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츄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는 소악마를 향한 불쾌한 감정을 털어내고 언제 왔는지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파츄리님을 보고 인사를 했다.
"루키..구나, 마리사는 안보이는데 혼자 찾아온거야?"
"네, 일단 은혜를 입은 몸이고 파츄리님을 만나 뵙고싶어서."
"기특하네. 자리에 앉도록 해."
파츄리님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상냥함이 느껴졌다. 나는 파츄리님의 권유대로 그녀의 맞은편에 의자를 빼서 앉았고 파츄리님 옆에 서있던 소악마는 파츄리님과의 눈빛을 교환한뒤 서적이 보관되 있는 책장들 사이로 걸어갔다.
나는 파츄리님에게 우선 간병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하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차례로 얘기했다. 나의 얘기에 살며시 웃으면서 때로는 심란한 표정도 살짝 짓는걸 보면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는걸 알수가있다. 역시 카나코님 다음으로 가는 인격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간략하지만 핵심을 정리한 나의 경험을 전부 들은 파츄리님은 홍차를 다 마시고 내 얘기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그거 참, 재난이었구나. 나는 보다시피 도서관으로 부터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몸이라 밖의 상황에 대해서 아는것이 없어."
그렇게 말하는 파츄리님은 다시 티 컵을 들어올려 차를 마시려했지만 이미 다 마셔서 빈 컵인것을 확인하고는 도로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레밀리아의 분노를 샀던것을 시작으로 넌 수난을 잘 격는 체질인것 같아. 환상향은 마냥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각 세력들이 서로를 보이지않게 견제하며 아슬하게 균형을 유지되고 있을 뿐이야. 이곳 홍마관을 비롯해 영향력 있는 세력들을 미리 알아두면 조심해서 미리 위험을 방지할수있어."
그말대로다. 요괴의 산에 거주하는 신들에 대한 정보도 없었기에 이번에도 혐한꼴을 당하지 않았는가? 내가 최소한 두 신님이 사나에를 너무 아껴서 남성의 접근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던가 액신인 히나씨에게 다가가는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만 알고있었어도 일주일간의 불행에 시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와서 후회하는것도 우습기 그지없다. 누굴 탓하랴? 무지몽매한 내 자신을 탓해야지. 그래도 그것 때문에 속상한것은 또 별개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와코는 너무한 감이 없지 않으니 말이야.
"지금은 가진게 없어서 빈 손으로 왔지만 다음에는 뭐라도 선물을 들고오겠습니다."
"음.. 딱히 선물같은건 필요없는데? 마음은 고맙지만 나한텐 여기있는 책이 전부야."
도서관을 매우고 있는 무수한 책장들을 눈으로 가리키는 파츄리님. 저기 있는 도서를 다 읽기위해 평생을 보내도 모자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맞아, 너 마리사의 사역마였지?"
"네. 새삼스례 물으시네요."
"마리사 집에 쌓여있을 마도서들은 거의가 내 도서관에서 훔친것들이야."
"어.. 그런가요?"
나는 파츄리님의 말에 한번씩 어디선가 마도서를 들고오던 마리사가 떠올랐다. 어디서 자꾸 들고오는가 했더니 훔친 물건이었구나! 그것도 집 한쪽에 쌓여있는 양으로 봐서는 상당히 많이 훔친거 같은데 뻔뻔하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남의 물건을 수시로 훔쳐갈 정도였다니. 내가 아무리 시종의 입장이라도 마리사를 본다면 쓴소리를 해야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악마에게 훈계 받는 마법사라... 참 웃기는 모양새가 아닐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물건도 아닌 파츄리님의 물건이니 그냥 넘길수 없는 문제다.
"내 부탁을 들어줬으면 하는데."
파츄리님이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목숨에 대한 빛을 진 입장이라 내가 할수있는 한도내에선 무엇이든 들어줄 생각이다. 이걸로 갚을 빛이 없어진다면 셈셈인거고 오히려 잘된 일이라 다음 이어지는 파츄리님의 부탁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마리사의 집에 있는 마도서를 전부 가지고 왔으면해."
마리사가 무단으로 가져간 마도서에 대해 다시 돌려 받는게 어려워하는 사정이 보이는 부탁이었다. 빌린게 아니라 훔쳤다는 표현을 쓴것에서 부터 마리사가 가져간 마도서를 다시 돌려줄일은 절대 없겠지. 이거 왠지 겟 백O스같은 미션을 맡은것 같아. 사실 집에 있는 마도서들 쯤이야 압축 마법으로 최대한 축소시켜 들고오면 그만인 쉬운 부탁이다. 대신 마리사로 부터 원망을 받을 각오는 해야겠지만.
