느새 나는 입을 헤~벌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것은 위험하다는것을 직감적으로 감지해냈다. 쇼우만을 빠져들게 해야하는데 내가 빠져들면 어쩌겠는거야?
하지만 그만 둘수가 없었다. 이미 나조차도 이 감정에 중독되 버린것이다.
그 뒤로는 얼마나 긴 시간이 흐른지는 모른다. 다만 주지승이 약을 잔뜩 빨아댄것 같이 헤실거리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하고 제지하기 전 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안보인다 했더니 여기서 다들 무슨 짓을 하고계신겁니까?"
주지승의 그 말에 문뜩 정신을 차렸지만 잠시 뿐이었다. 나는 다시 신경을 쓰지않고 쿄코쨩의 배를 주물려댔다.
"불가의 가르침을 받는 몸이 한 낮 쾌락에 지배되어있다니. 토라마루 쇼우, 비사문천의 역활을 하고있으면서 어찌 본능을 거스르지 못하고 있는거예요?"
주지승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나를 비롯한 쇼우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머리에 동물귀와 꼬리까지 빼낸체 마루를 뒹굴고 있었다. 한술 더떠서 '아흥~ 아흥~' 거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기고 재밌는 모습이야.
하지만 그건 나의 감상일 뿐. 히리지 뱌쿠렌이라는 주지승에게는 이미 인내가 끊어졌는지 삼백안을 뜨고 흐트려진 쇼우를 노려보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대마초라도 몰래 구해다 피운것 같군요. 지금 모습을 신도들이 봤다간 명련사에 악명을 만들수 있으니 당장 교정을 해드리죠."
주지승은 나와 쿄코는 물론이고 쇼우마저 약쟁이로 만들었다. 하긴 이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약을 잔뜩 들이킨것 같겠지. 그런데 주지승의 분위기로 보아 실력 행사라도 해올것 같았다. 여기선 내가 협상을 시도해 잘 무마해 봐야하겠지?
"주지도 여기와서 같이 느껴보지 않을래요? 기분 짱 좋아!"
나도 제정신이 아닌것 같다. 어째 하고 많은 말 중에 진짜 약쟁이같은 말이 나온단 말이야? 이럴게 아니라 히지리도 능력을 써서 똑같이 만들어버리면 간단한 일인데
그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주지승이 내 멱살을 잡아왔다.
"역시, 이 일의 원흉은 당신이군요. 루키드 씨!"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다 매쳐졌다.
그 덕분인지 정신이 바짝 차려진 나는 머리를 휘젖고는 주변을 살펴봤다. 여전히 '아흥~'거리며 마루 배를 깔고 엎드려있는 쇼우와 기분좋게 누워있는 쿄코쨩. 그리고 주지승의 두 다리가 내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희 가족들을 타락 시키고있는지 몰라도 이 일은 결코 용서해줄수가 없군요."
갑작스런 충격에도 아직 쿄코쨩과 쇼우에게 걸려진 나의 능력이 해제되지 않은 점이 놀랐지만 그 보다 나와 쇼우 간에 연결이 끊어진것이다. 나의 능력 자체가 좀 더 견고해 진걸 보니 앞으로도 발전을 해 갈수있겠다는 감상이 들지만 지금은 주지승에게 늘여놓을 변명 거리가 시급했다.
"저는 비사문천 대리님이 상당한 스트레스에 힘들어 한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풀수있게 도와드린것 뿐입니다."
나는 일어나면서 몸을 털고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 뿐으로는 히지리가 납득해 줄리가 없다. 분명 궁색한 변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테지.
주지승이 쇼우의 늘어진 얼굴을 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쇼우가 힘들어하는건 저도 압니다. 그래서 밤마다 반야탕을 허가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마초와 같은 환각을 유도하는 해로운 것은 안됩니다."
아직도 쇼우의 상태가 약을 빨은거라고 착각하는 주지승. 결과만 놓고보면 약을 빤거와 비슷한 상태지만 근본적으로 다른것이다. 입으로 설명해 봤자 알아줄리가 없으니 나는 능력을 써서 히지리와 쇼우의 감정을 연결해 보았다.
나의 능력에 의해 위화감을 느낀 주지승은 나를 노려보며 자세를 가다듬었지만 나는 그런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쿄코에게 다가갔다.
"스님~ , 대마초 따위랑은 비교도 안될정도로 기분이 좋을겁니다."
