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 메구로 지하철 탈선
일시 : 2000년 3월 8일 9am
장소 : 도쿄, 일본
인명피해 : 사망5명 부상63명
사고원인 : 전동차 탈선
사고내용 :
도쿄 메트로 나카 메구로 역에서 히비야선에서 전동차가 곡선구간에서 탈선했다
탈선 차량은 총 8량 1편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 5호차와 6호차가 반대 방향인 다케노쓰카로 이동하는 전동차와 충돌했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을 입었다.
8.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
일시 : 1995년 3월 20일 8am
장소 : 도쿄, 일본
인명피해 : 사망12명 부상5,510명
사고원인 : 종교단체의 테러
사고내용 :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경, 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 선, 히비야 선에서 각 2편성, 지요다 선에서 1편성, 총 5편성의 지하철 차내에서 화학무기로서 사용되는 신경 가스 사린이 살포되었다.
일본에서는 당시 전후 최대급의 무차별 살인행위인 것뿐만 아니라, 마쓰모토 사린 사건에 이은 대도시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화학병기가 사용된 역사상 최초의 테러 사건으로서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더불어 이 사건은 일본의 안전 불감증이 아직도 심각함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사건으로부터 이틀 후인 3월 22일 일본의 경시청은 신흥 종교단체 옴진리교에 대한 강제 수사를 실시, 사건에의 관여가 판명되어 체포된 교단의 간부급 신자 하야시 이쿠오의 자백에 의해 전모가 밝혀졌다.
도쿄 지방법원은 주범인 교주 마쓰모토 지즈오를 시작으로 하야시 이쿠오를 제외한 범인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만 고등재판소에서는 무기징역 판결도 다수 나왔다.
7.
바쿠 폭발물 투척 사건
일시 : 1994년 3월 19일/ 1994년 7월 3일
장소 : 바쿠, 아제르바이잔
인명피해 : 사망27명 부상91명
사고원인 : 폭탄테러
사고내용 :
첫번째 공격은 ■■폭탄테러로 1994년 3 월 19 일 1pm에 발생했다.
시한 폭탄을 좌석 아래에 심어 철도 차량 이 역에 멈췄을 때 폭발했다.
즉시 가해자의 Oktay Gurbanov는 사망했다.
철도 차량이 파괴되고 역의 지붕은 부분적으로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사건으로 바쿠 지하철의 운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첫번째 공격의 결과로 14명이 사망하고 49명이 부상을 입었다.
두 번째 공격은 1994년 7월 3일에 발생했다.
폭탄은 8시 30 분 폭발 오전 기차가 역에서 출발 한 후 Ganjlik역 에서 500m정도 움직인 뒤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부상자의 대부분은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두번째 공격으로 인해 13명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을 입었다.
총 두번의 공격으로 인해 사망자의 수는 27명, 부상자의 수는 91명이 되었다.
공격 후 아제르바이잔의 하이더 알리 예프 대통령은 국가조사위원회를 창설하였다.
6.
런던 킹스크로스 역 화재
일시 : 1987년 11월 18일 7pm
장소 : 런던, UK
인명피해 : 사망31명 부상60명
사고원인 : 누군가가 버린 성냥과 흡연용구
사고내용 :
화재의 시작점인 역 구내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부근은 목재로 만들어져 있었다.
당시 런던지하철은 역사 내에서의 화재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화재사건 지점을 조사하던 중 발화점으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던 에스컬레이터 디딤판 옆에서 누군가 버린 성냥과 흡연용구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결국 지하철 역사 내에서 흡연자들이 버린 담배와 성냥이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화재는 에스컬레이터 옆부분에서 발생하여 빠른속도로 번져나가 매표소를 화염과 연시로 가득채웠다.
그리고 전동차가 역을 드나들때 발생하는 바람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기류가 엉키면서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키운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장검증 도중에 에스컬레이터 밑에서 나무가 탄 흔적이 18군데에서 발견되었다.
시작적으로 불꽃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화염의 대부분은 에스컬레이터 밑부분에 깔려 있었으며, 극히 일부만이 에스컬레이터 바깥쪽으로 새어 나와 보일 뿐이었던 것이다.
