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사에게 일주일 동안 하쿠레이 신사에 지내겠다고 했는데 '그래?'하고는 너무 쉽게 허락해주니 김이새는 기분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역마가 다른 곳에서 생활하겠다는데 너무 무심한거 아냐? 적어도 이유라도 물어오면 몰라. 섭섭한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마리사는 어차피 하쿠레이 신사로 자주 놀려가니까 일주일 정도 지내는거는 아무 문제없다고 했지만 분명 그 일주일 동안 집이 얼마나 엉망으로 어지럽혀 질지 불 보듯 뻔하지.
사실 이 일에 유카리가 연관되어있다고 말해주기는 했지만 마리사는 놀라하기는 커녕 유카리니까~ 하는 반응이었다. 유카리니까~ 는 뭐야 대체... 그런걸로 설명이 되는거냐구? 도대체 그 요괴의 현자는 평소의 행실이 어떻길래 뻔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겁니까! 처음 만났을때를 떠올려보면 웃기지도 않는 생쑈를 했던 유카리니까 흑막처럼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푼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마구 든다고.
나는 방에서 갈아 입을 여벌의 옷 정도만 챙기고는 마리사에게 몇 마디 나눈뒤에 하쿠레이 신사를 향해 날아올랐다.
신사라고 하면 차라리 요괴의 산에 있는 모리야 신사 쪽이 훨씬 좋지만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낡아빠진 데다 성격 더러운 무녀가 있는 쪽이다. 나에게 짜증스런 눈으로 불제봉을 휘두를 레이무를 떠올리니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어휴.. 레이무의 겨드랑이를 핥을수만 있다면 참을수 있겠는데."
하지만 레이무 앞에서 그런걸 떠올렸다간 당장 머리에 불제봉이 내려쳐지겠지. 그깟 무녀의 겨드랑이가 뭐길래 이런 생각이나 하는걸까? 그건 유혹이라도 하는듯 괘씸해 보이는 디자인의 무녀복 탓인거다. 저렇게 대놓고 겨드랑이를 텨놓고 있으면 누가 봐도 핥아달라는 거지 않겠나? 그런데 그런 생각만 가져도 머리에 별이 나돌겠지.
날아서 가는 거니 거리가 멀어도 하쿠레이 신사에 도착하는데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 마을에서 부터 하쿠레이 신사까지의 거리는 걸어 간다고 하면 상당히 먼 거리다. 일반 사람이 통상적으로 왕복하기 상당히 힘이 들 정도인데다 신사로 이어지는 길은 제대로 다듬어지지않아 이게 길인지 그냥 풀 숲인지 조차 헷갈릴 정도다. 거기에 요괴까지 출몰한다라... 이건 확실히 신앙은 커녕 새전함에는 동전 한 닢 조차도 들어가 있지 않을테지. 아마도.
신사의 토리이를 지나 본전과 새전함 앞에 섰다. 안이 텅텅 비어있을 새전함을 바라보자 주머니에 잔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동정으로 털어넣고 싶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빈 털털이니까 양손으로 박수를 두 어번 치고는 합장을 해본다.
"거기, 새전을 넣지 않을거면 합장하고 빌어봐야 소용없다고."
합장을 하고있는 나에게 새전을 밝히는 무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뚱한 눈으로 나를 보고있는 레이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너 혼자 온거야?"
그렇게 물어오는걸 보니 아직 그 요괴의 현자에게 사실을 듣지 못한듯 하다. 그 망할 요괴년은 나에게 그런 조건을 걸어놓고 신사의 주인에게 아직 설명 하나 안해준거냐? 내 입으로 나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기엔 저 무녀의 시선이 무섭다구. 레이무는 날 안 좋아하는게 분명하니까 내가 하는 말을 전부 개소리로 들을지도 모른단 말야.
나를 '대체 뭐하려 온거야?'라고 따지고 있는듯한 레이무의 시선에 식은 땀이 날 정도로 불편함을 느끼면서 허공을 둘려보며 마음속으로 유카리를 찾았다.
현자님아~ 어서 나와서 저 무서운 무녀에게 설명을 해주세요. 이대로 있다간 퇴치 될것 같아요!
그러나 그러한 나의 간절함에도 공간을 가르는 틈새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레이무는 그런 나를 보며 짜증스럽게 물어온다.