나는 주지승을 보며 싱긋 웃으며 쿄코쨩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핫!'하는 소리와 함께 자세가 흐트려진 주지승.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 기세를 올려 쿄코쨩의 턱 밑을 간지럽히면서 동시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지승은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듯 보였으나 이내 행복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쇼우와 마찬가지로 말 못할 근심을 가지고 있을거다. 나는 그런 판단을 하면서 쿄코쨩의 목덜미를 안마하듯이 주물렸다.
"꺄르릉~~"
기분좋은 얼굴을 한 쇼우가 뒹굴었다. 그러다 나에게 엉금엉금 기어오더니 내 품속으로 머리를 디미는 쇼우. 마치 애교넘치는 한마리의 짐승이 된 그녀는 나에게 직접 쓰다듬어 달라는듯이 교태를 부려온것이다.
그녀가 호랑이의 이미지를 한 요괴임을 말해주는 듯한 꼬리가 어울리지 않게 흔들렸다.
한 손으로 쿄코쨩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쇼우의 머리를 쓰다듬자 주지승은 더이상 참지 못했는지 '아~'하는 신음을 흘렸다.
"안돼... 불가에 몸을 맞긴 내가 쾌락에 지다니.."
"쾌락이 아니라 평온함과 행복감입니다. 열락이라고도 하는 극상의 기분으로 모든 근심을 벗어나 번뇌를 느끼지 않는 상태인겁니다."
나는 두 마리의 짐승을 양 무릎에 머리를 눞히고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주지승은 나의 말에 반박도 못한채 그 모습을 마냥 지켜보면서 안락함에 취해 몸을 기둥에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무라사와 이치린이 언제 나타났는지 기둥에 기대서 간신히 서있던 주지승을 부축하고는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 짐승놈아, 히지리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맞아, 언니에게 음흉한 짓을 한건 아니겠지?"
이치린은 둘째치고 무라사는 이미 한 번 맛을 봤을텐데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쿄코쨩과 쇼우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고 말을 했다.
"짐승의 손으로 행복을 맛봤던 세라복이 뭔 소릴하는거야? 그리고 거기, 승려는 어제 법당에서 꽤나 격렬하게 가버리던데 괜찮아?"
차분한 어조임에도 명백한 조롱과도 같은 나의 말에 무라사와 이치린은 얼굴을 붉히고는 적의 담긴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당장이라도 나를 날려버릴것만 같은 두 명이지만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들은 안것이다. 나의 능력에 걸리면 내 무릎에서 평온하게 누워있는 쇼우처럼 된다는 것을.
그런 그녀들을 향해 나는 유혹을 해본다.
"무라사는 좋지않았던 거야? 원한다면 좀 더 오랫동안 그때 느꼈던 기분을 맛보게 해줄텐데. 그리고 주지승을 너무나 좋아하는 이치린 씨도 어때요? 법당에서 그렇게 가버린게 처음 아니었나요? 그거 제 능력 때문이랍니다. 마침 주지승도 곁에 있는데 좀 더 욕망을 드려내도 좋을텐데요."
무라사와 이치린의 눈은 적개심이 아닌 망설임으로 변질되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있던 그녀에게 능력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 정도의 인원에게 다중으로 연결하는 것은 처음이고 성공에 대한 확신도 없었지만 이기회에 나의 능력이 몇명까지 연결할수 있을지 실험할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했다.
쿄코쨩과 쇼우 그리고 주지승과 연결된 능력을 무라사에게 연결시켰는데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머리속에서 두통과 함께 기존에 연결시킨 선의 이미지들이 흐트려지기 시작한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주지승에게 연결된 선을 해제하고 마찬가지로 쇼우도 해제했다. 그리고 이치린에게 연결시킨 나는 쿄코쨩, 무라사, 이치린 이렇게 서로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쿄코쨩의 쓰다듬어 봤다.
가장 먼저 반응한것은 이치린이었다. 가뜩이나 히지리를 부축하고 있던 그녀였기에 자신이 연심을 품은 상대와 밀착하고 있다는 상황이 더해져서 우수에 찬 눈빛으로 먼산을 보고있었다.
그 다음 무라사가 손으로 자신의 빰을 감추었다. 그 모습에 나는 만족을 하고 쿄코쨩 등과 꼬리를 훑으면서 쓰다듬었다.
"아아.. 히지리.."
음탕한 본성을 드려낸 이치린이 신음소리를 내며 헐떡이자 그녀에게 부축받고 있던 주지승이 놀란듯 이치린을 옆으로 밀쳐냈다.
"역시, 이대로는 안되겠어요."