"마리사에게 미움 받겠지만 못 들어줄건 없죠."
"그래? 그럼 미리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파츄리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무표정한 얼굴이 기본인 파츄님이 웃으니 정말 귀엽고 특별해 보인다. 그런 모습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파츄리쨩, 마지텐시 ─ ☆'라고 할까나?
"내 도서관에 언제든 찾아와도 환영해줄께. 편히 있으면 되니까 부담갖지말고 있어줘."
"그러도록 하지요."
나는 파츄리님의 허락에 넓은 도서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책장들이 워낙 크고 높아서 날지 않으면 위에 몇칸은 손도 못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는 몸을 공중에 띄운 상태로 책장에 놓여져있는 책들을 구경하듯 살펴보고있었다.
음... 하나같이 어려워 보이는 책들 뿐이야. 몇 군데 둘려보면서 한쪽에 서서 책을 읽고있는 소악마의 모습을 발견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독서중인 소악마의 모습에는 이지적 이미지가 풍겨나오고 있었으며 읽고있는 책의 커버를 보니 알수없는 문자가 적힌 어려워 보이는 책이었다.
쳇, 저 소악마 한테 힘 뿐만이 아니라 지성으로도 졌잖아!
외모, 힘, 지성.. 어디 한군데 나 보다 소악마쪽이 월등해 보여 착찹한 기분이든다. 하필이면 저 싸가지 밥말아먹은 년이 모든면에서 나보다 월등하다니. 이세상은 정말이지 부조리하기 짝이없다니까!
소악마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책을 내리고 나를 향해 시선을 올려 보고있었다. 그리고는 혀를 쭉 빼내며 '메롱'을 하면서 중지를 치켜올려 '펵큐'를 선사하는게 아닌가!? 나도 응수하듯 소악마를 향해 중지를 세우고 똑같이 '펵큐'를 날리고는 장소를 옳겼다.
어디... 읽을만한 책이 있긴 한거야? 도서관은 넓고 책은 많지만 도무지 내가 읽을 만한 수준의 책은 찾기가 힘들었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까 싶었는데 커다란 책장들 사이에 유난히 작은 사이즈의 책장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부자연 스럽게 세워져있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성인들 사이에 섞여든 어린애 같네」
나의 감상은 그러했다. 어쨌든 무슨 책이 놓여있길래 저 책장은 혼자 놀고있는지 궁금증이 일어 다가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유난히 새것같이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책장에 꼽혀져있는것은 나의 예상을 벗어난 책들이었다.
"이..이건.. 그럴수가!"
나는 그 예상외의 책들을 보며 경악을 했고 손을 뻗어 책을 집어들었을때 무한한 감격에 도취되어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죠죠라니, 공명의 함정인건가? 아니면 내가 환각을 보고있는게.."
하지만 내 손에 들려진 것은 틀림없는 만화책. 즉,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 부제는─ 스타 더스트 크루세이더즈. 어째서 이 전설적 명작이 마도서들이 늘어서있는 장소에 있는것인지 알수없었지만 그 존재를 발견해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흥분해서 다른 책들을 살펴봤다. 꼭두각시 서커스, 헬싱, 네기마, 원피스, 블리치, H2 등등 하나같이 명작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것들 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만화책들을 모아놓은것인지 지금까지 만났던 홍마관의 인물들을 떠올리며 추리해 봤지만 그럴싸한 인물은 찾을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절대로 서브컬쳐를 접할수없다고 판단했던 환상향에서 이런 귀중한 산물들을 발견하게 된것에 신님에게 감사하고있다. 신님이라니까 굳이 정한다면 카나코님이랄까? 아무래도 카나코님의 신덕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봐야겠지.
"이거, 전권 빌려가도 되지않을까? 마리사 처럼 무기한 연체할 생각도없으니."
나는 흥겨운 기분으로 점프만화의 정석인 원피스를 1권 부터 30권 까지 뽑아들어 품에 앉았다. 오랜만에 원피스 재탕하는것도 나쁘지않지. 점프의 3대 요소라 할수있는 모험, 우정, 승리의 삼박자를 완벽히 갖춘 현재도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만화니까.
히죽대는 얼굴을 숨기지 못한 나는 대여를 허락받기 위해 원피스 만화책들을 안고 파츄리님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발길을 옳겼다. 바로 그때─
"응? 마리사의 사역마가 만화책에 흥미를 가지다니."
