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가 시작되는 밤. 장소는 하쿠레이 신사.
한때 적으로써 대치하던 세력의 인요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인연을 다지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이변 이라고 일컬어지는 환상향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하쿠레이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는 마리사가 주최한 연회로 인해 신사의 앞마당이 어느새 인요들로 넘쳐나 왁자지껄한 광경을 보며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녀가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존재가 있었으니.
"저기, 마리사... 나한테 설명해 줘야하지 않아?"
레이무는 눈썹을 찡그리며 마리사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불쾌감을 느끼고있다. 이번 연회를 열게된 원인이라고 할수있는 마리사의 사역마 때문이었다.
"오~, 레이무.. 잘 설명하지 못하지만 저녀석이 저러는거 그냥 넘어가주라."
마리사는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레이무에게 자신의 사역마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기가 힘들었다. 그냥 속편하게 루키가 성불구자가 된 충격으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있다고 말하면 되지만 그 간단한 말 조차 나오지않는것이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루키의 저 이해할수없는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
"뭐, 상관없어. 단지 저녀석 보고있으니 짜증이나서 퇴치해버리고 싶을뿐이야."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드는 레이무. 진심이 아니더라도 그 행동과 언행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이 될 만하다. 마리사는 그런 레이무를 보며 어색하게 웃으면서 진땀을 흘렸다.
연회는 점차 무르익어갔다. 마리사에게 초대되어 신사에 모인 인요들은 홍마관에서는 레밀리아와 그의 시종인 사쿠야 두 명이 왔고 명계에서 온 이들은 죽음을 다루는 명계의 공주인 사이교우지 유유코와 그의 시종이자 정원사인 콘파쿠 요우무가 왔다. 그 이외에 지저에서 산의 사천왕으로 군림했었던 오니 두령 호시구마 유우기가 같은 오니인 이부키 스이카와 술 대작을 하고있고 헤메임의 죽림에 거주하는 봉래인 후지와라노 모코우가 절세의 미를 지닌 영원정의 공주인 호라이산 카구야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그 곁에는 그녀를 모시는 약사 야고코로 에이린이 있었다.
"정말이지, 너는 내 신사를 무슨곳이라 생각하는거야?"
자신의 평화를 해치고 주변 일대가 소란스럽게 들썩이는 것에 맘에 들지않지만 벌써 몇번째 이런 소란을 겪었을까? 매번 이변을 해결하고 나서 원치않게 관계를 가져버린 요괴들이 수시로 자신의 신사로 찾아와서 노는 바람에 신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아예 끊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새전은 항상 텅텅 비어있고 두 번이나 신사가 무너지는 사건으로 인해 이젠 생계가 위험할 정도로 살림이 쪼들리는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레이무는 연회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 마리사라는 무신경한 마법사가 자신의 허락도 안 받고 이곳을 연회 장소로 만들어 버리지않았는가?
"뭐어, 이젠 익숙해 질때도 됬잖아~"
불만이 많은 레이무의 속도 모른채 마리사는 티없는 얼굴로 웃었다.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내온 녀석이지만 저런 무신경함과 뻔뻔함은 도무지 익숙해지지않는 레이무는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 연회에서 자신의 신경을 특히나 긁어놓는 존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분명 남자였을 저 존재는 오늘은 왠일인지 홍마관의 메이드복을 입고는 여자인 척 행동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여자가 된것은 아니었다. 얼굴은 전과 마찬가지로 초췌한 얼굴의 남성 그자체였고 목소리도 그대로다. 특히 어중간한 길이의 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다리에서 무성한 털을 볼때마다 먹었던 안주가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올 정도로 기분이 나쁘다는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 녀석이 저런 기분나쁜 모습을 하고 역겨운 행동을 하는지 레이무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였다.
저 루키라는 마리사의 사역마는 기분나쁨이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으로 홍마관의 당주인 레밀리아와 함께 와인잔을 나누면서 얘기를 나누고있었다. 그리고 저 기분나쁜 녀석을 상대로 '깔깔'웃으며 상대하는 레밀리아를 보며 레이무는 흡혈귀의 기호가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례 깨닳는 중이다.
"내 주변에는 왜 저런 비정상적인 녀석들 뿐인거야?"
술을 기울이며 자신의 인요관계의 특이성에 한탄을 하는 레이무였다.
