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소멸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제 짤막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분명, 너무나도 단순한 우연에 불과할 뿐일 이야기를.
저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저를 느낄 수 있는 사람 또한 많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관심을 던지는 이는 없었습니다.
허나 저는 외롭지 않았고, 슬프지 않았으며, 또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떠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없이 또 한없이, 그저 떠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들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는 걸 저 자신도 알고 있었기에 제겐서두름도 조급함도 없었습니다.
제가 원망하던 누군가를 해하고, 악행을 저지르며 답답함을 풀고 싶지 않았던 것도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보지 않은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만물과 세상의 이치마저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긴, 영겁과도 같은 시간속에서 헤메다가,
결국은 무의미하게 방황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는 사실을 제가 알고 있었고, 또 오래 전에 그것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저와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모이는 곳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기대와 후회로 가득차게 되는 그 곳에, 이미 회의감으로 가득 찬 제가 갈이유는 없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며 저는 무의미한 방황을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언제였을까요,
그 분께서 거처하시던 그 고택에 제 발길이 닿게 된 것은.
아마 겨울 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떨어지는 눈에 모든 것들이 서서히 새하얗게물들어가기 시작하던.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릴만큼 앙상하게 말라, 살아있는가의 여부도 확실치 않은고목 아래를
답답함과 슬픔이 가득한 소박한 미소를 지으시며 거니시던 그 분과 눈이 마주치게 된 것은.
어째서였을까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지 방랑하고 있을 뿐이었던 존재에 불과하였을 제게
순백한 세상에 수없이 발자국을 남기며 다가오시고, 손을 내밀어 반겨주시고,
또 더없이 순수한 대화를 허락해 주셨던 것은.
그리고 어째서였을까요,
허무감에 정복당한 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저의 무한했던 헤메임이,
그렇게도 간단히, 일순간에 멈춰버리게 되었던것은.
그 분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분께서 제게 초자연적인 힘을 가해 제 복종을 요구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여태껏 제 속을 지배해왔던 허무함과는 너무나도다른 슬픔에,
자연히 제 안에서부터 그러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저와 비슷하면서 다른 처지의 이들이 있는 곳에선 지내고 싶지 않은 저였습니다.
그 분의 곁에 머무르며 저는 그 사실에 작게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하게, 그 동안 해온 것처럼 아무런 조급함도 없이,다만 그 슬픈 표정을 지우려 애써 보며.
저는 그 분의 곁을 지키며 또다른 영원에 빠져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께서는, 제가 원치 않던 이들만을하나 둘, 그리고 계속하여 데려오셨습니다.
욕심에 가득 차 금방 터질것만 같은 모습을 한 이들;
저보다 더 긴 방랑을 하였는지,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만큼 처참한몰골을 한 이들;
혹은 희노애락을 모두 느끼며 온갖불쾌한 표정을 지어대는 이들.
그들은 모두 그 분의 손을 잡아 보고, 그 분과 대화를 하며, 그 분의 곁에서 떠돌았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그 분의 곁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허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래서는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분께 여쭈었습니다 – 어째서 제게 그런 표정을 지으셨으며,왜 저를 이끌어 주셨냐고.
그 분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미소지으실 뿐이셨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지으시던, 당장이라도 울 것 같지만 무구한미소를 지으실 뿐이셨습니다.
그 미소를 저는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떠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 그 분께서 다시 그 미소를보이시는 것을 원치않았습니다.
날씨가 조금씩 풀려가며, 꼭 죽은 것만 같았던그 나무에도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둘씩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흐드러지게 짙은 분홍색 벚꽃이.
나무는 살아있었습니다. 꽃이 필수록 더 아름다운 자태를뽐내며 기운을 발산했습니다.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꽃나무를 보시며슬픈 표정을 지으시는 그 분의모습은.