디딤판들이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화재의 규모는 현격하게 확대되었고, 화염의 기류가 에스컬레이터 터널에서 매표소로 유입, 역 지하 홀 일대의 가연성 물질들을 자극했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 위의 천정을 칠했던 솔벤트 도료는 플래시오버 현상을 부채질하면서 화재의 규모를 키웠고, 하얗고 얇게 피어오르던 연기를 검고 짙게 바꾸어 버렸다.
이 사건으로 31명이 사망, 60명이 화상이나 연기 중독 등의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들은 강한 열기와 두껍게 퍼진 연기층으로 인해 매표소를 빠져 나올 수 없었다.
5.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테러
일시 : 2010년 3월 29일 8am
장소 : 모스크바, 러시아
인명피해 : 사망41명 부상88명
사고원인 : 폭탄테러
사고내용 :
2010년 3월 29일 오전 7시 55분부터 8시 39분경까지 모스크바 지하철의 루뱐카 역과 파르크 쿨투리 역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먼저 오전 7시 55분에 루뱐카 역에 정차중이던 열차의 앞쪽 두 번째 칸에서 폭발이 일어나 24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을 입었다.
폭발이 일어난지 약 30분 후에 루비얀카역과 같은 선로에 있는 파르크 쿨투리 역에서 정차중이던 차량의 앞쪽 세 번째 칸에서 폭발이 일어나 12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출근시간대라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이 테러로 장시간 동안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고 시 당국은 모스크바 중심부의 교통을 통제했다.
시민은 버스등의 대체운송수단을 이용하였지만 지하철 운행이 사고 현장 외에서 재개되어도 폭발을 우려해 한동안 지하철 이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는 2007년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을 계승한 체첸의 테러 단체인 캅카스 에미레이트가 주도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18~20세 가량으로 추정되는 2명의 여성이 유고 자파드나야 역에서 전철을 타는 것이 감시카메라에 포착됐으며, 슬라브계의 용모를 한 2명의 여성과 수염을 기른 남성이 동행하고 있는 것을 경관이 목격했다고 전했다.
조사당국은 체첸의 테러 단체인 캅카스 에미레이트의 조직원에 의한 범행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조사당국은 러시아형법 205조(테러대응법)에 의거하여 조사를 시작했으며, 범행의 공범으로 보이는 3명을 수색하기 위해 캅카스 지역의 검문을 강화했다.
2명의 여성은 연쇄적으로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연방보안국은 사건현장에서 시신을 통해 이 사건을 체첸 반군 단체인 검은 미망인 조직원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첫 번째 폭발에서는 4kg의 TNT폭약이 사용되었고, 두 번째 폭발은 TNT 2kg이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연방보안국은 두 여인의 얼굴이 부상을 입지 않은 걸로 보아 폭탄을 허리에 차고 범행을 자행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으며, 사용한 폭탄 모두 폭풍에 의한 파괴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너트와 볼트등의 금속을 채워넣었다고 밝혔다.
조사당국은 사건 발생 5일째인 4월 2일, 두 번째 폭발을 일으킨 여성 용의자의 시신에서 DNA 샘플을 채취하여 감정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용의자는 17세 여성으로 2009년 12월에 다게스탄 공화국 전투에서 살해된 이슬람 무장단체 전투원의 아내인 제네트 압두라흐마노바였다고 판명되었다.
4월 5일에는 최초 폭발을 일으킨 용의자는 다게스탄 공화국 마하치칼라에 거주하던 28세 여성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녀의 가족에 의하면 이 여성은 정보과학 교사로 3월 28일에 모친과 마하치칼라의 시장에 간 후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사건발생 2일후인 4월 1일, 북캅카스 무장세력의 웹사이트 캅카스센터에서 도쿠 우마로프는 테러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비디오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을 통해 우마로프는 이번 테러에 대해 "푸틴 정권의 북캅카스 정책에 대한 보복이다" 라고 하며 테러 사실을 인정하였고, "앞으로도 러시아 전역에서 테러가 일어날 것이다"라며 예고했다.
