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마리사의 사역마는 수난중
집 안에 어지럽게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을 정리한지 이틀 후...
나는 마리사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있던 방을 개인 공간으로 쓰는것을 허락 받았다. 마리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았던 모양이고 내가 쓰기로 한 개인 공간을 치우는데 만 하루나 걸렸다. 방안의 잡동사니 치우는데 반나절 걸린데 비해 방 안을 치우는데 왜 하루씩이나 걸리냐고 묻는다면 그 방의 상태가 손도 못 댈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이다. 천장에 구멍이 나있고 바닥이 부셔져 있는데다 나무 파편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거미줄이란 거미줄은 죄다 쳐져있고.. 하여튼 어지간한 폐가도 이 보다 상태가 양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치우는것과 동시에 대대적인 보수작업에 들어갔는데. 여기에 대한 지식 부족이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예비용 판자를 찾아서 못질 하고 천을 여러겹으로 해서 틀어 막는등 나름대로 살만한 환경을 만든것이다.
드디어 생긴 개인 공간에 나는 속으로 터져나갈듯이 기뻤다.
여기에... 월셋방에 놓고온 오덕 굿즈만 채워 넣으면 완벽할텐데...
기뻐야 되는데 왜? 되려 씁쓸해지는거지... 지금의 나의 상태는 오랫동안 애니나 만화를 보지 못한 금단 증세가 나타나려하고있다구....
「나, 다시 돌아갈래 ─ !!」
그 이후의 마리사와의 생활은 별 탈이 없이 지낸거같다. 같이 숲에서 버섯을 따려 다닌다거나 신사에 쫒아 다니기를 반복 하기를 벌써 일주일.
그 동안 이곳, 환상향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는데. 대략 요약하자면 ─
요괴 대현자 야쿠모 유카리와 초대 하쿠레이의 무녀가 대결계로 바깥세상과 격리 시켰다던가 세상에서 잊혀져가는 환상을 모으고 결계의 힘에 의해 소환된다는 등 나의 감상을 말하자면 『하나의 정교한 정원』이다. 물론, 요괴들을 위한 정원.
그런데 최근들어 하쿠레이 레이무의 의해 고안된 스펠카드룰이란게 있다. 본능적으로 인간을 덥쳐야하는 요괴들이 환상향의 밸런스를 깰것을 우려해 만든 룰인데. 자신의 필살기를 카드에 새겨서 그걸 선언하는 것으로 살상을 방지하는것이다. 그래서 스펠카드룰이 보급된 이후 인간들의 생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한편, 요괴가 일으키는 말썽을 제제하기 용이해졌다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룰을 이용해서 하는 싸움. 탄막이라고 하는 철저히 비살상에 염두해 두고 이루어지는 일종의 놀이는 나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레이무는 이 스펠카드를 이용한 탄막놀이로 벌써 몇번의 이변을 해결했다고 한다.
자신이 고안하고 실력을 자신하기에 적수가 없다면서 자신만만해 하던 레이무의 모습은 오만한 소녀가 아닌 일류의 실력을 가진 장인의 그것이었다.
"하 ─ .."
나는 지붕위에 누워서 양팔로 머리를 베고 누웠다.
오늘은 할일도 없고 햇살도 따스해서 낮잠자기 딱 좋은 날인것 같다. 울창한 숲이라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나무사이로 새어나오는 햇살에선 버섯의 포자냄새가 섞인 초록의 싱긋한 내음이 난다.
"평화롭구나 - "
악마로써 환상향의 인간 마을은 상당히 흥미가 돋는 장소지만 왜인지 몰라도 인간 탐구 보단 이대로 평화를 만끽하는 쪽을 선택하고싶다.
"어차피.. 시대와 동떨어진 고전적인 시골인걸~"
음... 그래, 이유가 있지. 내가 좋아하는 오덕 문화라곤 눈 씻고 찾아볼수없으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이 오려고 하는데 지붕 아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실례합니다.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란 악마가 있습니까?"
들어본적 있는 목소리였다. 내가 몸을 일으켜 지붕 아래를 쳐다보자 홍마관의 리얼 메이드인 이자요이 사쿠야가 나를 찾고있었다.
"무슨일로 오셨나요?"
나는 지붕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저희 아가씨께서 당신을 불려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차가운 눈을한체 정중한 어조로 대답하는 홍마관의 메이드. 인간이 아니라 흡혈귀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차갑고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는 사쿠야지만 마리사에게 들은바 그녀는 정진정명한 인간이라고 한다.
여태 살아오면서 저렇게까지 신비한 분위기를 내는 인간을 본적이 있던가? 설령, 인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감도는 것은 매우 신비한것으로 리얼 메이드를 넘어 리얼 판타지 그자체인거다.
이런 인간도 존재할수 있구나 싶어 나는 머리속으로 데스노트의 사신의 명대사를 외쳤다.