"마리사가 안보이는 걸 보니 혼자온건가 보네. 무슨일로 온거야?"
나는 레이무의 따가운 눈총이 견디기 힘들어 나름대로 알기 쉽게 나와 유카리 사이의 약속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요괴의 현자인 야쿠모 유카리와 한 약속 때문이야. 여기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겠다고 했거든."
"흐응~ 넌 그런 약속을 유카리와 해버린거야?"
"이런저런 일로 상태가 나빠진 몸을 고쳐주는 댓가로 말이지."
"...... 참 나."
나의 사정을 들은 레이무는 혀를 차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요괴! 당장 나와서 설명해."
라고 허공에다 대고 외쳤다.
그 외침에 반응하듯 레이무의 시선이 닿는 허공에 틈새가 열리더니 상채만 내민 채 미소를 짓고있는 유카리의 모습이 나왔다.
"너, 저 녀석과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얼토당토않는 약속을 해버린거야?"
마이페이스로 웃고있는 유카리를 향해 불만을 토해내듯 따지는 레이무. 그런 레이무를 보고도 여전히 재밌다는듯 웃고있는 유카리가 그녀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입을열었다.
"왜? 맘에 안들어? 평소에 청소하는것도 귀찮아하는 널 위해 시종 하나를 붙여줬는데."
"지금 장난해? 여기 주인은 나라고. 왜 주인인 나를 제외하고 그런 약속을 한거냐구?"
"어머, 레이무도 참.. 하쿠레이 신사가 네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넌 무녀일 뿐이야. 하쿠레이의 이름을 이어 받았다고 해도 넌 이 신사의 주인이 될수없어."
유카리는 레이무가 신사의 주인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그말에 발끈한 것인지 레이무는 유카리를 향해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두 말할 필요 없는 강한 적개감이다.
유카리는 레이무의 적개심에 웃던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그리고 자신을 적대하고있는 무녀를 향해 중요한 사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선대 무녀도.. 그 선대의 선대도. 초대 조차도 하쿠레이의 이름을 이은 도구에 불과해.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어? 즉, 너는 환상향의 규율과 균형을 위해 모든 인요들의 위에 군림할수 있는 절대 권력이 주어졌지만 그것은 오로지 환상향의 존립을 위한 도구로써 이용되기 위해서일 뿐이야. 그러니까 너는 이 신사의 주인이 아닌 신사와 함께 환상향을 위한 도구야."
그것은 실로 잔인한 말이었다. 평범하지 않다지만 10대 중반의 소녀에게 도구라는 소리를 하다니. 유카리는 그런 잔인한 소리를 그저 냉담하게 말하고 있는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레이무의 얼굴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잔혹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채 무덤덤하게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레이무가 전 부터 숙지하고 있었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진실이라는 거겠지.
알아들었다는 듯 보이는 레이무를 흡족하게 쳐다보던 유카리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악마씨, 신사에서 다시 뵙네요. 여기서 일주일 정도 생활 하시겠어요?"
"현자님도 참.. 아무리 환상향의 조율자니 해도 아직 어린 소녀인데 너무 심한 말을 하신거 아니예요? 도구라니."
"그렇게 들렸나 보네요. 후후.. 진실이란 참으로 잔혹한 거죠. 이런 저 조차도 환상향이라는 대업 앞에서는 도구에 불과하답니다."
"스스로를 도구라고 칭하시다니. 츠쿠모가미도 아니고."
"농담도 잘하셔~ 어때요? 저와 같이 만담 콤비라도 짤까요?"
"만담은 모르지만 콤비라면 이미 있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최강 콤비라고 부르짓던 치르노를 떠올렸다. 떠올리는것 만으로도 우스워졌지만 유카리의 면전에서 대놓고 웃을수 없지. 새어나올것 같은 웃음을 속으로만 삼킨다.
유카리는 손에 든 부채를 반대 손바닥에 '탁'하고 치고는 나의 '콤비'를 물어왔다.
"이미 선수친 쪽이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치르노라고 하는 솔직한 녀석입니다. 바보라서 보케로 그만이죠."
"치르노에게 바보같은 짓을 시킨게 너냐─!"