주지승은 정했다는 듯이 다에게 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나는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주지승을 올려다 보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살짝 미소지은 표정이었지만 절대 호의적으로 보이지않는 주지승의 얼굴. 해를 등지고 있어서인지 그림자로 인한 음영까지 더해져서 살벌함 까지 자아내고있었다.
주지승이 나의 두 어깨를 잡았다.
"루키드 씨에게는 부처의 가르침이 소용 없었나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주지승을 얼굴을 쳐다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언제 원해서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방금전 까지만 해도 기분 좋았잖습니까?"
"그건 전부 루키드 씨가 간사한 능력을 써서 그런것이지 그런 능력으로 명련사의 식구들을 타락시키는 짓은 더이상 하지말아주세요."
"타락이든 뭐든 지금 보이는 무라사나 이치린의 반응은 솔직한 겁니다. 행복한 기분이 드는데 그 누가 저항하려 하겠습니까?"
"그 행복감은 모두 능력에 의한 거짓이란게 문제입니다."
"거짓이 아니죠. 바로 제 무릎을 배게삼아 누워있는 쿄코쨩이 느끼는 감정이 행복감의 출처입니다."
주지승이 내 무릎위에 싱글벙글한 얼굴로 누워있는 쿄코쨩을 보더니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는 몸을 비틀어 나를 어깨채로 마당으로 던져버린 주지승.
나는 갑작스럽게 몸의 중심이 흩어져 저항도 못한채 그대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흙알갱이가 빰을 따갑게 누르고 있는것을 느끼며 손으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킨 나는 주지승의 얼굴을 봤다.
주지승은 미간을 찌푸린채 사나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또 그때와 같이 폭력을 행사해 올까 하는 두려운 심정으로 양 팔로 가드자세를 취한 나에게 주지승이 감정을 자제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해왔다.
"명련사에서는 요괴들이 인간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하기위해 세워진 절입니다. 그 이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식구들에게 마수를 뻗어 희롱하다니. 용서할수가 없습니다."
사무적인 느낌의 차분한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더할것도 없이 깊은 분노가 서려있었다. 즉, 그것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고 자신의 공격에 대비하는 자세를 취하자 말을 이어나갔다.
"요괴로써의 본능이 남아있는 식구들에게 반양탕이나 육류를 부분적으로 허용해서 폭주하는 일 없이 스스로 자제할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데 당신은 불필요하게 그 점을 파고들어 식구들의 이성을 흐트리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을 저는 악이라고 칭해도 될까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궁금한게 있네요. 어째서 그렇게 까지하면서 요괴와 인간의 공존에 신경 쓰는겁니까?"
나는 경계하는 자세를 풀어서 주지승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에 대한 주지승의 답변은
"천년 전 제가 봉인되기 전의 세상은 착한 요괴들도 인간에게 사냥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환상향이라는 요괴와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요괴를 무서워 하며 거리를 두고있습니다. 이는 아직도 인간과 요괴의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기막히는 군요."
기막힌다. 그것이 히지리 뱌쿠렌이라는 주지승의 대답에 대한 나의 감상이다. 이 히지리 뱌쿠렌이라는 땡중은 잘못알고 있는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주지승에게 느꼈던 그녀의 잘못된 이념을 따지기로 했다.
나는 자신의 말을 짤라먹고 눈을 가늘게 뜬 나를 불쾌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주지승을 향해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음성으로 나의 생각을 말해나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기가 막혀요. 어디서 부터 틀려먹은걸까? 음.. 그래, 인간과 요괴의 공존. 그것은 틀렸다고 볼수없습니다. 물론, 환상향 한정이지만 이곳 만의 법규를 만들어 마을 내에서도 요괴들이 인간들과 섞여 다니는 등 충분히 공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평등이란 과연 뭘까요?"
나는 그렇게 말을 끊고 주지승을 눈에 힘을 주어 쳐다봤다. 내가 자신에게 문제를 내고 있다는걸 눈치챈 주지승이 입을 열어 답변을 한다.
"인간과 요괴 모두가 평등해지는것은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동등한 존재로써 화합하는 겁니다."
나는 그 말에 '하-'하고 짧게 조소를 담아 입 밖으로 숨을 내뱉었다. 역시나 저 주지승은 착각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 점을 지적해주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
"아무리 잘 사육된 호랑이라도 인간과 같은 우리에서 생활하는건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존재 자체가 틀린 인간과 요괴가 동등해 지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네, 요괴로써의 본성을 최대한 억누른다면 가능하다는것을 여기 식구들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식구들이 증명해줘? 하나 같이 별나다는것만 증명하고 있겠지.