─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
"제가 바로 L입니다."
"네?"
이런 쓰-벌.. 말이 잘못나왔다. 내이름 스펠링 첫자가 L로 시작하니 틀린말은 아닌가? 그렇다쳐도 너무 쌩뚱맞았어. 조심하자!
"아.. 이런, 농담이 재미없었군요. 근데, 그 아가씨란 분이 대체 무슨 연유로 저를?"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단지 아가씨는 당신에게 흥미를 가지셔서.."
내입으로 말했지만 엉뚱한 헛소리 조차 농담이란다.. 근데 리얼 메이드.. 아니 리얼 판타지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쳐도 그 아가씨란 분이 나에게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가 있긴 한건가? 애초에 그 아가씨와 나는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거든?
"저기.. 굳이 싫으시다면 저를 따라 홍마관으로 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께 신중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오늘 딱히 할짓도 없고 따분했으니까. 그런고로 안내해주세요."
그렇다. 단지 따분하다는 이유로 나는 메이드의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내 주인이기도 한 마리사의 허락도 구해야 했지만 그녀는 오늘 중으로 안 올듯했다. 집을 나서면서 나에게 했던 말이 있어서였다.
'오늘 신사에서 술 대작하기로 했으니 집 잘보고 있으라구.'
시원하게 웃으면서 집보라며 날 남겨둔채 신사로 날아간 마리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뭐 나도 저 홍마관의 당주라는 아가씨가 흥미 본위로 부른거 같으니까 오늘중으로 올수 있겠지.
근데 마리사의 술 대작이란 말도 그렇고 같이지내면서 집에 술병들을 발견했을때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 벌써 술에 빠져서 사나? 싶었지. 하지만 여기에선 그게 보통인거 같다. 만약 바깥에서 누군가 흘려들어온다면 소녀들의 술 노름에 놀라서 까무려 칠거다. 악마인 나조차도 기막혔을 정도이니까. 마더 러시아나 독일 조차도 안 이런다구!
아무튼 나는 리얼 판타지의 안내로 홍마관에 당도하게되었다. 이 사쿠야라는 시종 메이드는 마리사와 달리 내 속도를 맞춰준건지 따라오기가 상당히 수월했다. 그러고 보니 마리사년 인정사정 없이 날라갔었지... 내가 그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몇번이나 뒤에서 애원했는지 모른다.
큰 대문에 도착하자 그곳을 지키던 문지기 '홍 메이린'이라는 중국풍의 여성이 메이드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녀의 대한 인상을 말하자면... 문지기로 썩히기 아까운 여자였다. 중국 요괴라는데 적발이 아름답게 찰랑거리고 거기에 아주 베리 굿인 큰 언덕이 가슴에 자리잡고 있지않은가? 내 기준으론 그녀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미스매치인것 같다. 나같으면 말야~ 내 측실로 둬서 밤시중을 들게 할텐데.. 흐흐흐흐.. (당주가 아가씨니까 백합인가?) 어이쿠..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내가 쓸데없는 망상에 빠져있는 동안 어느새 홍마관의 중앙홀까지 온거같다. 한마디로 의식이 '점멸'이네 그랴.
그나저나 이곳엔 많은 요정들이 메이드를 하고있었는데 내 상식으론 참 말도안되는 짓으로 보인다. 저 요정들이 과연 제대로 일이나 할까? 일본에서 오랜시간 동안 정신머리가 아키바계로 개조당하고 난뒤엔 장난만 치는 유치뽕짝 요정들도 나름 모에 요소로 받아들일수 있게됬다.
이 오빠는 말야.. 요정을 상대로도 불타는 위험한 아쿠마상데스★
이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저 요정메이드들 중 하나를 쌔벼가고싶어진다. 아무나 한마리를 가져간뒤 글리세린 용액을 담은 유리병 속에 보관하면 어떨까? 어우- 아무리 나지만 이건 좀 심한 생각같다.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십시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려보자 전에 한번 와본적이 있는 지하의 도서관이었다. 그렇구나.. 또 '점멸'했어.
"또 보네, 악마씨.. 이름이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였지?"
사쿠야란 메이드는 그자리에 사라지고 없었고 파츄리라고 하는 병약해보이는 보라색 마법사가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네.. 루키라고 불려주세요."
솔직히 난 아직 저 보라색 마법사에 대한 공포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일주일 전의 일이었지만 난 확실하게 그녀의 마법에 의해 불태워졌으니 말이다. 내가 잘못한게 원인이기도 해서 또 그런 무례를 범하지만 않으면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걸 알기에 너무 겁낼 필요도 없는것같다.
"미리 너한테 사과를 하고싶어."
"네?"
