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서있어? 내말 안들린거야?"
진땀을 흘리는 나에게 레밀리아가 중2병 시늉에 대한 재촉을 해왔다. 아 이제 몰라. 이대로 개기고있는다 해도 상황이 나아질리도 없고 자칫 잘못하면 무서운 흡혈로리의 분노를 사버릴지도 모른다는게 내 입장이다.
한마디로 '될대로되라'는 심정으로 나는 무겁게 닫혀진 입을 연다.
"크하하하 ─ ! 내가 바로 어둠을 지배하는 자, 루키 디브 레이시스다."
온몸에 창피함을 두른채 절망스런 심정으로 중2병을 연기했다. 아니 그순간에 나는 완벽히 어둠의 귀공자가 된것이다... 라는건 비참한 자신을 위한 위로.
─ 그러자
"푸케케켘케케키키키키킼큐쿠키키키케케케에 ── !"
공포를 흩뿌리던 고귀한 흡혈귀님께서 어디서 본듯한 기괴한 폭소를 터트리며 말 그대로 자지러지게 웃었다.
방금전 까지 보였던 위압감이나 공포는 온데간데 없이 전혀 다른 인물이 되서 미친듯 웃고있는 저 꼬맹이가 과연 그 레밀리아 스칼렛이란 말인가? 믿거나 말거나 그 폭소하는 모습은 인간계에서 봐왔던 괴짜가족의 그것이었고 저 기괴한 웃음소리는 로리콘이 의심되는 백터맨이 프리즈마를 연성할때 내던 그 소리다.
"레미도 참... 기껏 연출한 카리스마가 다 날아갔어."
급격한 이미지 반동에 혼란이 온 나의 뒤쪽엔 한번의 폭소로 카리스마를 날려버린 레밀리아를 한심하다는듯 보는 파츄리가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엄청난 파괴력이야. 하마터면 절명할뻔했어!"
이성을 잃은듯한 폭소를 간신히 억누른 레밀리아가 마치 격전을 치룬듯한 얼굴로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나는 그런 흡혈로리의 모습이 이해가 안갔다. 도대체 중2병 연기가 저렇게까지 숨넘어갈 정도로 웃긴것인가 하고 말이다.
"한번 더 해봐."
호흡을 고른 레밀리아가 나에게 앵콜을 해왔다. 그걸 또 하라는 거야? 이미 창피를 볼만큼 봤으니 원하는 만큼 해주지.
"크하하하 ── ! 내가 바로 어둠을 지배하는 자, 루키 디브 레이시스다."
시키는 대로 다시 중2병을 연기하니 그뒤로는 예상하던 반응이 돌아온다.
"크크..키키키케케켘케케케 ── !"
10대를 겨우 넘긴 유아가 얼굴을 있는대로 잔뜩 찌푸린체 잇몸이 다 드려나게 입을 벌리고 눈물 콧물 다 자아내는 모습을 보면 그 누가 어둠의 권속이니 밤의 혈족이니 하는 말을 믿을수있을까? 창피한건 여전했지만 레밀리아의 깨는 모습 때문인지 더 이상 공포나 위압감을 느낄수가 없었다.
"레미, 너무 심한 얼굴이야."
저런 몰락한 카리스마를 보니 파츄리는 창피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나도 만약 나의 절친이 저렇게 띨띨한 모습을 보이면 창피할것 같다.
"하..하아.. 커컥.. 컥!"
폭소가 멈추자 거칠게 숨을 몰아치는 레밀리아. 이젠 사례까지 들린듯 기침을 내뱉고있다. 보고 있자니 시원한 냉수라도 한잔 떠서 바치고 싶을정도다.
"하.. 한번 더."
레밀리아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혀진 얼굴로 한번 더 하라고 했다. 나야 몇번이나 해줘도 상관없지만 그쪽은 이미 체력이 다해가는것 같은데?
"질리지도 않나.."
이젠 더이상 나를 공포로 떨게하던 위압감은 흔적도 없어진 떼쟁이 유아를 향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뭐?"
순간 등골이 얼어붙게 만드는 살기가 내 영혼에 직접적으로 전해진것 같았다. 아무리 체면을 차리지 않고있다해도 저 레밀리아 스칼렛이라고 하는 소녀는 괴물같은 힘을 가진 흡혈귀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평범한 흡혈귀 따위 저 소녀의 상대가 되지않을거다.
나는 긴장을 누그러뜨려 실언을 한 자신을 탓하며 순간이나마 카리스마가 돌아온 레밀리아를 달래기로했다.
"아니 제말은 ─ 똑같은 레퍼토리가 안 질리시나 그말입니다."
태어날때 부터 생존을 위해 익혀온 비굴한 재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호오, 듣고 보니 그렇군. 그래... 이번엔 좀 더 강한 중2병을 보여주도록해."
나의 재치에 설득된 레밀리아가 재밌어하며 입고리를 올린다. 제 아무리 강대한 괴물이라도 저런 어린애 정도야 말로 달래는건 식은죽 먹기지. 하지만 기존 레퍼토리도 죽을 만큼 창피한데 이젠 새로운 중2병을 연기해야 한다니.. 그래도 실언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당하는것 보다야 백배낫다.