한창을 레밀리아와 대화를 나누며 와인잔을 기울이던 루키는 어느새 취기가 오른것인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그룹의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향한 그룹은 명계의 공주와 시종이 있는 자리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메이드복의 정체불명의 존재를 느낀 요우무는 긴장하고 있었다. 여성의 감으로 저 정체불명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거북한 존재라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이, 거기 이쁜 언니랑 귀여운 소녀. 인사를 나눠도 될까냥?"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요우무는 전신에 소름이 돋으면서 오싹해졌다. 솔직히 저 녀석을 단숨에 베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검집에서 칼을 빼드는것은 자신의 주인인 사이교우지 유유코의 체면을 깨트리는 행동이라 참을수밖에 없었다. 요우무는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저 기분나쁜 정체불명을 노려보며 조용한 살기를 내뿜었다.
"거기, 검은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 은발 소녀.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지말아줘~"
정체불명이 그렇게 말하자 요우무는 이를 악물었다. 남자가 흉내내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에 저 역겨운 말투를 듣고있자니 속에서 토사물이 올라올것만 같아서였다. 요우무는 옆에서 안주먹는데 여념이 없는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아직 저 기분나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듯 맛을 음미하고 있을뿐이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겁니까?"
"나는 마리사의 사역마인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 줄여서 루쨩☆이라고 불려줘."
정체불명은 자신을 마리사의 사역마라고 소개했다. 줄여서 루쨩이라고 불러달라는 소리에 요우무는 어째서 저런 이상한 녀석을 사역마로 삼을수있는지 마리사의 취향에 대해 따지고 싶어졌다.
'나라면 저런녀석 소환되자 마자 베어버렸을거야.'
그게 요우무의 솔직한 심정이다.
안주만 먹고있던 명계의 공주이자 요우무의 주인. 사이교우지 유유코는 어느새 루키를 존재를 인식하고는 친근하게 다가오려는 루키와 경계하며 이를 악물고있는 요우무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어쩐지 굉장히 재밌어서 말없이 보고만 있기로 한것이다.
'네 놈! 그이상 다가오지 말아라.'하고 기어이 참지못한채 칼을 빼든 요우무. 유유코는 그모습이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라는것을 알고 그 사이에 끼어들기로 했다.
"어머, 요우무. 저분도 연회에 초대받은 손님인데 그러는거 아니야~"
"죄..죄송합니다. 유유코님!"
푸른색 기모노가 잘 어울리는 벚꽃색 머리의 사이교우지 유유코. 칼을 빼들고 당장이라도 베어버릴듯한 기세의 요우무를 진정시키고 자신을 보고있는 메이드 복을 입은 루키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처음뵙네요. 저는 명계의 관리자를 맡은 사이교우지 유유코라고 합니다. 그리고 칼을 빼들었던 애는 나의 시중을 드는 정원사. 콘파쿠 요우무라고 해요."
유유코는 웃음을 흘리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그 옆에는 죄송하다는 얼굴을 한 요우무는 무릎을 꿇은채 가만히 바닥을 보고있었다.
"정말로 예쁘신 분이네요~ 저는 루쨩☆이라고 불려주세요."
손을 마주잡고 눈을 반짝이는 루키. 바닥을 보다가 고개를 들자 그런 모습을 보게된 요우무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저 기분나쁜 녀석이 자신의 주인과 친근하게 있는것 자체가 용납할수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루쨩은 왜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거야?"
"실은 오늘부터 저는 여자아이가 되기로 했답니다~☆"
유유코의 물음에 한쪽눈을 찡그리고 윙크를 날리는 루키. 요우무는 생각했다. 저런 존재와 태연하게 대하고있는 자신의 주인의 대단함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유유코님과 같은 그릇을 지녀야 겠다고 다짐하지만... 저런 녀석을 평범하게 대하는건 도저히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너 여자가 아니라 남자..."
"네~ 남자지만 여자아이. 제 3의 성(性)인 오토코노코입니다~☆"
유유코의 딴죽을 도중에 끊고 해명하는 루키. 하지만 그의 말은 제대로 해명이 되지않는 말이었다.
"... 알았어, 그럼 루쨩. 같이 한잔 할래?"
"술은 약해서 쬐끔만 하겠습니다~"
유유코는 더이상 따지지않기로 했다. 그저 저런 존재라는것만 확인하고 그와 술잔을 나누었다. 요우무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더이상 저런 녀석에 대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즉, 신경쓰면 지는거라고 생각한것이다.