어느새 내 옆에서 팔짱을 끼며 나를 주시하고있는 레밀리아가 서있었다.
"... 레..레밀리아님!"
나는 반갑지 않은 무서운 존재의 등장으로 심장에 섬득한 한기를 느끼며 당황했다. 저번 처럼 나를 골려주려 오신건가? 방금전 까지 째질듯한 기분이 날아가서 불쾌했지만 이번엔 절대로 조심해서 레밀리아를 화나게 하지 않기로 속으로 몇번이나 다짐해본다.
"─흐음, 너 제법 보는 안목이 있구나?"
"아하하.. 그런가요? 이게 좀 재밌어 보여서."
"그래, 그거 무진장 재밌어!"
표정을 환하게 밝히는 레밀리아, 무서운 존재에게서 어째선지 친근함이 감도는것 같다. 30권까지 나란히 쌓아 들고있는 만화책을 보며 싱글 거리던 레밀리아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벌써 10번도 더 읽었지. 특히 루피가 '당연 하잖아~'라고 외치며 나미를 격려하는 장면과 밀집 모자 일당들이 동료의 표식이 적혀진 팔을 들어보이는 장면은 몇번을 봐도 전율이 흐른다니까!"
"네.. 저도 그 장면 무지 감동먹었어요. 그 중에서도 Dr.히루루크가 술잔을 기울이면서 '인간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에 총알이 뚫렸을때? 아니야. 불치의 병에 걸렸을때? 아니지! 맹독 버섯 수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 잊혀질 때다.'"
나는 레밀리아가 읇어대는 명대사 열전에 참지못하고 끼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감동을 받은 장면의 명대사를 분위기 잡고 원작의 장면을 떠올리며 Dr.히루루크를 내 몸에 빙의시킨듯 말해나갔다. 그리고.. 결정적인 대사를 하는데─
"정말로 멋진 인생이었다!!"
거의 동시에 나와 레밀리아가 외쳤다.
"크으으으~ 정말 떠올릴때마다 전율이 흘려!"
레밀리아는 온 몸에 소름이 돋은듯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 여운이 끝나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손뻑을 쳤다.
"너, 잘 알고있잖아? 어떻게 알고있는거야??"
나를 보는 눈이 매우 호감적인 레밀리아. 나는 그순간 나를 죽일뻔 했던 상대가 실은 환상향에서 유일하게 취미에 대해 대화를 나눌수있는 상대가 된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 하지만 이런것 또한 인생의 묘미 아니겠는가?
"사실 저는 바깥세계에서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겼어요."
"정말이야? 히-야─!, 그럼 나보다 이런것에 한 수 위겠네?"
레밀리아는 어느새 나를 동경하는 눈으로 쳐다보고있었다. 서로 취미가 통하자 마자 이렇다니. 역시 관계에 있어선 공통의 화제 만한 점이없다는게 새삼스례 깨닳게 된다니까. 나는 지금의 관계가 언젠가 깨지지않도록 속으로 빌었다. 취미에 대해 서로 나눌수 있는 상대가 얼마나 좋은가? 난 그동안 그런 부분에서 굶주려있었으니 말이다.
"네, 세간에서 말하는 오타쿠라는 인종은 저를 두고 하는 말이죠."
"대단해! 나도 그 오타쿠란게 되어보고 싶어!!"
"어.. 그건 되고싶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그냥.. 어느순간 되어있었다.. 란 느낌으로 되는거라.. 딱 집어 설명은 못하겠네요."
이순간의 나는 레밀리아와 가진 대화에서 마치 치르노를 상대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듯 했다. 취미에 한해서는 내가 하는 말을 의심도 없이 믿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은데 치르노 처럼 그런점을 이용해 골려주려다가 되려 큰일을 당할수도 있으니 너무 기어오르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음.. 열심히 정진해서 오타쿠가 되어있도록 해야겠어!"
레밀리아가 결심했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 그런걸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데 오타쿠에 대한 환상이 심한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이른바 동족 혐오라는 감정을 느끼는 나에게 레밀리아가 가진 오타쿠라는 환상에 대해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그런데, 너 그 만화책 빌려갈 생각이야?"
네, 오랜만에 보는 만화책이라 기대가 되네요."
나는 주체할수없는 기대감에 싱글벙글하고 있었고 그런 나를 쳐다본 레밀리아는 '흐응~'하고는 악동같은 얼굴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기 만화책들이 꼽혀있는 책장은 내꺼고 그것도 내가 가져온것이니까 나한테 허락 받아야겠네?"
"그런가요?"