강한 중2병을 주문했는데 뭘 해야되지? 중2병은 중2병이지 강한건 또 뭐야! 하지만 불평을 떠올릴 여유따윈 없었다. 이렇게 뜸 들이는 동안에 제멋대로인 흡혈귀가 행여 짜증을 낼까 오덕 생활중에 습득해왔던 중2병스런 대사들을 조합해봤다.
"크크크크.. 오늘같이 달이 밝은 날에는 피를.. 죽음을 원하는 본능이 끓는군!"
나름 자신있게 중2병을 연기했으나 레밀리아가 아까처럼 폭소하지 않아? 마치 시시하다는 얼굴을 하고있었다.
"그 전 레퍼토리 보다 훨씬 못한데? 다른거 해봐."
아까전에는 그렇게 숨넘어가듯 웃어놓고 시시해하다니? 나름 엄선한 레퍼토리인데 레밀리아의 중2병 기준은 생각보다 까다로운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이젠 창피한 기분 보다는 자존심이 걸린다.
"흐읏!.. 진정해라, 내 오른팔에 깃든 흑염룡이여!"
나는 왼손으로 오른팔을 붙들고 몸을 비틀었다. 이건 중2병을 소재로 한 인기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것으로 중2병 포텐을 자신하는것이다.
헌데.. 흡혈귀는 웃지않았다.
"왜 갈수록 재미없어지는거지?"
흡혈귀는 무표정하게 차가운 눈으로 나에게 물어온다.
또다시 섬듯한 공포가 영혼에 전해지며 심장을 쪼여온다. 하지만 뭐지? 짜증과 분노의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서 영역을 넓히며 커져가고있었다.
내가 왜 이짓을 하는거고 저 무섭지만 존만한 유아에게 협박을 당하는 것이며 메이드의 권유로 엄연히 손님으로 온것인데 왜 내가 창피를 무릅쓰며 광대짓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약하고 만만하니까?
그게 이유겠지. 악마중에서도 최약이라 할 만큼 약해 빠졌기에 마계에서도 남에게 빌빌대며 살아왔다. 한시라도 지옥같은 마계를 벗어나고자 인간계의 계약자를 찾아다녔고 서브컬쳐에 빠져 마계와 담을 쌓게된게아닌가?
괴물같은 힘을 소유한 레밀리아가 보기엔 나는 하찮고 우스운 존재이겠지. 그러니까 나를 이렇게까지 엿먹이는거고 말야...
의문에 의문이 더해가자 서서히 가슴한컨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억한 감정이 봇물 터지듯 나를 잠식해갔다.
얼마나 더 비굴해져야 하나?
그것은 나의 유일한 처세술이었다. 강자를 향해 한없이 기어서 연명한는것.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게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가?
저 흡혈귀, 레밀리아 스칼렛은 나를 손쉽게 죽일 만큼 강하다. 그러니까 울분을 삼키고 언제나 그랬던것 처럼 기어야해.
그래, 난 비굴해져야되....
그런데.. 그렇게 정했는데도 나는 ─
"재미없으면 시키지마─! 애새퀴야."
순간, 주변의 공간이 얼어붙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나의 외침... 그것은 내 앞에서 거만하게 명령하던 흡혈귀도 그를 모시는 시종도 친구인 마법사도 사역마인 ㅁㅁ도 얼어붙은듯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동한의 억한 감정이 전부 담겨진 분노. 그것을 토해낸 댓가는 결코 가벼울것이 아니라는것은 나는 직감으로 깨닳고있었다.
그렇다... 한마디로 나는 이제 ↗된거다.
"하..하하.. 파체, 저녀석이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거야?"
입꼬리가 경련을 하듯 파르르 떨리고있는 레밀리아가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하며 떨고있다. 내가 자기에게 반항할줄은 꿈에도 상상못했다는 듯이
"레미.. 네가 너무 짖굿었기 때문에 이번에 그냥 넘어가주면 안돼?"
어이없다는듯 헛웃음을 치는 레밀리아를 보며 파츄리가 나를 감싸듯이 말했다. 레밀리아는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나에게 돌리며
"하하하.. 뭐라는 거야? 진심이야?"
라고 하면서 레밀리아가 나를 향해 무서운 적개심을 드려냈다.
그녀를 처음 대했을때 느꼈던.. 그러니까 폭소를 하며 망가지기 전의 모습 보다 몇배는 더 위협적이고 공포스런 기운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죽는거구나 하는 비현실적인 감각에 온몸이 마비가 되는듯하다.
얼어버릴만치 공포를 뿜어내는 레밀리아가 조용히 내앞으로 다가오더니 나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하고는 조용히 이렇게 속삭였다.
「─이자리에서 죽고싶지 않다면 따라와.」
레밀리아가 뒤돌아서 도서관을 나가자 나도 혼이 나간듯 그녀를 따라 나갔다.