그렇게 루키는 유유코와 두 잔째를 나누고 나서 그자리를 벗어났다. 요우무에게는 저 이해불능의 존재가 시야에서 사라져준것 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유유코에게서 벗어난 루키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있는 그룹이었다. 봉래의 약으로 불사의 존재가 된 백발의 보이쉬한 소녀. 후지와라노 모코우는 원래는 기품이 있는 귀족의 자제였으나 너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탓에 그의 행동거지에서는 더이상 규수의 흔적을 찾을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호라이산 카구야는 달에서 추방된 달의 공주이다. 먼 옛날 절세의 미를 자랑하는 그녀에게 구혼을 해오는 남자들에게 절대로 풀수없는 난제를 내고 다시 달로 돌아간 이야기는 옛날부터 일본에서 전해져 오는 유명한 설화다.
"방해해도 될까요~?"
서로 말없이 술을 마시면서 눈싸움을 하던 두 여자 사이로 루키가 끼어들며 말을 걸었다. 갑작스런 등장에 서로 노려보기만 하던 두 여자가 동시에 루키를 쳐다봤다.
"서로 사이나빠 보이는데 같이 술을 마시는군요. 저는 루쨩☆이라고 해요~ 잘부탁 드려요!"
자신을 소개하고있는 루키를 바라보는 모코우는 굳어진채 입을 다물고있었고 카구야는 어쩐지 벌벌떨고있었다. 무서운것을 본 아이들의 반응처럼 고개를 흔드는 카구야는 이내 옆에 있는 에이린의 품속으로 몸을 날렸다.
"에이린─! 지상은 무서운 곳이야."
겁에 잔득질린 카구야가 에이린에게 하소연 해오자 에이린은 카구야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채 루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공주님께서 무서워 하십니다. 죄송하지만 다른곳에 가주실수 없겠습니까?"
얼굴은 웃고있지만 그 속에는 살벌한 기운을 품고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위협에도 루키는 굴하지않고 싱긋 거리는 미소로 응답해온다.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가 무섭다니요?"
자신을 여자라고 칭하는 이상한 남자를 보며 에이린은 머리가 지끈거리며 두통을 느꼈다. 지상의 더러움 마저도 저 이상한 남자에 비하면 훨씬 나은것이라는 생각이드는 에이린은 더이상 미소를 짓지않았고 무서운 눈으로 꺼져달라는 메세지를 보내고있었다.
루키의 모습과 행동에 얼어붙었던 모코우는 정신을 차려서 루키에게 위협적인 시선을 보내고있는 에이린과 그의 품에서 떨고있는 카구야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위협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서있는 저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기분나쁜 존재. 내키지는 않지만 이순간 만큼은 에이린과 협력해서 저 기분나쁜 녀석을 쫒아내야한다고 마음먹은 모코우가 에이린 곁으로 다가와서 루키와 대치하였다.
"네놈, 너무 기분나쁘다고. 얼른 저리 가지못해?"
모코우의 등뒤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저 기분나뿐 녀석을 불태워 없애버릴 작정이었다. 그것을 눈치챈건지 강력한 살기를 느낀 루키는 한 발짝 뒤로 다가가며 위기를 느꼈다.
"모처럼 즐거운 연회인데 저를 쫒아내려하다니.. 슬퍼요~"
이글거리는 모코우를 보며 루키는 울먹거렸다. 그러나 루키의 울먹거림에도 모코우의 등에서 피어나는 불꽃은 점차 그 크기를 늘려가며 위협적인 존재감을 드려내고있었다. 그녀의 주변은 불꽃이 내뿜는 열기로 달아오르고있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집어삼켜 버릴것만 같은 모코우의 불길에 루키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장소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루키가 발길을 돌려 다른 장소로 향하자 주변을 집어삼키려던 모코우의 불꽃은 잦아들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그러들었다.
"저녀석 대체 뭐인거야?"
모코우는 그자리에 털썩 주저않고는 술을 잔에다 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모코우를 슬쩍 바라보던 카구야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소근거린다.
"흥~, 빚진게 아니니까 잘난채 하지말라구."
루키가 다음에 향한곳은 두 명의 오니가 술을 나누고 있는 신사의 입구쪽, 토리이 바로 아래였다. 금발머리의 탄탄한 육체를 가진 큰 키의 오니 호시구마 유우기가 루키가 다가오는것을 감지하고는 그에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쳤다.
금발머리에 이마 한중간에 솟아나온 붉은 색의 뿔이 인상적인 오니 여성인 그녀는 루키의 모습을 보며 의아하다는듯 '응?'하고 쳐다보다가 이내 정했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봐, 같이 한 잔 하지않을래?"
