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월 - 부서진 달
작은 오니가 한 소녀를 끌어안은 채 울부짖고 있습니다.
너무도 슬픈 목소리로, 소녀의 이름을 거듭 부르던 그 오니는 보름달이 뜬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달을 바라보는 오니의 눈에 가득 차오른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흐릅니다.
눈물젖은 눈에 비친 달은, 눈물에 번지고 찢겨 여기저기 부서진 채 빛날 뿐입니다.
가슴이 저리도록 서러운 울음소리가, 텅 빈 밤하늘을 가득 채워갑니다.
얼마나 오래 전부터였을까, 항상 술에 취한 채로 흥미롭게 인간을 바라봐오던 한 꼬마 오니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바라본 인간들은 - 다른 오니들과 요괴들 말처럼 - 요괴나 신은 물론, 서로에게도 꾀를 부려 속이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분명 같은 종족일텐데 서로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의 모습이 재미있는 술안주라도 되었던 것일까, 오니는 오래도록 질리지도 않고 인간들을 관찰했습니다.
마을에서, 산이며 들에서, 신사에서, 심지어 묘지에서도, 꼬마 오니의 눈에 모든 인간은 똑같은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같이 가식으로 가득찬 인간들.
거짓말을 싫어하는 오니는 인간들과 그들의 세상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사라져버려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한 소녀만을 제외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소녀는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통통한 하얀 볼, 곱게 빗어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와 길쭉한 눈은, 또래 소녀들의 그것들과 비슷했습니다.
소녀는 특별히 영특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걸핏 실수를 연발하고선, 당황하다가 헤헤 웃으며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그 소녀는 특별히 착하지도 않았습니다. 싫은 것을 해야 할 때면 매맞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도망가고, 좋아하는 것에만 활짝 웃으며 달려가곤 했습니다.
미모, 재능, 혹은 덕목, 무엇하나 특별한 점이 없는 그 소녀에게, 마을 사람들은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았습니다 -
한 오니만을 제외하고.
오니가 소녀를 처음 보았을 때, 소녀는 마을 근처의 작은 들에 모인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인간의 덫에 다친 요괴를 구해주어 친구가 된 한 소녀의, 한 번쯤은 누구나 들어봤을 허황으로 포장된 감동적인 이야기.
요괴와 친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야기를 믿지 않는 몇몇을 뺀 대부분의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던 걸까, 소녀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얼굴에 머금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오니는 마음먹었습니다 -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 이야기를 전하는 소녀를 벌주겠노라고.
그날 밤 오니는, 밤늦게 집을 나가 어디론가 향하는 소녀를 몰래 뒤쫓았습니다.
작은 시내를 건너고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소녀는 한 그루의 나무 앞에 도착했습니다.
소녀가 조용히 기척을 하자, 나무 밑둥에서 무언가가 작게 신음하며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나와 소녀를 맞이했습니다 - 어린 사토리 요괴였습니다.
품에서 약병 같은 것을 꺼낸 소녀가 요괴를 돌보는 동안, 분명 인간의 생각을 읽는 사토리의 얼굴에서 오니는 어떠한 의심과 불안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술기운이 싹 달아난 오니는 눈을 의심하며 두 인요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멀리서 자신들을 주시하는 눈빛도 눈치채지 못한 채.
얼마 뒤 어린 사토리는 인간에게 붙잡혀 참수된 다음, 마을 한가운데서 불태워졌습니다.
소녀는 슬픈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더 이상 다친 요괴와 인간 친구의 얘기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 그 역시 소녀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해오며 그들에게 실망해가던 오니는, 그 보잘것없지만 거짓없는 소녀에게 점차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시간과 그들에 대한 환멸감은, 그녀를 바라보는 시간과 흥미에 점점 묻혀갔습니다.
소녀는 그런 오니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오니의 힘이란, 평범한 소녀가 함부로 눈치챌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소녀가 오니는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니는 인간으로부터 적대시되었고, 오니들 또한 인간의 간사함에 실망해 그들을 등져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소녀와 오니는 결코 만날 수 없었으며, 만나선 안 되었습니다 - 하지만 소녀가 다른 인간들과는 달랐듯, 꼬마 오니 또한 다른 오니들과는 달랐다.