내가 콤비의 이름을 거론하자 마자 레이무가 소리를 빽- 질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짜증섞인 얼굴로 나를 쏘아 보고있었다. 레이무가 저렇게 소리친 이유는 일전에 있었던 새전함 꽁꽁 얼리기 미수사건이겠지. 그때 내가 치르노를 부추긴게 원인이고 치르노는 솔직하게 콤비니 뭐니 외치고 다녔기 때문에 지금 그 콤비의 정체가 나인걸로 밝혀진 지금 치르노를 부추겼다고 판단한 나를 책망하려 드는 거다.
"그리고 도대체 스튜.. 뭐더라? 페어리인지 하는 콤비명은 또 뭐야?"
레이무는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치르노를 놀리기 위해 지은 콤비명이 레이무가 듣기에도 그런 의도가 팍팍 드려났나보다. 뭐, 의도한 거니까.
"스튜핏 페어리라고 직역하면 멍청이 요정이라는 뜻이지."
"그니까, 치르노를 놀려줄려고 내 새전함을 얼리라고 시켰다는 거지?"
레이무가 보는 나는 분명 바보 요정을 놀리는데 혈안이 된 한심한 남자로 보이겠지. 그래서 자기 신사의 새전함을 얼리라는 바보같은 짓이나 시켰다고 말야.
유카리는 나와 레이무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크음!'하고는 기침을 해서 나와 레이무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돌렸다.
"바보 요정에 대한건 어찌됬건 상관없지않아? 악마씨가 부추기지 않아도 평소에 바보짓을 찾아서 하는 애니까."
유카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흘리며 레이무를 쳐다봤다.
"바보짓이라면 너도 만만치 않을텐데?"
곧바로 응수해 오는 레이무. 지지않을려는 모습이다.
나는 말싸움이 번질것 같은 상황에 끼여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유카리는 지기싫어하는 레이무를 재밌다는듯 웃는다.
"후후.. 나는 언제나 천연스러운 17세☆ 유카리거든."
"지랄마 요괴."
레이무는 유카리의 푼수짓에 짜증으로 응수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니 유카리는 나 보다 레이무랑 만담 콤비를 결성하는게 옳은 선택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오늘 부터 일주일간 악마씨가 신사에 지내게 되었으니까, 악마씨를 잘부탁해. 레이무~"
유카리가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틈새속으로 사라진 유카리. 틈새의 흔적도 없어진 지금 나는 레이무와 둘이 남게되었다.
유카리는 레이무에게 나를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이 일주일 동안 신사에서 신세지게 된것에 대해 내 입으로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렇게 되었으니 앞으로 일주일 동안 신세를 지겠어. 잘 부탁해."
"흥, 넌 그저 일주일 동안 내 밥을 축낼 불청객일 뿐이야. 내 앞에서 보이지 말고 어딘가로 가서 풀이라도 뜯어먹으라구."
전혀 나를 반기지 않는 레이무를 보니 어쩐지 서글펴진다. 까칠한 반응이야 예상했지만 저정도일 줄은... 정말이지 저 무녀의 성깔머리는 답이 안나올 정도로 나쁘다.
만약 마을과의 거리나 길의 상태, 요괴가 출몰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 무녀의 까칠함 때문에 새전을 바치려 오는 신도들이 존재하지 않을것 같다. 특히나 나에 대해서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것인지 앞으로 일주일 동안 신사에서 같이 지내게 될 상대한테 너무한 태도가 아닌지 몰라.
"좋든 싫든간에 일주일 동안 같이 지내는 상대한테 너무 까칠한거 아니야? 태도가 나쁘다고."
나는 레이무의 까칠함과 싸가지없음을 탓하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왔다. 불제봉에 얻어 맞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나. 저 빌어먹은 겨드랑이 무녀는 성격 개조가 정말로 시급하다.
그런 나의 성토에 '앙?'하며 불쾌감을 표시하는 레이무.
"요괴가 인간한테 친절 따위를 바라는 거야? 퇴치 안당하는게 다행인 주제에."
저것 보라구. 요괴면 인격에 관계없이 똑같이 동등 취급하는 태도를 말야. 나는 요괴가 아닌 악마지만 말이야. 종족이라는 태두리 안에 획일적으로 싸잡아서 평가를 내리고 판단하는 걸 보면 레이무의 가치간이 얼마나 유치하고 일반화의 오류에 놓여있는지 너무나 자명하다. 그리고 나는 요괴가 아냐!
