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뭔가 몸이 무겁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새 먹구름이끼고 비가내리기 시작했다.
신사앞의 낙엽을 쓸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을비에 물을 머금은 옷이 몸에 달라붙고, 머리카락이 젖어서 어깨를따라 축 늘어진다.
가끔 있지않은가? 이유없이 그냥 비를 맞고싶은 기분말이다. 그렇게 이유없이 비를 맞고있으려니 기침과 함께 찾아온 오한에 젖은 바닥과 물웅덩이를 밟아가며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옷을벗고 간단하게 젖은몸을 닦아 말린 후 새 옷을 꺼내입은 뒤, 신사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비가오는것을 구경하였다.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와 소리에 맞추어 퍼지는 빗물의 동심원, 투둑투둑 나뭇잎을 때리며 내려앉는 빗방울 소리와 쏴아, 쏴아 소리를내며 흙바닥에 내려앉는 소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소리들을 들으며 저기 저 멀리 구름에 가리워진 산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 이었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려니 옆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걸었다.
"무녀님께서 감상에 젖어계시는군요?"
약간의 장난기와 웃음기가섞인 그 특유의 억양과 목소리. 아마 유카리 라는 이름을가진 그 틈새 요괴이리라.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시선을 그대로 고정시킨채 대충 그렇다는듯이 얼버무렸다. 그 후로 잠시동안 정적이 흘러서 조금은 조용해졌나 싶었더니 내 앞에서 불쑥 나타나 어딘가 어올리지않는 애교섞인 표정과 목소리로 생글생글 웃으며,
"그래도 간만에 찾아온건데 뭐 다른건 없는거야?"
라고 말했고, 나는 "그럼 스스로 차라도 우려내서 마시던가." 라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그러자 그런 나에게 돌아온것은 '평소보다 어째 더 차갑다.' 라는 말과 풀죽은 강아지마냥 축 처진 모습의 유카리였다. 거기다 날이 또 날인지라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을 내가 그 모습에 또 마음이 약해져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우려서 가져오니 눈을 빛내며 차를 받아들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따라 차가 좀 쓴것같은데? 기분이 별로인건가?"
"아니. 그리고 써서 먹기 싫으면 억지로 안먹어도 돼."
"음, 딱히 싫다는건 아닌데. 그냥 뭐… 그렇다는거지."
그렇게 또 짧게 끊어지는 대화. 나와 유카리는 묵묵히 차를 후룩거리며 한참동안 비가오는 풍경을 감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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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무씨? 확실히 오늘따라 힘이 없어보이긴 합니다만?"
오랜 침묵끝에 유카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딱히 그런건아닌데. 뭐 그래보이는건가?"
내 말에 유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그런게있어. 그냥 이유없이 가라앉고 그런거말야. 요괴들은 어떨진 모르겠지만."
"우리들도 그런게 없는건 아니라서 이해가 안간다는건 아닌데 흠…."
유카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는듯 하다가, 곧 좋은생각이 떠올랐다는듯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보이곤 그대로 내 볼에 살짝 입을맞추며 "응원이야." 라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신사는 언제 누가 왔었냐는듯이 다시 빗소리에 조용히 묻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제멋대로라니까 저녀석은."
이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툇마루에 홀로앉아 차를 마시며 비가오는 풍경을 감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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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자작입니다.
그냥 훈훈하게 써보고 싶었네요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