테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2월 11일 러시아 연방보안국이 다게스탄 공화국에서 실시한 특수작전에 대한 보복이라고 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사건 발생 당일 저녁에 사건현장인 루뱐카 역을 방문해 영전에 꽃을 올리며 "그들을 추적해서 말살시키겠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동아시아를 방문하고 있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테러 소식을 보고받고 서둘러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4.
파리 지하철 화재 참사
일시 : 1903년 8월 10일 7pm
장소 : 파리, 프랑스
인명피해 : 사망84명
사고원인 : 전동기 회로 합선
사고내용 :
1903년 8월 10일 오후 6시 53분, 나시옹행 43호 열차의 선두차량 부근에서 연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승객을 모두 플랫폼으로 대피시킨 뒤 집전장치를 올리자 연기가 멈추었다.
하지만 이 후 집전장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불길이 다시 붙었고 나중에는 나무로 만든 집전장치 부품이 화재로 인해 타버리면서 결국 집전장치를 다시 올릴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 뒤에서 따라오던 열차인 52호 열차가 르 알마뉴 역에서 모든 승객들을 하차시킨 뒤 Combat 역에서 43호 열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43호 열차의 후미에 연결되었다.
같은시각, 그 뒤의 후속열차인 48호 열차가 르 알마뉴 역에서 43호. 52호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을 차량에 태우고 운행을 시작했다.
43호 열차와 52호 열차는 다음 역인 크롱 역을 통과할 당시, 역장은 차량의 화재가 심해진 것을 확인한다.
정원의 3배에 달하는 승객들을 태운 48호 열차가 크롱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방 터널 내부가 연기로 가득했고, 운전사는 역장과 대응책을 협의했다.
뒤늦게 위험을 인지한 직원들은 48호 열차의 운행을 중지하고 승객 전원을 지상으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승객들, 특히 전방의 43호와 52호에서 하차하여 갈아탄 승객들은 이 조치에 불만을 터뜨렸고, 운임 환불을 요구하는 등 역 구내는 혼란에 휩싸였다.
43호 열차와 52호 열차가 다음 역인 Menilmontant 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불길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오후 8시, 역의 조명용 전력을 공급하던 전선이 화재로 끊기며, 크롱 역은 암흑천지가 되었다.
동시에 Menilmontant 역에서 발생한 연기는 터널을 타고 크롱 역까지 퍼져 왔다.
역에 있던 승객들은 암흑 속에서 연기에 휘말려, 길을 잃고 출구를 찾아 헤매다 차례로 질식해 쓰러졌다.
결국 이 사건으로 84명이 사망하였다.
75명은 크롱 역에서, 7명은 메닐몽땅 역에서, 2명은 터널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지하철 사고로 기록되었다.
3.
상인동 가스 폭발사고
일시 : 1995년 4월 28일 7:52am
장소 : 대구, 한국(South)
인명피해 : 사망101명 부상202명
사고원인 : 과실로 인한 폭발사고
사고내용 :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경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영남고교 사거리 지하철 1호선 제 1~2구간 공사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이다.
이 사고는 사고발생지역 남쪽지점에 있는 대구백화점 상인지점 신축공사장에서 그라우팅을 위한 천공작업을 위해 75mm 구멍 31개를 굴착 중 실수로 천공기로 도시가스 배관을 관통시켜 구멍이 뚫림으로써 가스가 누출, 인근 하수구를 통해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돼 원인미상의 불씨에 의해 폭발한 사고이다.
폭발음과 함께 50여 m의 불기둥이 치솟았으며, 이 사고로 학생 42명을 포함해 101명 사망, 20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차량 통행을 위해 공사장 위에 임시 설치한 복공판 400m가 무너졌고, 건물 346채, 자동차 152대가 파손되어 피해액은 540억원에 다다른다.
이는 역대 세계 지하철 참사 가운데 사상자 규모에서 3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조치사항으로 1995년 4월 28일 11시 30분에 주민 및 교통통제를 위하여 경계구역을 설정하였으며, 15,369명(공무원 5,000명, 소방 2,525명, 경찰 3,379명, 의료진 1,389명, 군인 30명, 기능인력 3,046명)의 인력과 1,025대(중장비 747대, 구조차량 278대)의 중장비가 투입되었다.
또한 의료기관으로 20개의 병·의원이 참여하였다.
