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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언제봐도 평화롭다. 푸른 빛으로 넘실거리는 드넓은 천에 반짝 거리는 가루를 뿌린것처럼 평화롭고 조용하다. 때로는 어머니처럼 보다듬어 주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살아나가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오늘도 바다위는 평화롭다.
"에잉 잡았다 요놈."
"으갹"
앗 잡혔다. 실은 몰래 배를 타고 다니다가 우연히 갑판위에서 본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말한거다. 선원이나 선장따위가 아니다. 솔직히 밀항같이 스릴넘치는게 더 로망있고 남자답지 않아?
"그렇게 생각 하지 않아?"
"시끄러! 그런건 돈이 없는 거지들이나 하는거지! 무라사...너는 선장의 딸이잖아? 그렇게 몰래 돌아다니가단 이런 배도 몰수 없게 될수도 있다고"
오늘도 미즈하시는 시끄럽다. 선술집에서도 왁왁거리는 소리로 귓전을 때리는데 취하지 않고도 이정도 능력을 보인다면 이건 진짜로 성격이 아니라 능력이다. 나는 두 귀를 손가락으로 꾹 틀어 막고 입으로만 네네 거리다가 꿀밤을 맞았다.
"그거 알려줄까? 사실 선원들은 여자만 보면 사족을...못쓰지!!"
미나미츠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입에서 퀴퀴핸 해초냄새가 났다.
"기분나빠 저리 얼굴 치워"
"헤헤 그러니까 숨어 돌아다니려면 조심해서 돌아다니라고 지금처럼 갑판위를 서성거리며 돌아다니다간 나같이 친철한 놈을 못만날거라고. 용왕님을 대면하고 싶은거냐?"
"시끄러워 미나미츠"
나는 미나미츠의 팔뚝을 후려쳤다. 근육이 불거진 단단판 팔이었다.
"선실에서 그만 자위해라. 팔이 이게 뭐냐"
"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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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 창고에 공간을 마련해놨다. 창고에도 요즘 배는 통풍이며 햇빛이며 잘드는게 마음에 들어. 느긋하게 상자로 만든 침대에 드러누워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었다. 이번에는 며칠이나 걸리려나? 엄마한테는 말 안하고 나왔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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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나무배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창고 안을 메웠다. 상당히 창고 안이 소란스럽다.
벌써 도착한건가? 갑판위로 살짝 나와보니 밖은 아직 어두웠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평소 밤 같으면 갑판위에서 수다를 떨거나, 돛대위에 올라가 사방을 감시하던 선원들이 분주하다.
"나츠! 그 노끈 이리줘! 미나미츠!! 그쪽이 아니야! 돛을 오른쪽으로 돌리라고! 오른쪽!!"
"배가 위험하다! 돛대가 부러진다!"
주변이 정신없이 소란스러웠다. 배가 위험한거같다.
돛대가 부러지며 선장실을 덮쳤다.
"어라?"
선장실을 부수고 넘어진 돛대가 바다위로 천천히 떨어졌다.
"아...안돼...아버지!!"
"무라사! 위험해!!"
"아버지가...!아버지가!!"
"선장님은 지금 그쪽에 안계셔!! 우리랑 같이 일을 하고 있다고!!"
미즈하시가 나를 꽉 잡으며 말했다.
"아버지...괜찮으셔?"
"그래...그러니까 너는 어서 니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번개가 번쩍였다. 미즈하시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 듬직했다. 매번 시끄럽게 왕왕거리던 놈이었는데...
"...나도 도울거야"
"바보같은 소리하지마"
"나도 도울거야"
"죽을 수도 있다고!"
"못들었어? 나도 도울거야"
나는 미즈하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
서로간의 긴 침묵이 오갔다.
"알겠어. 대신 이거 써"
미즈하시가 모자를 주며 말했다.
"이걸 쓰면 어두운 밤에는 못알아 보겠지. 몸 조심 해라...네가 다치면 나는 선장님께 할 말이 없어진다..."
미즈하시는 다시 돛대를 조정하러 달려갔다.
나도 재빨리 달려가서 다른 선원들이 하는 일을 도왔다.
"2번 돛대가 부러진다! 끈이 끊어졌다!!"
"젠장할! 사방으로 휘날리잖아! 조심해!!"
돛을 지탱하던 끈이 끊어지면서 사방으로 휘날렸다. 몇몇 선원들이 그 끈에 맞아 바다로 날아갔다.
'도망쳐야해...!'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피했으나 운이 나쁘게 목에 끈이 휘감겼다.
"케헉...!"
나는 땅바닥에 넘어져 돛대가 움직이는 대로 여기저기에 끌려다녔다.
"아극..! 으학...!"
'안돼...숨막혀!! 죽어버려...!'
괴로웠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배에 물이 찬다! 가라앉는다!!"
"도망쳐!! 도망쳐!! 빨리!!"
"미쳤냐?! 여기서 뛰어들어도 죽는다고!!"
"등신아! 물 위에 떠다니는거 아무거나 붙잡아!!"
선원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만 들린다. 목을 휘감은 줄이 물을 빨아들여 더욱 단단하게 내 목을 조인다.
"크윽...커으...윽...끄으으..."
'살려...줘...누가 제발...'
눈 앞이 어두워 진다...정신이 몽롱해진다.
발걸음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죽겠지. 배와 함께 가라앉아...
"바보자식! 도우랬더니 여기서 누워서 뭐 하고 있는거야!"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목을 조이는 압박감이 풀렸다.
"크억! 아흑...콜록! 콜록!!"
몇번 기침을 한 나는 다시 한번 가쁜 숨을 내쉬었다.
바다 내음이 짙게 묻어나왔다.
"걸을수 있지?"
"으...응..."
"그럼 어서 가자! 어서!!"
미즈하시가 나를 부축하며 바다위로 뛰어내렸다.
첨벙. 하고 차가운 바닷물이 내 몸을 적셨다. 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가라앉았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깊고 어두운 바다위에서 나는 허우적 거리며 떠다니는 판자나 통을 잡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선원들과 점점 멀어져만 갔다.
"미즈하시!! 도와줘!!"
"무라사!!"
미즈하시가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잡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미즈하시가 헤엄치려 했지만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안돼...안돼!! 무라사!!!"
미즈하시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곧 나를 덮친 엄청난 파도에 그 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나는 바다의 품에 안겼다. 예전에 만난 선원들과 가족들...그리고 친구들의 추억을 모두 내 가슴에 묻은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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