무슨 일이일어나길래 미리 사과를 한다고 하지? 난 파츄리의 사과따윈 하나도 안 반갑다고! 설마.. 전에 처럼 내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 벌어진다는거야? 등줄기가 싸─한게 소름이 돋는듯했다. 제발 시시한 일이었으면.. 속으로 그렇게 빌어본다.
"내 친우, 레미는 너에게 고약한 일을 저지를거야."
나는 그 말의 의중을 전혀 알수없었다. 단지, 확실한 것은 파츄리는 나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거고 그 미안함의 원인이 자신의 친우라고 하는 레미라는 인물의 의해서라는거 정도이다.
"레미는 고집불통이라서 자신이 한번 정한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꺾지않아."
파츄리쨔응~ 무슨 말을 하는거야? 친우라며. 그럼 네가 그 레미란 작자를 말려야 하는거 아냐.. 이런, 벌써 신변의 위험이 다가온다는걸 감지가 되는것 같아. 다리털이 쭈뻣서고 가슴이 서늘해지고 있잖아...
나의 악마 센서에 반응이라도 한듯 위험한 기운이 바짝 다가왔다. 그 기운이 쏟아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나를 위험에 빠트릴 무서운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너구나, 후후후 얘기는 들었어. 너 재밌다며?"
악동같은 얼굴로 이죽이는 10대를 겨우 넘겼을 만한 작은 소녀가 나를 향해 불길한 호기심을 뿜어대고있었다.
"누구?"
누군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저 가녀린 작은 소녀가 나따윈 손쉽게 죽일수있는 괴물이라는 것과 나에게 한없이 불길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마관의 당주, 레밀리아 스칼렛. 그것이 고귀한 진조인 나를 지칭하는 진명."
저 문장만 따로 봤을땐 그야말로 중2병 말기 환자가 울고갈 수준이지만 저 작은 소녀의 입에서 나오니 그것은 진실된 무거운 언령으로 느껴진다.
레밀리아 스칼렛이라고 자신을 밝힌 소녀가 더욱 더 이죽이며 말을 잇는다.
"영원한 어린 붉은 달이기도 한 내가 너를 이곳으로 불려들인 장본인이지."
말을 끝내자마자 소녀의 등뒤에 달린 날개가 커다랗게 펄쳐지며 그 사이로 박쥐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이 '오우삼 감독'의 비둘기 연출 처럼 사방으로 펴지듯 날아올랐다.
음.. 뭐랄까? 연출에 상당히 신경썼는데?
푸른색 빛이 감도는 머리에 진홍색의 눈 그리고 아기자기한 이목구비를 한 자칭 진조인 소녀는 서양풍 고스로리 드레스를 입고있었고 사이드에 리본이 달린 천모자를 쓰고있었다. 모습만 보자면 영락없이 애인데 감도는 분위기는 악마성 드라큐라 저리가라여~
하지만 홍마관의 당주인지 뭔지가 너무 무섭긴 해도 한가지 물어보지 않고는 넘어가기 힘든게 있었다.
"홍마관의 당주.. 아니.. 영원한 어린 붉은 달.. 아니 아니.. 진조..."
"그냥 레밀리아라고 불려."
쓰벌.. 뭔놈의 명칭이 이리도 많은거야. 아무튼 내가 헤매는 동안 저 흡혈로리가 레밀리아라고 부르라고 지정해 줬으니까 그래야겠다.
"레밀리아님. 제가 재밌다는 정보는 어디서 입수하셨나요?"
자신에 비하면 티끌과도 같은 나의 물음에 레밀리아는 아까부터 알짱거리고 있던 소악마를 지목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 파체의 사역마가 그러더라구. 네가 중2병 심해서 웃기다고."
이런 씨바아아알 ── !!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전부 저 옂같은 악마년 때문이라는 거잖아! 첫인상 부터 개같은 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데이터 갱신을 해야겠다. 개씨벌년!이라고
레밀리아에게 나는 분명 답없는 중2병 환자로 보이겠지. 그리고 뭐야... 그런 터무니 없는 헛소리 때문에 내가 위험에 처하게 생겼잖아.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소악마의 모습은 '킥킥'대며 웃고있는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울분을 삼키며 붉으스름해 지는 얼굴로 말없이 서있었다. 레밀리아에 대한 공포와 수치심 때문에 정말이지 죽을것 같다. 아.. 소악마에 대한 분노도 추가.
내가 언젠간 저 년을 죽여버리고 말겠어.
"그래서 말인데."
"?"
레밀리아가 이죽대는걸 멈추고 눈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전에 네가 했다던 중2병 대사 한번 해봐. 그 어둠을 지배하는 자라는거 말야."
그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온몸이 굳어져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젠 창피해서 더이상 그런 대사는 할수가없다고.. 차라리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를 때려패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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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 까지는 사실상 프롤로그 였고, 이번 회 부터 본격적인 전개죠.
부제를 보면 알겠지만, 주인공 불행의 시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