다른 오니들이 단순한 여흥거리로써 술을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에게 술은 언제나 진정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오래된 친구와도 같았습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만큼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는 보물 호리병이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술을 몇 모금 들이켰습니다.
다음날, 여느때처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들로 향하던 검은 머리 소녀의 앞에는 처음 보는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허리춤에는 푸른 호리병을 차고, 온 몸은 사슬과도 같은 끈으로 장식돼 있었습니다. 땅에 닿을 정도로 긴 검은 머리는 길게 묶여 늘어져 있었습니다.
새까만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소녀는 이름을 말하며 인사했습니다 - 미츠키(美月).
여자아이 또한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답해 왔습니다 - 스이카.
모든 아이들에게 그래왔듯 스이카에게 친구가 되길 청한 미츠키에게, 스이카는 밝게 미소지으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미츠키는 기쁜 듯 웃으며 앞장서서, 놀러 가자며 길을 안내했습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스이카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습니다.
밤낮, 마을에서, 산과 들에서 미츠키와 함께 하던 스이카는 곧 미츠키와 막역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인간 친구와 함께하며 술을 덜 마시게 된 스이카는 속에서 아쉽고 애석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
자신의 참모습을, 자신이 오니임을 그녀에게는 밝힐 수 없었기에.
취기에 힘입어, 능력을 사용해 오니의 뿔을 감추고 인간의 모습을 취했습니다. 오니로 살던 시절의 이야기, 요괴 마을의 이야기를 꼭꼭 묻어두었습니다.
미츠키의 앞에서 스이카는, 거짓말과 거짓말쟁이 인간을 싫어하던 오니가 아닌, 과거를 감춰 베일에 둘러싸인 여자아이 스이카.
허나 그런 스이카를 미츠키는, 다른 모두를 대할 때와 같이, 한없이 솔직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친구가 된 요괴가 죽어 슬픈 이야기, 새로운 친구가 다시 생겨 기쁜 이야기, 심지어 스이카에게 느끼는 서운함...
그녀는 스이카에게 무엇 하나 숨기지 않았습니다.
인간 스이카는 친구 미츠키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오니로서의 자신 또한 그녀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작은 오니는, 잠시 자신의 오랜 친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는 술을 들이켰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들판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돌아가고, 미츠키는 스이카와 들판에서 눈을 감고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스이카는, 꼭 해야할 말이 있다며 조용히 말문을 열었습니다. 미츠키는 짧게 대답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 스이카 쪽을 보았습니다.
빛나는 갈색 머리에 뿌리내리고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은 한 쌍의 뿔, 자신을 바라보는 투명한 연갈색 눈. 어디선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술내음.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미츠키에게, 스이카는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 자신은 슈텐도지라고도 불리우는, 오니 이부키 스이카.
자신을 숨기고 인간을 속여온 꼬마 오니는, 사뭇 자신없는 목소리로 그 인간에게 친구가 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미츠키는, 스이카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
오니 이부키 스이카는 자신과 솔직함을 대결하는 데 패했으므로, 벌로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 달라고.
미츠키 이외의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당당한 이부키 스이카로 남아 달라고.
평범했던 소녀 미츠키는, 오니라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친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스이카가 본모습을 숨기지 않게 되어 더 이상 그녀의 집에서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미츠키가 직접 스이카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오니로서 술과 오니 이외의 친구를 가지게 된 스이카는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미츠키 또한 특별한 인연을 만들게 된 것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한 인간과 진정한 관계를 쌓게 된 스이카는, 그녀와 모든 것을 나누었습니다. 오랜 친구였던 술을 미츠키와 나누었습니다.
또 오니와 요괴 마을에서 하던 놀이를 알려주거나, 능력을 이용한 재주를 보여주며 진심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미츠키는 다른 인간과 달랐고, 모두가 오니와 인간이 관계를 맺는 것을 탐탁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츠키를 바라봐 오면서부터 어느정도 긴장을 놓고, 그녀와 친구가 되며 술버릇이 돌아와 완전히 긴장이 풀려버린 스이카는,
멀리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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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월(碎月)이라는 단어의 뜻을 해석해 보고서 거기에 영감을 받아 쓰기 시작해봤는데,
기대한 것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기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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