나는 주지승의 답변에 참을수 없이 우스웠다. 이거야 원, 생각이 짧은 애도 아니고 자기 입으로 천 년전이라는 말을 담는걸 보니 상당히 나이도 많을텐데. 나이를 헛 먹었구나 하고는 그녀를 속으로 조롱했다.
"아무리 본성을 억누른다고 해도 요괴가 가볍게 휘두른 팔 하나에 보통 인간의 머리는 손쉽게 날아가 버립니다. 존재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채 그저 본성을 억누르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인간과 똑같이 생활을 하고 배움을 가지며 같이 논다고 하더라도 인간과 요괴라는 근본적 차이는 없애지 못합니다. 간혹 인간들 끼리 사소한 주먹질이 상대가 요괴라면 그것이 참상이 되어버릴것을. 진정 동등해 지려거든 차라리 요괴의 팔과 다리를 짤라내십시요."
"그것은 자신의 힘을 자제하는 것으로.."
"제아무리 이성적인 인간이라도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때가 많은데 그걸 요괴한테 요구합니까? 당신네 식구들이면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요괴들을 그렇게 만드는것이 가능하다면 지구상의 불화는 존재하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것이 명련사입니다."
말도안되는 억지다. 그리고 주지승의 목소리도 확실히 아까보다 힘을 잃고있었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의 논리의 억지성을 조금이나마 눈치챈듯했다.
나는 기세를 몰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명련사는 분명 요괴들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는건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요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을 바꾸지는 못하죠. 왜냐면 요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들의 공포를 자아내거나 공양을 받는 존재. 제아무리 환상향이 인요간의 공존을 위한다 해도 이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마을 밖에서는 인간들이 요괴에게 습격당하고 있고 인간은 하쿠레이의 무녀나 마을의 수호자에게 기대어 요괴를 퇴치하는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요괴들을 교육시킨다 하더라도 인간과 동등한 위치가 되진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단정 지으시나요?"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인간들 끼리도 서로 편을 나누어 싸우는데 근본 부터가 다른 요괴와 인간이 동등해 질수는 없다 이말입니다. 같이 스포츠 경기를 해도 신체가 인간을 상회하는 요괴들이 우승을 할것이고 싸움을 해도 인간은 상대가 되지 않죠. 이런 명백히 눈에 드려나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누가 미쳤다고 동등하다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일까요?"
"하지만 그 차이를 매꾸기 위해 서로가 이해를 해서 평등해 져야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해내지 못하는것을 요괴가 도와주고 요괴를 위해 인간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편승시키는 관계가 유지된다면 불화는 없을겁니다."
이정도로 설명해 줬건만. ~ 해야한다는 식의 논리로 귀결짓는 주지승을 보니 너무 한심해서 한숨이 다 나올지경이다. 내가 그렇게 근본이 틀리다고 해도 전혀 알아먹질 않으니 더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지만 오기가 발동되서인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요괴치곤 드물게 사회를 이루고 있는 텐구들 알고 계시죠?"
"네. 그 텐구들을 들먹인 이유는 뭐예요?"
"그 텐구들은 요괴입니다. 하지만 같은 요괴이면서도 텐구라는 종족이 아닌 자들은 저들의 사회에 끼워주지 않습니다. 근본 자체는 같지만 풍습이나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선을 그어서 자신의 사회에 편승시키는것을 금하는 겁니다. 이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근본은 같은 인간이지만 인종이나 문화 또는 종교의 차이로 각자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 끼리 뭉쳐 저마다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누구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 강요할수 없는거죠. 지금 주지가 말하고자 하는 평등의 개념은 진정한 평등이 아닙니다."
"그럼, 뭐란 말입니까?"
"획일화입니다. 평등이란 탈을 뒤집어쓴 모두가 같은 사고방식을 취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독재나 다름이 없죠. 그것은 각자가 가진 개성을 죽여서 억지로 틀에 끼워 맞추는 일과 같습니다. 그게 어딜 봐서 평등이란 겁니까?"
"그렇다면 제가 독재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주지승은 감정적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의 자신의 가치관이 나의 논리에 위협을 받는게 싫어서인지 위험해서인지 몰라도 그녀의 동공이 빠르게 떨리는게 보였다. 그걸 보면서도 나는 말을 계속 해나갔다.