기분나쁜 루키의 행색에도 불구하고 시원스럽게 술을 권해오는 유우기의 태도에 루키는 입꼬리가 올라가며 기쁨을 느꼈다. 레밀리아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이런 자신을 반겨주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감사해요~ 저는 마리사의 사역마인 루쨩☆이라고 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총총걸음으로 유우기에게 다가와서 토리이 아래에서 계단에 앉아 술을 기울이는 그들 틈에 끼어들었다. 가까이서 루키의 얼굴을 살펴보던 유우기는 순간 '흠칫'하고 놀랐다. 멀리서 볼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영락없는 남자가 아닌가?
"어이... 너 남자냐?"
유우기는 여자옷을 입고있지만 명백하게 남자인 그를 보며 놀라서 물었다.
"남자였지만 지금은 오토코노코입니다~ ☆ 우냥!"
"..!"
루키의 샹큼한 대답에 유우기는 입안에 있는 술을 '푸우웁!'하고 뿜어대고 말았다.
"너같은 타입의 녀석은 아무리 나라도 상대하기 어렵겠어!"
입가를 닦은 유우기는 더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었났다. 그리고는 같이 술을 마시던 작은 소녀와 같은 오니인 이부키 스이카를 보면서 입을 말을 이었다.
"스이카, 미안하지만 저녀석 상대를 내 대신 해주라."
"넌 여전하구나.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를 싫어하는건 알고있었지만 단순히 여장한 남자도 싫어할 줄이야."
"하지만 저런 놈을 보면 당장이라도 거시기를 떼버리고 싶어진단 말야!"
유우기는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신사 안 쪽으로 훌쩍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메이드 복장의 루키와 머리 양쪽에 크고 길다란 뿔을 달고있는 작은 체구의 오니인 이부키 스이카만 있을뿐이다.
"난 널 거부할 생각없으니까 편히 있으라구."
스이카가 들고있는 표주박을 마시면서 말했다. 겉모습 만으로는 10살이 될까말까한 어린 소녀이지만 그런 그녀도 무서운 패악력을 행사하는 오니다. 머리에서 솟아난 거대한 뿔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표주박에 든 술을 꿀꺽 꿀꺽 삼키던 스이카는 빈 잔을 들고 거기에 표주박의 술로 채우고는 루키에게 건네주었다.
"자, 한 잔 마셔봐."
루키는 스이카가 건네준 술잔을 받고 거부감없이 입에 대고 마셨다. 속이 불타는듯한 독한 술이 목을 타고 위장을 자극하는듯 느껴진 루키는 술을 다 마시자 마자 강렬한 술기운에 '콜록 콜록' 기침을 해댔다.
"근데 너, 왜 그 꼴을 하고있는거야?"
술에 잔득 취한체 한 껏 풀린듯한 얼굴이지만 스이카의 물음은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마치 루키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 보였다.
"저는 오늘부로 여자아이에요~ 데헷☆"
시큰해진 콧김을 내뿜으면서 어색하게 웃고있는 루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스이카는 그가 거짓된 모습을 하고있다는 것을 눈치챌수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억지로 맞지 않는 가면을 쓰고있는듯한 모습을 하고있다고.
"남자가 여자아이라고 칭하다니. 별 꼴이네. 너 혹시?"
말 하다 말고 표주박을 입에다 대고 술을 들이키는 스이카 몇모금 마시고 나서 팔목으로 입가를 닦고나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자지가 없기라도 한거냐?"
어린애로 보이는 스이카의 입에서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저질적인 성기 표현 단어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단어였고 루키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루키는 더이상 웃고있지 않았다.
"... 없어요."
루키는 어느새 오토코노코라는 가식이 옅어져있었다.
"뭐가? 너... 진짜 자지가 없어!?"
스이카는 놀라며 물었다.
"더 이상 남자도 아니게 되었는데 남자처럼 굴 필요가 없지않겠어요."
루키의 입에서 흘려나온 진심에 스이카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자신은 남자가 아니라도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남자로써 생명 만큼 중요한 상징을 잃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며 그 충격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게 이해가 되는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지금 저 남자는 상실의 충격과 슬픔으로 거짓된 가면을 쓰고 만 것이고 이대로 둔다면 언젠가는 정말로 망가질게 뻔하다고 판단한 스이카는 그에게 조언을 해주기로 맘먹었다.
