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급해진 마음으로 신사의 본전쪽으로 향했다. 히나씨의 주변에 맴돌던 모든 액을 흡수해버린 나의 몸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안좋을것 같다는 판단하에서다. 혹시나 이런 일로 인해 내 몸에 잠재되어있는 진정한 힘을 각성한다거나 하는 중2병 같은 생각따위 가지지도 못하겠다. 언제나 처럼 되려 안좋은 쪽으로만 흘려가겠지.
본전 앞에서 카나코님을 부르려는 찰나 새전함 위에 '아-우'거리던 꼬맹이가 앉아있었다. 마치 개구리와 같은 포즈로 쭈그러앉아있던 여자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누굴 찾는걸까나─."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여자아이. 전에 봤을때 느꼈던 유아스런 분위기가 아닌 사뭇 연장자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나코님. 안계시는거야?"
내가 신님의 부재를 묻자 여자애가 내 앞으로 깡충 뛰어올라서 바로 앞까지 착지하더니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카나코 보다는 내 쪽을 찾아야할것 같은데?"
여자애가 나를 올려다보며 한 말은 이해가 잘 되지않았다. 열살도 안되어 보이는 애가 버르장머리없는 말투인거와는 별개로 왜 내가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것인지 그야말로 의미불명이니까 말이다.
"그 보다 내 질문에 말해주지 않을래? 지금 상당히 급해서 말야."
"헤헤헤.. 반드시 내쪽이 전문일 텐데?"
내 질문에 전혀 답할생각이 없는지 해맑게 웃는 아이. 나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체 소리높이기로 했다.
"너랑 장난치고 싶지않으니까 카나코님을 불려오시던가 어디에 계신건지 알려줘!"
내가 힘을 실어 말하자. 여자애가 무서웠는지 웃음을 멈추고 울먹한 얼굴로 '우우-'거리기 시작했다.
"흥, 카나코 녀석이 뭐가 그리좋다고 카나코만 찾는지.. 네가 흡수한 재액은 아무나 흘려보낼수 있는게 아닌데-."
여자애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그애가 한 의외의 말에 내가 놀라는것도 잠시 불현듯 히나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리야 스와코님이라면 힘이 되어주실지도' 인가? 그렇다면 얘가 모리야 스와코?
나는 저 애가 히나씨가 말한 신님인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내생각을 읽었는지
"히나에게 날 찾아오라고 들었겠지. 내가 스와코야."
하면서 양손을 들어「만세-」하고 자신을 밝혔다. 나는 카나코님과는 달리 전혀 신으로써의 근엄함이나 품위가 느껴지지않는 꼬마신이 과연 나의 심각한 상태를 해결해 줄수있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으나 찬밥 더운밥 가릴수 없기에 의지해 보기로 맘먹었다.
"신님이셨구나. 어려보여서 전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우, 편하게 말해.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거지?"
스와코라는 작은 신이 편하게 말하라고 그렇다고 다시 애 취급할수도 없으니 정중한 태도를 놓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스와코에게 신사 밑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을 하여 지금 나의 상태의 심각함을 토로하였다.
"요놈! 내가 주의를 줬는데 지키지않고 신벌을 받았구나."
스와코는 나의 설명을 다 듣더니 눈을 가느다랗게 뜨더니 대뜸 호통을 쳤다.
"저기, 도대체 뭐가 신벌이라는 겁니까?"
나는 내가 히나씨의 재액을 전부 흡수하게된게 신벌이었는지 판단이 잘되지 않았고 애당초 뭣 때문에 신벌을 받았는지도 어디하나 짚히는 구석이 없었다.
"네가 처음 신사에 찾아왔을때 내가 일러주지 않았어?"
"예?"
"무녀에게 손대려고 한다면 벌 받을거라고."
분명히 그런말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가 잘 안갔다. 무녀인 사나에에게 플래그를 꼽기위해 여길 올생각을 했었지만 그렇다고 아직 직접적으로 손을 댄다거나 추파를 날린것도 아닌데 무슨 기준으로 신벌을 받은거란 말인가?
"무녀에게 손을 대긴 커녕 찝적대지도 않았어요!"