"모두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곧 독재나 마찬가지란 겁니다. 만약 진정한 평등을 논하려거든 획일화를 논하기 전에 서로간의 차이점 부터 알아나가는것이 먼저입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차이점도 존재하는 마당에 인간과 요괴의 차이점은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가 다른 입장하에 놓여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로인한 입장의 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다름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가 필요한데 주지님께서는 그걸 무시한채 동등이라는 틀 안에 억지로 집어넣고선 그걸 평등이라고 외치고 있는거죠."
주지승은 더이상 반론하지 않았다. 내 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할말을 계속 이어나갈 뿐이다.
"예를 들어 태어날때부터 타고난 운동신경을 지닌 애와 약한 몸을 타고난 애가 있다고 칩시다. 둘이서 똑같은 출발선에 놓고 골을 지정해 놓으면 과연 이게 평등한 것일까요? 운동신경이 좋은 애와 약한 애를 같은 위치에서 뛰도록 하는게 아니라 운동신경 좋은 애는 비슷한 애와 경쟁시키고 약한 애는 자신이 특기로 하는 공부를 시키는것이 공정한겁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장단점을 인지시켜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발전시키는게 평등이지. 요괴의 본능을 강제로 억눌려서 인간사회에 억지로 쑤셔넣는게 평등이 아닙니다. 인간과 요괴는 동등해야한다는 잘못된 전제하에 요괴들을 가르치고 있다간 언제가는 요괴가 그 존재를 유지시키지 못하고 죽을겁니다."
"정말 들어줄수 없군요. 제가 요괴를 죽이고 있다는 겁니까?"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 요괴는 무섭지 않은 존재로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인간 역시 제명에 못살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말이 지나칩니다. 요괴가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친구가 될수있으며 공존이 가능한 대상이라고 말할 뿐인데 멋대로 해석하여 왜곡이라 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주지승의 말도 안되는 반박에 혀를 찼다. 정말 요괴의 한 쪽 면만 보고 하는 헛소리가 따로없었으니 이대로 주지승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정말로 인간 쪽에서 피해가 날수밖에 없을거다. 여기 요괴만 보고 다른 요괴들도 같을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이며 그걸 심어주는게 바로 내 앞에서 어줍잖은 식견을 가지고 반박하고있는 주지승이기 때문이다.
"주지가 말하는 요괴란 여기 명련사의 식구들이지 요괴 전체가 그런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주지의 말만 믿고 행여 다른 요괴들에게 겁도없이 다가갔다가 목숨을 잃어버릴수도 있을텐데 왜 그걸 모르나요?"
"그러니까 제가 그런 요괴들 까지 부처의 가르침으로 갱생을 시키는것이 저의 목적이고 명련사인 겁니다."
"아이고 두야..."
원 패턴에 순환 논리를 들이대는 주지승 때문에 내 머리가 지끈하고 아파온다. 도대체 얼마나 짧은 식견이길래 여지껏 설명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걸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는 누군가의 명언이 떠오른다.
"같은 대답만 반복하시니 제 입만 아파옵니다. 명련사가 모든 요괴들을 갱생 시키기 전에 인간들이 요괴에게 겁도없이 다가가서 잡아먹히는 쪽이 빠르겠네요. 그리고 요괴의 본능을 찍어누르면 된다는 발상.. 대단합니다. 요괴가 요괴다움을 잃어버리고 존재를 유지못해도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니 할 말이 없습니다."
"요괴를 사랑하는 제가 요괴를 죽이고 있다는 말은 정말 들어줄수 없네요."
"또 그 소리입니까? 그렇다면 하나 묻죠. 요괴들 입장에서 인간을 덥치는게 과연 잘못된 일이고 인간들이 그런 요괴를 퇴치하는 것 또한 잘못이라도 단정하고 있습니까?"
"네, 당연한 일입니다. 서로 싸우는 시대는 이제 없어져야합니다."
"존재가 다른 만큼 기준 자체가 다를텐데 어찌 그것을 잘못이라고 합니까? 물론, 서로의 다툼이 줄어들어야 하겠지만 그 자체를 부정해 버린다면 음양사나 요괴들은 전부 나쁜놈이겠군요."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제가 그리고 명련사가 힘을 쏟고있는겁니다."
또 순환논리... 하도 말을 많이해서인지 입안이 말라왔고 입술이 갈라지는게 느껴졌다. 시원한 냉수 한잔이라도 마시고 싶지만 저 답답한 땡중을 놓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 참을수 밖에 없다. 아.. 이럴땐 시원한 콜라나 청량음료가 제격인데.