"마침 잘됬어. 나한테 그걸 빌려가는 대신에 내 부탁을 한가지 들어줬으면 하는데?"
나는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저 레밀리아가 악동같은 미소를 지으며 부탁을 하는거라면 쉬이 끝낼수 없는것이 아닐까 하는 판단이 들었기에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대하기 어려운 여동생이 있는데. 오늘, 네가 내 대신에 여동생과 놀아줬으면 해."
"레미, 무슨 소릴 하는거야!"
레밀리아가 말을 끝맺자 마자 저쪽에서 파츄리님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놀라서 외침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옮기자 레밀리아를 무섭게 노려보는 파츄리님이 있었다.
"제정신이야? 플랑은 아직 자기 힘을 완벽히 제어못한다는걸 알고있잖아?"
"아.. 괜찮아 파체, 내가 그동안 확실하게 교육을 시켜서 이제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는다니까."
파츄리님이 노성을 담아 일갈하자, 레밀리아는 진심을 담아서 응수했다. 그것을 지켜본 나는 파츄리님의 발언에 그 여동생의 위험성을 어릿짐작할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길래 파츄리님이 저렇게 화내는거지?
"정말이야 파체, 내가 저녀석에게 결코 무리한 일을 시키는게 아니야."
"그걸 어떻게 믿지? 저번에 네가 죽이려고 했었지 않았어?"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 모처럼 나랑 대화가 통하는 녀석이더라 그래서 절대 죽게 하지않을거야."
파츄리님은 레밀리아의 설득에 여전히 노기를 담아 말하고있었고 레밀리아의 말에는 거짓이 없는 진실같이 느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파츄리님이 말한것 처럼 여동생은 위험한 존재고 나는 그 위험에 맞서고 싶지않다.
"파체... 나는 이제 플랑이 나 이외의 존재와 익숙해져야할 단계라고 판단하고 있는거야 그래서 저 악마에게 부탁을 한거라구."
"아직 이른건 아니고?"
"절대 플랑이 저 악마를 해치지 않을거라고 내가 맹세할수있어. 그러니까.."
"휴... 네가 그렇게 까지말한다면...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루키의 의사야."
"당연하지! 그래. 루키, 너 내 여동생을 좀 상대해 줄래?"
파츄리님을 설득시킨 레밀리아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나에게 부탁해오는 저 간절한 얼굴에 흠칫 해서 간단하게 '맡겨주세요.'라고 말할뻔 했으나 여동생의 위험성을 두 명의 대화로 충분히 인지하게 된 시점이라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만약,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 만화책 빌려주지않을거야~"
떼쓰듯이 나에게 간청해오는 레밀리아. 그 모습은 흡사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가지고 싶은 완구를 사지못해 부모에게 땡깡을 부리는 꼬마애랑 같아보였다. 하지만 무시하기엔 그동안의 욕구불만을 풀수있는 달콤하고 강력한 만화책의 유혹은 너무나도 강했다. 머리로는 이건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되는 조건이라고 납득하면서도 본능을 그걸 무시하고 싶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이런 말이 있지않은가? 이성은 결정적인 순간에 본능에게 굴복한다고.
그리고 나는 그 말대로 굴복하고 말았다.
"잠시라면 그 여동생분을 상대해 드릴수가 있어요. 대신 만화책 맘대로 빌려가겠습니다."
"정말이지! 딴소리 없기다."
마치 땡깡끝에 굴복한 부모님들이 완구를 마지못해 사주자 세상을 다 가질듯이 기뻐서 날뛰는 꼬마애같다. 그래 너는 홍마관의 영원히 어린 붉은 달이 아니라 영원히 어리광부리는 어린 떼쟁이다.
"루키, 레미 말대로 해선 안되? 내가 한 말을 잊은거야?? 위험할것 같다면 조심하라는 내 말 말이야."
파츄리님은 나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뭐라고 해야하나.... 죄송합니다 파츄리님, 저는 어리석게도 그 조언대로 행동할수 없었습니다. 단지, 만화책을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원하는 막장 오타쿠 정신에 사지일지도 모르는 곳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는 겁니다. 부디 저의 안전을 기원해 주세요.
그렇게해서 나는 그동안 그렇게나 위험과 수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깨친것도 없다는듯 레밀리아의 부탁을 들어 여동생님을 상대해 주기위해 도서관을 나서게 되었다.
"어휴.. 저 바보...."
레밀리아의 안내를 받아 여동생이 있다는 곳으로 따라가던 나의 등뒤로 한숨 섞인 파츄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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