나는 어쩐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 스와코에게 따지듯 말을 토해냈다.
"나는 처음 너에게 우리 사나에한테 불순한 마음을 가진다면 재앙이 닥치게 하는 저주를 걸었었거든."
스와코의 말에 나는 속으로 '너 때문이었냐!'하고 소리를 질렸다. 이런 일이있나! 남자라면 누구나 여자에게 불순한 마음을 품을수도 있는거지 그걸 직접 실행에 옮기냐 마냐에 따라 도덕적 양심이 기준으로 작용하는게 보통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이퀄브리엄이라는 영화에서 처럼 감정을 없애는 편이 낫지 어떻게 그런거까지 간섭을 해서 벌을 내린단 말야! 아무리 사나에가 귀하다해도 팔불출도 이런 팔불출인 신도 없다.
"하하.. 무녀를 너무나 아끼시는 마음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냐? 우리 사나에가 많이 귀여워서 언제 벌레가 꼬일지 걱정이었거든."
"그래서 저한테 재앙을 내리셨다는 이말이군요. 남자란 본디 머리속에 하나씩 음란마귀를 기르고 있는 생물인데 생각만 했다고 일을 저지른다면 누구나 ㅁㅁ마가 되었을테고, 행동으로 판단하지 않고 생각만 했다고 벌한다면 벌받지 않는 남자 존재하지않습니다."
나는 추오도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변명을 하는게 아닌 보다 근본적인 시각으로 남자라는 생물 전체를 변호했다. 지금도 바깥세계에서는 남자가 야한생각을 가진다는 것 만으로 ㅁㅁ마 취급하는 꼴통 페미니스트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생물학적 자존감을 짖밟고있겠지. 하지만 남자가 야하지 않다면 종의 멸종은 가까워 졌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네 말대로 내가 사나에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제멋대로 굴은것일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건 저주는 불순한 생각을 실행할 마음가짐에 반응하여 재앙을 일으키기 때문에 난 내가 한 행동이 틀렸다고는 생각안해."
"실행할 마음가짐이라니.. 그저 생각만 해본건데 말도 안됩니다."
나는 스와코가 말한 자신의 제멋대로 저주를 걸은것에 대한 당위성을 듣고 말도안된다고 말했지만 사나에를 범하고싶다는 생각이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라는 전제를 두고 염원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스와코님은 신이 아니라 악마같네요."
"악마는 너 잖아?"
스와코에 대한 나의 정직한 감상을 무지개 반사하듯 되돌린 스와코는 꼴좋다는 듯 웃었다. 바로 그때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스와코!"
그림자의 주인은 야사카 카나코님이었다. 스와코에게 호통을 치자 스와코는 곤란하다는 듯 시선을 내렸고 그 모습은 나에게 마치 구세주 처럼 비춰졌다.
"쓸데없는 짓을 한것같구나."
카나코님은 스와코를 무서운 얼굴로 내려다 보았고 스와코는 '아-우-'거리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저 악마 녀석이 우리 사나에를 노리고있다고!"
"난 그런 말을 듣고 싶은게 아니야."
"카나코는 사나에를 아끼지 않는거야? 난 잘못한게 없어."
스와코가 자신의 고집을 꺾지않고있자 카나코님은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키여, 사나에는 모리야 신사의 카제하후리이자 현인신이기도 한 고귀한 소녀다. 결코 네가 불순한 마음으로 접근할수있는 대상이 아닌것을 알아다오."
카나코님 역시 사나에를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스와코에 지지않을 정도인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스와코 처럼 저주나 걸어버리는 짓은 하지않겠지만 말야.
하지만.. 나는 악마다. 위대한 신님의 어전이라도 악마로써의 철학이나 관념이 존재하는거다. 저 두 신님에게 악마를 설명해줘야 할것만 같다.
"두 신님의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들이 지켜주고 돌봐주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악마잖아요? 악마를 인간을 보는 기준으로 판단하신다면 오산이예요."
"네가 지금 무슨 입장인줄 알고있는거야?"