나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쇼우나 무라사 그리고 이치린의 얼굴을 둘려봤다. 그녀들 모두 나와 주지승의 대화에 경청이나 하고 있는지 입을 꾹 다문 채 지켜보기나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모여있는 명련사의 식구들에게 들어봅시다. 과연 누구의 논리가 옳은지."
"네, 그렇게 하세요."
솔직히 여긴 주지승의 홈그라운드이자 모두가 저 주지의 가르침을 받는 요괴들이라 나에게 불리한 말을 해올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알수있었다. 이때까지 나의 주장을 들으며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요괴로써의 진짜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어떻게 알고있는가 하면 쉽게 알수있는 동요가 그녀들 얼굴에 나타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동요를 숨기지 못한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명련사의 식구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여기에 있는 요괴들은 자신이 진정 요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인간과 똑같다고 생각하나?"
나의 외침에 침묵을 지키던 명련사 식구들 중 무라사가 맨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사람을 익사시켜 죽여 온 물귀신이야. 하지만 히지리의 가르침으로 다시 태어났어."
"언니는 저의 전부예요. 요괴가 되서 아무도 받아주지 않던 저를 처음으로 이해하고 받아주신게 언니란 말이예요."
"히지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소멸했겠지."
"... 여기 좋아..."
무라사에 이어 이치린, 쇼우, 쿄코쨩 순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왔지만 이건 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지승의 은덕에 대해 말하면서 나의 대답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것 밖에 되지않았다.
하지만 주지승은 그녀들의 치사한 대답회피를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논리가 옳다고 확정 짓듯이 말이다. 나는 그러한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제 질문에 딴 소리를 하네. 질문이 어렵다면 바꿔서 묻겠습니다. 자신인 요괴인 채로 인간과 친해지고 싶은가. 아니면 인간이 되어 스스로를 속여가며 친해지고 싶은가?"
그렇게 질문을 변경해 물으니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주지승이 입을 열고 나에게 말해왔다.
"그 질문 자체가 이상합니다. 어째서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겁니까? 후자의 경우엔 노골적으로 제 주장을 비꼬는걸로 들리네요."
"주지에게 묻는 말 아닙니다. 조용히 입을 다물어 주세요. 중요한건 저들, 명련사 식구들의 대답입니다."
나는 내 질문에 원치않게 개입해 오는 주지승에게 입 다물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끄응'하고는 기가 죽어버린 주지승.
침묵을 지키던 명련사 식구들 중에 역시나 무라사가 먼저 답해왔다.
"요괴는 인간이 될수없어. 그 질문은 어쩔수 없이 요괴인채로 인간과 친해지고 싶다는 걸로 귀결되. 그러니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야."
날카로운 지적이었으나 이것은 내 노림수였다. 무라사의 말에 쇼우도 동조를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쿄코쨩은 그저 멍하게 무라사를 쳐다볼 뿐이었다.
"무라사 말대로 루키드 씨의 질문은 잘못되어 있어요. 요괴가 어떻게 인간이 되어 인간과 친해지겠나요?"
주지승도 무라사의 말을 거들었다.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주지께서 요괴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인정하셨네요. 그러면서 요괴와 인간이 동등해야 한다며 획일화를 주장하다니 모순이 아닙니까?"
"저는 요괴가 인간이 될수없다고 했지 다름을 인정한게 아닙니다."
"다름을 인정안해요? 요괴가 인간과 다르지 않게 되려면 똑같이 인간이 되는 길 밖에 없는데 인정하지 않다니. 궤변입니다. 종이 다르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히지리 말이 맞아."
무라사가 주지승의 편을 들었다. 나는 무라사에게 시선을 옮기고 그녀에게 냉소를 지으보였다.
"너는 물귀신이 아니냐? 죽어서 귀신이 되었으면 이미 인간과 같아질수 없어. 차라리 물귀신으로써 인간과 친해지고 싶다고 해라. 인간과 똑같이 되려하지 말고."
"똑같이 될 생각은 없어. 단지 요괴로써 인간에게 미움받기 싫을 뿐이야."
"똑같이 되지 않으면 인간과 동등해 질수없는데 주지의 뜻을 거스려는 거냐?"
"아..아니야!"
나는 다시 시선을 주지승에게 돌리고는 차가운 한마디를 꺼낸다.
"봤지?"
"뭘 봤다는 겁니까?"
"말을 돌리지 말라구. 지금 네 식구가 인간과 동등해 지는걸 거부했어. 무라사 뿐만 아니라 비사문천의 대리인 쇼우나 이치린도 같은 생각일거야. 요괴란 사실을 지우고 인간이 되려하지 않아. 그것은 즉, 종을 넘어서 동등해 지고자 하는 너의 주장을 근본 부터 틀러먹었다는 소리지. 똑같아 진다는건 요괴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과 같아. 종이라는 차이가 남아있는한 동등해 진다는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과제일 뿐이야."