"그만한 슬픈일을 겪었으니 이상해질수밖에. 하지만 지금의 넌 치사해."
"뭐가 치사하다는 겁니까? 이제부터 여자로 살아가려는데."
"정말 여자가 되고싶다고 생각하는거야?"
"저는 이제 남자로써 가치가 없으니 당연한거 아닙니까!"
스이카의 지적에 발끈한 루키는 어느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도 스스로 잘 알고있었다. 자기가 남자를 잃은것으로 인해 어쩔수없이 여자인 척 했다는것을 그럼에도 결코 그 행동에 대해 치사하다고 단언할수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스이카의 생각은 달랐다.
"난 네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상관안해. 하지만 지금 네가 한 행동은 여자가 된게 아니라 여자를 연기하는 가여운 철부지로 비춰질 뿐이야."
스이카는 다시 표주박을 열고 입안에 술을 마셔댔다. 스이카의 날카로운 지적에 반론을 하지 못하고있는 루키는 그저 입을 다물고 불편한 심정으로 스이카 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자, 너도 한 잔해."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던 루키에게 다시 빈잔에 표주박안의 술을 채워넣어서 건네주는 스이카는 자신이 준 술잔을 받아들고 단 숨에 비워내는 루키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술이란 진실한 모습을 보일 용기가 없는 존재에게 등을 떠밀어주는 보물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루키 눈앞에 자신의 표주박을 들어 흔들어 보이는 스이카.
"세상에 정답이란게 과연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스스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게 있다면 그건 자기 자신에게 있어 정답인거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루키를 보며 스이카는 말했다. 그모습이 만족스럽다는 듯 작게 '쿡쿡'거리며 이어 말한다.
"하지만, 지금 너는 네가 하고있는 행동이 정말 정답이라고 생각하고있는거야?"
그말에 루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스이카의 말대로 자신의 행동이 진정으로 정답이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단지 남성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으로 그것을 잊기 위해 거짓된 행동만 해왔을 뿐. 스이카의 말은 틀린게 하나 없었다.
"자지가 없다면 남자라고 할수없지만 말야. 꼭 그렇다고 여자인척 할 필요는 없어. 남자가 아닐 뿐이지 네가 아니게 된게 아니잖아?"
스이카의 훈계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키. 스이카는 만족한듯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억울함이나 슬픔을 억지로 참지않아도 되.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무서우면 덜덜 떨어도 된다고 오늘 만큼은 너와 내가 마시는 술에 모두 흘려보내자구."
그렇게 말한 스이카는 표주박을 벌컥 벌컥 마시고는 또 다시 빈잔에 술을 채워서 루키에게 권했다.
"말씀 고맙네요. 뭔가 답답했던게 조금은 뚫린 기분입니다."
루키는 스이카가 권한 술잔을 집어 들고 입에 대고 한번 심호흡 한뒤에 단번에 들이켰다. 루키는 술을 삼키면서 자신의 몸이 점차 가누기 어려워 지는걸 느꼈다. 지금의 잔으로 루키는 자신의 주량을 한 참이나 추월한것이다.
"어.. 너 우는거야?"
스이카의 말대로 루키의 광대뼈를 타고 닭똥같은 눈물이 흘려내렸다. 완전히 취해버린 루키가 드디어 감정의 리미트가 해제된채 자신의 한을 쏟아내고 있는것이다. 그런 루키의 심정을 이해라도 했는지 스이카는 두 팔을 벌려서 이렇게 외쳤다.
"자, 내 품에서 속 시원해질때까지 울어!"
기다렸다는 듯이 스이카의 품에 안겨 소리없이 울고있는 루키. 그 모습은 메이드 복을 입은 다 큰 성인 남성이 어린 소녀 품에 안겨 볼품없이 질질 짜는 모양새지만 루키의 등을 토닥여주는 스이카의 모습은 마치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았다.
"오늘밤 실컷 울고나면 다 털어내 버리는거야. 내일 부터는 기운을 차려."
그렇게 스이카의 품에서 원없이 우는 루키는 그 다음날 아침 연회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어지럽게 쓰려져있는 사이에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루키가 사라진것을 알아챈 것은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마리사는 자신의 사역마가 사라졌다며 난리를 쳤지만 대부분의 인요들은 관심이 없었으며 유일하게 스이카만이 루키의 행방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때 까지 시간을 주자며 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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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코믹] [처녀작] 마리사의 사역마 -2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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