나의 반론에 스와코가 짜증을 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전 신들의 가호를 필요로 하지않는 악마입니다. 신님들은 물론이고 인간들이 보기에도 무녀는 순결하고 깨끗하며 신들을 섬기는 성녀겠지만 솔직히 악마 입장에서 보자면 똑같은 여자고 성녀라는 점이 오히려 더 품에 안아서 타락 시키고 싶은 존재란 말입니다."
얘기가 계속될수록 스와코의 얼굴은 험악해지고 카나코님은 심란해져갔다. 나는 두 신님의 표정을 살펴가며 말을 이었다.
"제가 비록 몽마가 아닐지라도 악마로써의 본능으로 순결하고 고결한 여성일수록 범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제가 개인으로써 못되먹은게 아니라 악마니까 당연히 그런거죠. 하지만 나도 인간세계에 적응을 하며 살아왔었기에 그런 본능을 이성으로 얼마든지 누를수있습니다. 그걸 믿느냐 마느냐는 두 신님의 판단 여하에 맡기겠습니다."
"알겠다. 필요이상으로 사나에에게 접근한다면 그땐 내가 직접 움직이겠다만 아직까지 너를 어떻게 할 구실은 없구나."
카나코님은 나의 주장에 어느정도 수긍을 했는지 누그러진듯 보였다. 스와코는 그런 카나코를 놀란 눈으로 '카나코!'하며 야단치듯 외쳤지만 카나코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스와코를 나에게 저주를 걸은 것에 대해 책망을 했다.
"그러니까. 스와코 네가 책임지고 루키의 재액을 해결해 줘라."
카나코님의 명령에 스와코는 '쳇'하고 불만을 드려내며 나에게 스며든 재액을 흘려보내기로 정한듯 손을 올려 내 가슴쪽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야~ 이거 나도 안되겠는데.. 완전히 흡수되어서 흩어지게 하는건 못하겠네."
스와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가슴에 대고있던 손을 땠다. 나는 스와코가 아직도 나를 벌하고 싶은 생각을 버리지 않고있는게 아닌지 의심을 했지만 카나코님의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스와코도 손을 쓸수없는 상태인건지 불안해져만 갔다. 그렇게 초조해 하는 나에게 스와코가 다른 수단을 말해왔다.
"대신 재액이 지속되는 기간을 줄이수는 있지."
실망과 불안으로 차있는 나에게 그나마 희망적인 발언이었다.
"최대한 기간을 줄인다면 일주일 정도로 재액은 힘을 다해서 없어질거야."
"정말인가요?"
"하지만 줄여든 기간 만큼 재액이 가져오는 불행의 여파는 강해질건데 어떻할래?"
스와코의 제안은 선듯 받아들이기에 리스크가 있었다.
"이대로 놔둔다면 얼마나 갑니까?"
"1년이 넘을 듯 하네. 그 기간 동안 불행을 겪겠지."
아무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1년이든 일주일이든 그 불행의 강도가 다르더라도 결국은 불행이다.
"그렇다면 일주일로 불행의 기간을 줄여주세요."
나는 각오를 다지면서 스와코에게 부탁을 했다.
"괜찮겠어? 짧아진 기간 만큼 상상도 안될정도의 불행을 겪을지도 모르는데?"
"이판사판으로 일주일을 살아봐야겠죠."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공기수녀를 집에서 키잡하는 고슴도치 머리의 남자도 타고난 불행에도 히로인들에게 플래그 잘도 꼽아가며 살아가는데. 일주일... 순식간이다. 그리고 이 결정이 나중에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라는 드립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자, 다됬어."
아무것도 한게 없어보이는데 스와코는 다되었다고 말했다. 엥? 이걸로 된거야.. 정말로? 무슨 특별한 의식이나 아니면 주문이라도 외울줄 알았는데... 마치 카나코님이 전에 보여줬던 텔레비전을 나오게하는 권능이랑 비슷한거 같다. 신의 힘이란 이런건가?
나는 리모콘을 누르는것 보다 더 간단하게 이루어진 재액의 단축에 아무런 감흥을 느낄수가 없었다. 비록 나한테 저주를 걸어버린 탓에 이렇게되었지만 일단, 나의 부탁을 들어줬으니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떼에엥─!」
허공에서 떨어진 커다란 양철 대야가 내 머리를 직격하고 땅에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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