◆
─ 퍼억!
'쿠당─'
"크..."
나는 저택의 뒷 마당에서 레밀리아의 발길질에 땅바닥을 구르는 중이다.
그녀의 일격에 내 갑상선 쪽이 나간듯 폐에 사정없이 찌르는 고통이 엄습해왔고 입해서는 피의 쇳맛이 느껴졌다.
"요 하찮은 악마녀석. 아까는 잘도 말해줬겠다?"
레밀리아가 살의를 띈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양손을 앞으로 쭉 내밀면서 펼쳤다. 그러자 양손바닥으로 부터 주먹만한 붉은빛의 탄환들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너무나 빠르고 무겁게 나에게 쇄도해 왔다. 전에 레이무가 말했던 탄막같은게 아니다. 명백한 살상력을 띄고있으며 나를 진짜 죽이기 위해 쏘아져나오는 죽음의 구슬들이다.
"─아악!"
막을수도 피할수도 없었다. 탄환에 맞을때 마다 살이 찢겨나가고 뼈가 부려져나간다. 하나라도 제대로 맞으면 즉사할 위력의 탄환의 수는 수십발은 되는듯 하다.
만약, 내가 요괴. 그것도 불사적 재생력을 지닌 레밀리아와 같은 흡혈귀였다면 탄환에 의해 찢겨나간 살들을 즉시 복구했을것이고 강철보다 튼튼하다는 오니라면 무수히 쇄도하는 탄환속에서도 멀쩡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하급 악마다.
하급 악마가 지닌 육체적 능력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윌등하지만 인간이 100이라고 친다면 거기서 +20 정도 더하는 수준인게 전부다. 절대로 흡혈귀와 오니는 커녕 일반 요괴들 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대신 악마는 상급으로 갈수록 마력의 강대함은 비대해 져서 육체적인 한계를 초월하게 되지만 나에게 있어선 그것도 꿈과 같은 이야기다.
마력으로 몸을 방어하는것도 소용없는짓이다. 저 무자비한 붉은 빛의 탄환들은 그런것들을 죄다 무시한채 내 몸을 찢어발기고 있다.
입에서는 피가 쉴새없이 흘려나오고 찢겨진 팔과 다리는 하얗게 뼈까지 보일정도였으며 거울을 안봐도 지금 내모습이 얼마나 엉망진창일지 절로 상상이 된다.
".. 날 죽인다면 마리사가 슬퍼할지도 몰라.. 그녀의 친구인 레이무가 안 무서운거야?"
"그게 협박이 되는줄알고있나? 상관없어 그런거."
이미 엎드려 빌기도 늦었으니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허세를 부리지만 역시 통할리가 없었다. 오히려 화를 돋궈버린거 같아서 상황을 더 안좋게 돌아가고있었고 레밀리아는 양손에 요력을 집중해 다시 붉은 빛의 탄환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욱 더 거세진 탄환들은 이제 내장도 찢어발기는 듯 했다. 너무나 심한 격통으로 인해 신음소리 조차 나오지않는다. 쏟아지던 탄환이 끊긴후에는 피로 인해 시야가 온통 빨갛게 물들어있었고 내 양 무릎은 끊어져 강제로 꿇고있었다.
"그래, 잘 버텨주고있어. 너무 간단히 죽어버리면 재미없거든."
이미 몸이 걸레조각처럼 되어있는 나를 만족스럽다는듯이 쳐다보던 레밀리아가 양손을 붙였다. 대지를 뒤흔드는듯한 요기가 그녀의 손에서 형체를 띄며 점점 커져간다.
"이거를 맞아도 살아남는지 궁금한데?"
나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 떨어지자 축구공 보다 훨씬 큰 듯한 탄환이 나에게 쏘아졌다.
"... 운수 참으로 더럽네.."
나는 정신을 놓을 만치의 격통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응시하며 스치는 주마등을 보았다. 대부분 오타쿠 라이프에 대한 삼매경 뿐이라... 이거 참 나도 잉여스러운 인생을 보냈구나. 즐거운 기억이란게 그게 다야? 진짜 죽음을 앞에두니까 공포 보다 체념밖에 안들잖아! 그나저나 정말 시간이라도 멈춘듯이 주변이 느리게 돌아가고있어. 이게 아드레날린 분비로 인한 두뇌의 가속이란 것인가? 마치 엑셀월드 같네.
솔직한 심정은 이곳으로 불려나온 직후 레밀리아에게 사죄를 빌면서 용서를 구했더라면 목숨은 구제받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평소의 비굴함을 버리고 대들었던 걸까? 아무리 쌓이고 쌓인 억울함이 폭발했다지만 결국 나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않았는가! 순간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나는 결국 어리석었던거다.
「─나는 정말, 바보야.」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보면서 나는 조용히 명작애니의 명대사를 읊조렸다.
─ 콰쾅 ── !!
나는 죽음이 내몸에 닿기 직전에 또다른 커다란 탄환이 쇄도하면서 상쇄하는걸 보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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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코믹] [처녀작] 마리사의 사역마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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