"나는 악마라구."
"그게 뭐가 어때서? 내가 보기엔 요괴나 악마나 다 똑같아."
저렇게 자기 기준에 맞춰서 모든걸 판단하려 드는 모습을 보라구. 레이무는 정말이지 환상향에서 가지는 인요위의 군림이라는 권력을 너무 어릴때 부터 맛을 봐온 탓인지 노예층을 보는 중세 귀족들 수준의 고지식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도 스이카나 유카를 만나기 전 까지만 해도 요괴에 대해 패력이나 휘두르는 제멋대로의 존재라고 인식해 왔었기에 이해 안될것도 아니지만 저번에 가졌던 연회에서 하쿠레이 신사에 모여든 인요가 대체 몇이 더라? 충분히 요괴들과 관계를 가졌을 텐데 저런 인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간.. 아무리 환상향의 최고 권력에 강대한 힘을 지닌 하쿠레이 무녀라 해도 아직은 어린 소녀인건가? 지금의 잘못된 인식이 고쳐질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려야 하는지 알수없는 노릇이지만. 당장 내가 이곳에서 지내기엔 레이무의 인외를 향한 일관된 관념은 상당한 장애 요소로 작용할듯 싶다.
"내가 맘에 안들더라도 넌 나와 같이 지내야해."
"칫, 유카리만 아니었으면 넌 당장 퇴치 대상이야."
이 대화를 끝으로 나는 레이무와는 더이상 대화가 되지않는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의 레이무를 상대하기엔 그녀는 너무나도 꽉 막혀있었다. 이런 상대와 같이 있어봤자 속만 터지니 장소를 옮겨야겠다.
나는 본전의 뒷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 창고로 보이는 건물의 문이 열려진채 어두컴컴한 안이 보였다. 호기심으로 안쪽에 뭐가 있는지 자세히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는데 창고안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뿌옇게 공기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무언가를 보관하고있는 듯한 자기로 만든 통들.
통에는 부적같은 종이가 붙어있었으며 거기에는 酒라는 한자가 적혀있는걸 보아 술을 보관한 통으로 짐작된다. 그건 그렇고 상당히 많은 양의 술통들이 쌓여있다니. 과연 연회의 장소에 어울리는 보관소다.
"레이무도 술에 환장한 알콜 중독자인가?"
창고에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술통을 본 나의 감상은 그러했다. 그때 나의 후각에 톡 쏘는 알콜의 향이 어디선가 흘려들어왔다.
"히끅, 그거 전부 내가 이부키효로 채워넣은 것들이야..."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만취한 상태의 스이카가 딸꾹질을 하며 동공이 풀린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연회때 절망하고 있던 나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던 스이카. 겉보기엔 영략없이 술에 취해있는 글러먹은 여자애지만 실제로 살아온 세월이나 관록을 무시할 상대는 아니다. 그런데 지금 본 스이카는 정말이지.. 너무 만취했잖아!
도대체 대낮부터 술에 만취해 있다니. 겉모습 때문에 시너지 효과로 답이 없어보인다.
나는 스이카가 이곳에 있는 연유는 모르지만 답이 없어보일 정도로 만취해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저런 꼬마에게 속을 털어놓고 울었었다니.. 하는 후회감 마저 드는것이다.
"스이카씨, 언제부터 그곳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나요?"
나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스이카에게 물었다. 나의 물음에도 스이카는 만취한 상태의 풀어진 얼굴로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을 뿐이다. '히끅.'하며 딸꾹질을 몇번인가 한 스이카가 술주정뱅이 얼굴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음냐.. 아침을 먹고나서 부터 쭈우우욱... 오랜만에 낮 술을 거하게 해서인지 기분 좋구만!"
시간적으로 봐선 이제 점심시간이 가까운데 아침 먹고 부터 지금까지 쭉 술을 마셔왔다는 건가? 이거 제 아무리 술고래가 와서 두손 두발 다 들 정도로 심각한 알콜 중독자가 따로없네. 그래서인지 아까부터 지독한 술냄새가 스이카의 몸으로 부터 새어나오고 있는거다. 나는 너무 지나친 술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칩니다. 스이카씨."
"하하하, 오니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마."