어느 날 그 분은 고운 의복을 갖춰 입으시고, 허리춤에는 나비문양자수가 새겨진 단도를 매신 채
결연한 표정으로 다른 이들과 저를 불러 모으시고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없으셨습니다.
너무도 우아한 자태에 누구도 그 분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도 확고한 표정에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도 슬픈 분위기에 누구도 그 분을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않았습니다.
그 분을 따라 나무 근처로 갔습니다. 그 사이에 벚꽃이 거의만개한 모양이었습니다.
전보다도 강한 기운을 내뿜는 그 나무는 마치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무한히 방황하며 모든 것을 허무하게 바라보던 때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곧이어 어떤 겨울날, 저로 하여금 제 방랑을 멈추게했던 그 분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급히 고개를 돌려 그 분을 보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무한히 방황하던 영겁의 굴레를 부수고 제게 손을 내밀어준 그 분께서 옆에 계신다는 사실을,
제 방황이 멈춘 것은 그 분의 그 미소를, 순수하게 행복으로 가득찬 미소로 바꾸고싶었다는 것을,
그 분의 얼굴을 보고서야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절망했습니다.
분명히 허리에 앉아있을 터였던 나비가 목에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나비의 발치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 분의 얼굴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그 분을 따라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제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런일이 없었으리라는자괴감에 휩싸였습니다.
서서히 고개를 들어, 그 분의 모습을 다시 한 번바라보았습니다.
그 분의 곧게 뻗은 손가락은 나무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떨리지 않는 팔 또한 나무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어깨에는 붉은 벚꽃의 잎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분의 목에는 붉게 물든 나비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다음 순간 저는 망설이지 않고 나무로 돌진했습니다.
저를 밀어내려는 듯 깊고 탁한 기운을 거칠게 발산하는 나무의 저항을 무릅쓰지 않고,
그 분의 손가락이, 팔이, 그리고 눈이 가리키는곳으로 온힘을 다해 돌진했습니다.
쿵.
개화를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무는 시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죽어가는 나무는 안중에도 없이, 그 분께서 누워계시는 모습을눈에 담았습니다.
분명 고통스러우실 것인데, 환하게 미소지은 채 누워계시는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미소를 본 저는 더 이상 어떠한 미련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분으로부터멀리서 사라지고싶지 않았습니다.
처음 그 분을 뵈었을 때처럼,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으며그 분께 다가갔습니다.
이미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목의 나비만이 부르르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나비에 손을 얹은 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이 더 이상은 없음을 느낍니다.
허무함도, 허무함을 뒤덮었던 슬픔도,그리고 그 슬픔을 해소한
지금의 기분도 더 이상은 느낄 수 없음을 느낍니다.
저는 지금 소멸하고 있습니다 – 저라는 존재는 문자그대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 제 일생의 모든 행복감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욱.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헤어지게 된 이 분을 너무도 슬픈 그 미소로부터 해방시켜 드렸다는 생각에
저는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자신합니다.
"후지미의 소녀, 사이교우 아야카시 만개의 때,유명을 달리하였으니,
그 혼, 백옥루 안에 편히 잠들도록,사이교우 아야카시의 꽃을 봉인하며 이로써 결계로 한다.
바라건대, 두 번 다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영원히 전생함을 잊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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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게의 많은 분들처럼 멋진 소설을 집필하는 능력 같은 건 없습니다 - 오히려 문체 자체는 수필에 가깝죠.
해 보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표현력도 없고,여기저기 어색한 부분들이 난무하네요.
하지만 처녀작만큼은 꼭 유유코 님의 이야기로 해 보고 싶었어요 - 꼭 주인공이 되시진 않더라도.
유유코 님의 희생으로 사이교우 아야카시가 봉인되었다면,
그 봉인의 매개체가 생전의 유유코 님이 다루시던 사령이었다면,
그리고 사령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서 써 봤는데, 역시 이상하네요..
그래도 다들 즐겁게 읽으셨다면 기쁠 것 같아요.
읽어주신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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