"동등해 지는것에 인간과 같아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쪽이야 말로 궤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차이점을 무시하고 똑같아지는건 인간과 같아지라는 말과 같아. 그 쪽이 궤변이라고."
"그 망발을 내 뱉는 입을 다물게 해주겠습니다."
주지승은 자신의 주장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나에게 분노하고 있는지 작게 중얼거리면서 주문을 외더니 그녀의 몸 전신에 사이한 기운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전에 그녀에게 맞을때 알수있었던 괴랄한 힘의 출처가 저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 쳤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주지승이 원하는 대로 매서운 공격을 얻어맞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주지승은 순식간에 나의 앞에 나타나서는 몸을 비틀어 강력한 킥을 내 옆구리에 꼿아넣었다. 나는 '억'소리도 못낸체 맞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옆구리에 펴지는 강렬한 통증에 몸을 가누지도 못한채 인상을 찌푸렸으나 논리에서 밀리니 폭력을 행사해오는 주지승을 향한 조소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이 모순이란걸 알아차린것 같네. 입으로 못이기니 폭력을 쓰는걸 보니."
"닥쳐. 히지리는 네가 더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는 악인이라고 판단한거 뿐이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무라사는 주지승을 두둔하가며 나에게 인상을 쓰며 내려봤다.
나는 그런 무라사를 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나를 차서 날린 주지승의 눈을 응시하면서 씨익 하고 한껏 조롱을 담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지승은 그런 나의 표정에 얼마나 불쾌해 하는지 표정관리를 못한채 이를 악문채 눈을 부릅떴다. 정말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얼굴이었다.
"때려서 입을 막을 거면 그렇게 하세요. 대신 그전까지 나는 널 실컷 비웃을 거니까. 하하하하."
"아직도 망발을 입에 담는군요. 소원대로 그렇게 해드리죠."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주지승의 공격. 일격에 나의 몸을 공중에 띄운 후 이어지는 이삼격, 피하기는 커녕 몸을 보호할 새도 없이 이어지는 콤보였다. 이게 소림사 무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무술 고수임이 분명하다.
연이어 주지승의 주먹과 발길질을 맞은 나는 입에서 울컥 하고 피가 한모금 뱉어냈다. 내가 피를 내 뿜는것을 본 주지승의 주먹을 거두어 들이고 멈춰섰다.
"지금은 바깥세계의 일이지만 인간들의 역사에 대해 알고있습니까?"
나는 피를 토하면서도 나에게 주먹질을 해온 주지승에게 물었다. 그리고 당연히 튀어나오는 주지승의 대답.
"저는 역사가가 아니니 거기에 대한 식견은 없습니다. 이와중에 그걸 왜 묻는거죠?"
"왕권을 무너뜨리고 계급사회의 끝을 만들어낸 수많은 혁명의 역사엔 많은 피들이 흘렸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거처 평등이라는 가치를 얻어낸 것을 알지 못하니 획일화 개념을 평등이라고 포장질 할수있는거겠죠. 하하핫"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잘못이다란 거죠?"
"잘못이라... 그보다는 방향성이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건 수많은 희생과 지성인들이 지켜내고 발전시켜온 이념들이 독재를 위해 이용되거나 반대로 부정당해서 다시끔 계급사회로 만들어내려는 파쇼 공작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똑같은 인간들도 이러는데 아예 다른 요괴들이 인간들과 동등해 지려 하겠나요? 주지의 사상은 이상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이란 거네요. 실천의 문제일 뿐인데 안된다는 생각부터 하는 당신이 잘못입니다."
"하하.. 맘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주지를 보니 이 말이 떠오릅니다. 등이 멋진 남자의 명언이지요. 「이상을 안고 익사해라.」"
피는 철이며 마음은 유리인 남자의 명언을 들은 주지승은 멈췄던 폭력을 또다시 행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폭력에 저항하지 않은 채 맞았다. 사상이란게 폭력으로 굴복 시킬수 있는것이 아니라는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능력을 이용하면 주지승의 매서운 손이 멈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주지승의 유치한 이상은 계속될 뿐이고 폭력으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려줄수도 없다.
그렇게 한동안 주지승의 주먹이 얼굴과 복부를 강타하며 몇 번이나 땅바닥에 쓰러지길 반복했지만 나의 눈빛이 여전히 죽지 않은걸 확인한 주지승은 더 이상 폭력을 쓰지 않은채 포기해버렸다.