스이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춤에 차고있던 표주박의 뚜껑을 열더니 입으로 가져가 벌컥 벌컥 들이켰다. 그녀의 머리 양옆에 크고 거대한 뿔이 솟아났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저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어린아이가 만취한 상태에서 계속하여 술을 마셔댄다면 당장 입원을 시켜서 요양이 시급한게 아니겠어? 아니.. 성인이라도 저정도 수준이면 알콜 중독자 확정이지만. 나는 그런 스이카가 오니라는 종족임을 그녀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수있었다. 오니란건 저런 술주정뱅이들 밖에 없는지 모르겠지만 술에 강하고 좋아하는것 만은 알고있으니까.
그리고 요괴 중에서 최강급의 종족, 무지막지한 괴력에 요술을 행사하며 잔학무도한 짓을 일삼으며 공포로써 군림해온 그들중 하나가 저 쪼만한 여자애다.
그런데 저런 요괴중에 최상급의 스이카가 요괴라면 치를 떠는 레이무가 지내는 신사에 만취한채 창고 구석에 앉아있는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스이카씨는 하쿠레이 신사에 무슨 연유로 있는겁니까?"
"으.. 뭐더라... 그냥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것 뿐이야."
스이카가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천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그것만으로 레이무가 스이카를 이곳에 지내게 내버려두는 이유가 되지않았다. 그냥 자기 사정이라는거지. 그래서 나는 신사에 지내는 이유가 아닌 방법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레이무는 요괴를 싫어할텐데 무슨 방법을 썼길래 지낼수있는 거죠?"
"그야, 내가 레이무를 좋아하니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보통은 무녀에게 쫒겨나지 않냐는 얘깁니다."
"우.. 그런 말인거냐?"
스이카는 자기 머리를 벅벅 긁더니 풀린눈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강하니까."
"네?"
"내가 레이무 보다 강하니까. 레이무는 날 못 쫒아내는거야."
나는 스이카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러니까 즉, 스이카는 저 무서운 무녀보다 강하시다 이말을 하고있는것이다. 오니가 최강급의 요괴라지만 나는 레이무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환상향의 법도에서 가지는 그녀의 권력을 알고있다. 그런데도 레이무의 의사와 관계없이 레이무 보다 강하니까 맘대로 머물고 있다는 말하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힘으로 레이무를 굴복시켜 자기 맘대로 신사를 점거했다는게 아닌가? 그것은 환상향의 절대 권력인 레이무를 거역한 것이나 다름없고 요괴의 현자 조차도 방관을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스이카를 보던 나의 눈은 달라져있었다.
유카와 마찬가지로 환상향의 권력에 정면으로 대면한것과 그럼에도 레이무나 유카리가 손을 쓰지 않고 가만히 놔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다니. 나는 어느새 존경을 담아서 스이카에게 말한다.
"과연 저의 멘토다우시네요. 그래서 레이무의 허락이 없는데도 신사에 머물고 있다는 겁니까?"
"그거랑 상관없지. 난 무녀한테 일일이 허락받아서 행동할 만큼 찌질하지 않거든. 레이무가 싫어해도 난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거야."
"그..그러면 무슨 수로 머물수있다는 거죠? 레이무가 아니라도 요괴의 현자가 가만 안둘것 같은데."
"히끅, 유카리.. 말이지... 나의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지. 그 녀석은 환상향에 관여된 일이면 물불을 안 가리지만 난 기본적으로 환상향을 해칠 생각이 없으니 그런 그녀석이라도 날 가만히 냅두는거라구."
과연, 대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스이카는 레이무의 의사와 관계없이 신사에 무단으로 거주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만 환상향에 위배될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것이다. 레이무에게 쫒겨나지 않을 정도로 강하며 유카리에게 배제되지 않을 정도로 규칙을 지킨다. 그러니까.. 결국은 힘이란 거네.
레이무의 입장에서 보면 짐승길에 돌아다니는 저급한 요괴와 동급인 나로써는 유카리와의 약조가 아니었다면 하쿠레이 신사에 머문다는것은 꿈 같은 소리인거지.
나는 스이카의 말을 떠올려가며 지금의 약해빠진 내가 불만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지금 보다 강해질수 있다면 좀 더 당당해 질수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의 의지를 꺾임 없이 관철해 나갈수 있지 않을까?
힘을 갈구하는 욕망이 나의 마음을 잠식해갔다. 그것은 하나의 간절함이 되어 입에서 흘려나온다.
"저도 스이카씨와 같은 힘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의 그런 바램을 들은 스이카는 가만히 풀린눈으로 나를 응시하고는 무릅을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내눈에는 작은 체구의 스이카가 유난히 거대해 보였다.
스이카가 나에게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잘 말했구나. 지금의 네 얼굴을 보니 처음 봤을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야. 연회 이후로 마음을 다시 다 잡은 모양이네."
"네, 덕분에."
"좋았어. 지금이라면 내가 널 수행시켜줘도 되겠네."
"수행 말입니까?"
"당연하잖아! 가만히 앉아있는데 강해지겠어? 이 내가 직접 수행시켜주는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나는 나를 직접 수행시켜주겠다는 스이카를 보며 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슨 수행을 시켜준다는 거지? 만취해 있는 스이카를 보면 성룡 처럼 취권이라도 가려치려는 건가? 지금의 나로써는 그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자기 몸도 못가눈채 비틀거리는 스이카는 나에게 좋은 멘토 상대였지만 힘을 키우는데에 있어서도 좋은 스승이 될수있을지 알수없는 노릇이다. 일단 나는 악마고 스이카는 요괴다. 그것 말고는 나는 마력을 이용하여 마법을 부리는 쪽에 특화된 종족이고 스이카는 순수 육체적 강함이 스텟에서 전부 몰빵한듯한 오니인데 나에게 맞는 수행을 시켜줄거란 기대감이 들지않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은 고맙지만 굳이 수행을 한다면 파츄리님 밑에서 마법을 배우는 쪽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해서 거절하기로 했다.
"스이카씨, 마음만 고맙게 받을께요. 종족도 다르고 저는 육체적인 강함 보다는 마법을 익히는 편이 좋을것 같아요."
그렇게 말했더니 스이카는 불만스런 얼굴을 하고서 나를 쳐다보는것이다. 스이카로 부터 만취한 아저씨의 꼬장과도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기운이 착각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듯 스이카는 나의 팔목을 잡더니 창고 밖으로 나를 끌어냈다.
"무..무슨 짓입니까?"
"너한테 필요한건 샌님같은 공부가 아니라 나의 가르침이라고 정했으니까!"
스이카는 무식한 힘으로 나를 신사 뒷쪽의 숲속으로 끌고갔다. 손목을 잡은 스이카의 악력은 정말이지 팔목채로 끊어져 나갈 정도였고 나는 스이카가 이끄는대로 아이들 손에 들려진 인형들 처럼 땅바닥을 질질 끌리고 있었다.
"자, 여기서 수행을 시작해보자."
스이카에게 끌려 신사뒤의 숲속에 있는 작은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가 흐르는 작은 호수에 요정들이 뛰쳐나와 놀것만 같은 짖은 우거짐의 나무들. 정말 수행을 하기에 적당해 보이는 장소였다. 만화나 영화에서 저 폭포를 맞으며 하는 수행 따위가 떠오른다. 스이카가 나에게 그런 수행까지 시킬까? 너무 고전적인데다 진부한 클리셰같은 수행이지않아?
도대체 여기서 무슨 수행을 하겠다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아 스이카에게 묻기로했다.
"스이카씨, 여기서 무슨 수행을 한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중이야. 일단.. 널 두드려 패는것 부터 시작할까?"
"지금 방금 뭐라고.."
나를 두드려 팬다는 생각지도 못한 스이카의 발언에 깜짝놀라기는 잠시 갑자기 덥친 스이카의 주먹에 의해 나는 그것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뒤쪽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콰당!」
스이카에게 가슴쪽에 주먹을 허락해 버린 나는 일직성으로 날아가다 커다란 나무에 부딛히고는 앞으로 쓰려졌다.
"커헉-, 갑자기 한 대 치는게 어딨어요..."
나는 가슴쪽의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입안에서 쇳맛이 나는 피를 토해냈다. 분명 이걸로 갈비뼈와 횡경막이 큰 손상이 입었을거고 목구녕에서 올라오는 피들이 장기들의 손상을 알려주고있다. 수행을 시켜주겠다며 여기로 끌고오더니 다짜고짜 무식한 괴력의 주먹을 날리다니. 이건 아무리 봐도 수행의 개념이 아니잖아요!