"어때요? 폭력을 쓰면 내가 주지의 사상에 감화될 줄 알았나요? 그런식으로 강압적인 복종은 사나운 요괴들 보다도 못한 독재자의 거만함입니다. 아야야.. 아파라. 근데 정말로 인정사정 없이 때려 팰줄이야."
주지승은 자신의 주먹에도 전혀 기가 꺾이지 않은 내가 놀라운 건지 멍한 얼굴로 입을 열고있었다. 그 면상을 보니 자기 뜻대로 되지않는게 여간 분한게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놀라고 있겠지. 무자비한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인요는 드무니까.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있다.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녀석이 있으니까 변화해온것이 인간들이고 그것은 요괴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나는 밑에서 올라오는 조소를 참으며 진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요괴를 사랑하는 분이 요괴를 죽을만치 때리시다니 너무해."
"언제 자신은 요괴가 아니라 악마라 한것은 다름 아닌 루키드 씨입니다."
그랬지. 하지만 요괴가 아니면 맞아죽어도 싸다는거냐?
"요괴라는 기준을 놓고 그외의 존재는 해당되지 않는구나. 스님의 그릇은 참으로 작네요. 하긴, 거기에 선인이나 신까지 포함시키면 모두 인간과 같은 격으로 끌어내려야 할테니 똑같이 취급하지 못하겠구나."
"적어도 그들은 요괴처럼 배척받지 않습니다."
"당연하잖아요. 인간들을 해치는게 아니라 도와주는 존재들이니. 반면에 요괴들은 인간을 겁주고 해치니 배척 받는게 당연."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면 더이상 인간들은 요괴들을 배척하지 않을겁니다. 그건 요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런 땡중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건X스워X에 나오는 흑막이자 최종보스. 갈고리 X.
모두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면 문제없다니. 이거 원. 건담 시드 운명에 나오는 라X스 보다 더 한 악녀네. 입으론 평화를 외치면서 폭력으로 짓눌려버리는.. 그리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기준에 맞춰서 교정시켜 버리는거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평화로워 질수있다면 문제없을거다. 문제는 절대로 모두의 생각을 자신과 같이 하나로 묶을수 없는 현실에 있다.
개성의 파괴, 인격의 획일화, 지능이나 육체적 특징의 동일성. 요괴와 인간의 문제가 아닌 인간들 만을 봤을때도 너무나 자명한 문제들이다.
"모든 인간들이 당신처럼 요괴를 배척하지 않을수도 있겠네요."
"알아 주시는겁니까?"
무서운 얼굴을 감추고 순식간에 천사같은 표정을 짓는 주지승. 하지만 내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해 줄거라는 판단은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네, 모두가 당신 처럼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 말이죠."
"으윽.."
"강자의 여유란건 그런겁니다. 자신이 요괴에게 피해보지 않을정도로 강하니 약자의 입장을 절대 이해할수 없겠죠. 지나친 천재는 범인을 이해못하는 것과 같은거죠. 저는 나름 악마들 사이에서 약자로 살아와서 요괴들에 비해 약자인 인간들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괴들도 마찬가지 자비를 갖고 인간들에게 선행을 한다해도 그 또한 강자로써의 배려일 뿐, 절대로 동등한 입장이 아닙니다."
"제가 강자의 시선으로 요괴와 인간들을 대하고 있다는 건가요?"
"강자임을 부정하지 않으시네요. 제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이상은 이상일 뿐,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는 한 부질없는 꿈에 불과합니다.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제가 하는 말이니 궤변으로 단정짓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주지승과의 지긋지긋한 대화를 끝마쳤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주지승은 대답이 없었고. 그것은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폭력에도 일관되게 밀고 나간 것이 결정타였다. 자신의 가치관이 부정 당하자 힘으로 굴복시키려 했으니 그게 전혀 안되니 나를 설득시킬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더이상 이곳에 있고싶지않아 날아올라서 그대로 명련사를 떠났다.
그런 나를 뒤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 명련사의 주지. 히지리 뱌쿠렌은 과연 나의 말을 알아듣고 생각을 바꾸긴 할까? 아니. 절대 그럴리 없을것이다.
누구라도 그렇듯 자신의 인격 형성에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가치관이란 것은 그리 손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바보가 되었건 현자가 되었건 간에.
그렇기 때문에 늙은이들이 일찍 죽는 인간들은 요괴들과 달리 빠르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