나는 한방에 나에게 중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힌 스이카를 보며 위기감과 함께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차라리 힘을 가지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지 말고 파츄리님에게 착실히 마법을 배우도록 했었으면. 이제와서 후회한들 뭐가 남겠나. 이대로 죽을 정도 얻어맞는건 정말 사양이다. 폭포수행이나 최배달과 같은 산속에서 나무를 주먹으로 치는 쪽의 고전적인 수행이 몇배나 더 낫단 말이다. 대체 저 꼬맹이 오니는 수행에 대한 개념이 있긴 한걸까?
원망섞인 눈으로 스이카를 바라보았지만 스이카는 만취하여 헤실대는 얼굴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지마─!! 하는 나의 마음속의 비명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비틀대며 다가오던 스이카가 흘려나온 입가의 침을 손목으로 스-윽 닦더니 낄낄대며 입을 열었다.
"역시 그정도로 정신을 잃지 않는거네. 내 눈이 정확했구나."
"정확하건 잡시건.. 별안간 이게 무슨 짓이예요. 스이카씨!"
나는 나를 예고도 없이 날려버린 스이카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불만에 차있는 나를 헤실거리며 쳐다보던 스이카가 양팔을 만세를 하듯이 Y자로 쭉 펼치자 비율을 유지한체 덩치가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내 앞에서 거대화 한 스이카를 보는 나의 심정은
뭘 본격적으로 하려는 겁니까! 이제 아예 날 잡으려고 작정했구나... 씨벌.
갑자기 덩치가 커진 신기함 보다는 이제 뒈졌구나 하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저 만취해서 인사불성인 오니를 말려줄 사람없나.. 없구나. 레이무는 내가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오히려 꼴 좋다고 웃을 년이니까.
"수행을 시켜주는 입장인데 이제 나를 스승이라고 불려주지 않을래~?"
덩치를 불린 스이카가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지껄였다. 스승은 개뿔. 나를 개 패듯 잡으려고 몸을 키운 주제에..
어느새 커진 스이카에게 멱살이 잡혀진 나는 그 다음 닥쳐올 구타를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아서야 쓰겠어?"
그 뒤로는.. 뭐.... 나를 두드려 패는걸 즐기는 스이카와 불량배에게 두들겨 맞는 왕따 학생과도 같은 내가 있을 뿐이었다.
이딴게 수행이라고?
웃기지마! 이건 그냥 일방적인 폭행이잖아!! 오니들은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기라도 한거야?
스이카에게 들려지고 땅에 패대기 쳐지고 싸대기를 후려치며 맞아가면서 피투성이가 되어간 나는 원망을 잔뜩 품은채 무력하게 노려보는것 외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숨을 쉴때 마다 터져버린 코에서 피의 비릿한 향기만 났고 얼굴을 퉁퉁부어서 입을 움직이는것도 고통스러웠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서있을 뿐이다.
갈비뼈는 대체 얼마나 나간지는 몰라도 숨 쉴때마다 폐를 찔려오는걸 보아 성한 것이 몇개 되지 않을거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 마쉰 뒤 식도에서 올라오는 피를 땅바닥에 '퉷!'하고 뱉어냈다.
"약한 놈 때려 패는게 재밌어요?"
나는 스이카를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그것을 듣고도 헤실거리며 실실웃는 스이카.
"그럴리가? 네가 생각보다 잘 견디니까 계속 때리는거쟎아."
"그럼 당장 기절이라도 하면 그만 두겠군요?"
"맞아. 근데 너 기절을 잘 안하더라."
이런 빌어먹을... 속에서 저주가 울려퍼진다. 나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정신력이 이럴때 걸림돌이 될 줄이야. 처음 일격에 정신을 놓고 기절 했었더라면 무사했다는 말이잖아! 일부러 정신을 잃은 척을 해볼까 했는데.. 저 이부키 스이카는 그런 연기 쯤은 간단히 간파해 버리겠지.
"시발.."
나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저주를 담아 욕을 내뱉었다.
이러다가 기절은 커녕 정말로 계속 쳐 맞다고 죽어버리는게 아닐지 몰라. 하쿠레이 신사에서는 레이무만이 걸림돌이라고 여겼었는데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나는 나의 운수 사나움에 자조적인 웃음이 흘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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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코믹] [처녀작] 마리사의 사역마 -3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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