5월 1일 에는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 지하시설물과 1995년 5월 12일에는 지하철복공판 등 기존의 시설물 등에 대한 응급복구가 이루어졌으며, 1995년 5월 12일 오전 4시에는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
당시 도시가스 사업법에 가스배관은 지하 1m이상 깊게 매설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상인동 가스관은 불과 지하 30cm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대형 공사장에서 지하 굴착을 할 경우에는 해당관청의 도로굴착 승인을 득한후 가스관을 매설한 회사와 연락하여 가스관이 묻힌 위치를 문의한 후 공사를 진행해야 하나 공사 관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식으로 무허가 굴착 작업을 진행하였다.
관할관청의 담당자들도 현장관리에 소홀하여 안전조치를 원칙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결국 안전규정 지시 불이행과 소홀한 안전대책으로 인해 피해를 더욱 더 키운 셈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01명의 사망자와 202명의 부상자가 발견되었는데 학교 등교시간에 벌어진 사고로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2.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일시 : 2003년 2월 18일 9:50am
장소 : 대구, 한국(South)
인명피해 : 사망192명 부상151명 실종21명
사고원인 : 방화
사고내용 :
9시 53분경, 1079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할 무렵 1번째칸 노약자석 옆 일반석에 앉아 있던 김대한은 1회용 가스라이터를 켠 다음 샴푸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김 씨는 옷에 불이 붙자 황급하게 가방을 객실 바닥에 던졌고 불길은 순식간에 객실내로 번지면서 화재가 확산되었다.
불길이 번지자 승객들은 우왕좌왕하며 황급히 대피하는 등 혼란이 일어났다.
1079열차 기관사는 중앙로역에 도착해 출입문을 연 뒤 "불이야!"하는 소리를 듣고, 운전실 앞에 있는 CCTV 화면에 객차 쪽에서 승객들이 서둘러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운전실 옆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나와 불을 끄려 했지만 가연성 소재로 가득한 전동차 객실 내부의 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9시 55분 30초 경 1079열차와 반대방향으로 운행하는 1080열차가 대구역을 출발하여, 9시 56분 45초 경 중앙로역에 진입하여 정차함으로써 1079열차에서 발생한 불길이 1080열차로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확산되었다.
화재 발생 20여초 만에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에 설치되어 있던 승강장 감시용 CCTV의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 분출량이 많았던 것으로 판단되며, 화재가 진행되면서 지하 3층 승강장과 1079, 1080의 두 열차 내부는 유독가스와 화재로 인한 열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거나 우왕좌왕하는 등 아수라장이 되었다.
1079열차의 승객 대부분은 정차중으로 문이 열려 있었고 기관사가 승객들에게 대피를 지시하여 대피한 반면, 반대방향으로 운행 중이던 1080열차는 화재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역에 진입, 정차함에 따라 화재가 확산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특히 1080호 열차는 화재가 난 후 당황한 기관사가 마스터키를 뽑고 나가는 바람에 전동차의 도어가 모두 폐쇄되었고 도어를 개방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못한 승객들은 전동차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었다.
사고 당시 화재가 처음 화재 발생한 안심행 1079열차에는 방화범을 포함한 250여명이, 반대방향인 대곡행 1080열차에는 180여명의 승객이 탑승했었던 상태였다.
지하철에서 불이 나자 중앙로역 일대는 유독가스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으며, 환풍구와 출입구 등에서 나온 시커먼 연기는 시내 전체를 뒤덮어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정도였으며, 사고소식을 접한 뒤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로 아수라장을 이뤘다.
가해자 김대한은 이 사건 이후 경남 진주에 있는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같은해 8월30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1080호 기관사는 마스터키를 뽑아버려 승객들의 탈출을 막아 피해를 확산한 점에서 5년형이 선고되었고 2008년 출소했다.
이후 전세계 철도차량의 안전기준이 크게 강화되었고 국내에서는 모든 철도차량의 내장재를 불연재로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으로 192명의 사망자와 151명의 부상자. 21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사건당시 전소된 독일 Siemens(지멘스)제 대구지하철 1079호 열차는 현재 대구시민안전 테마파크에 전시되어있다.
1.
아제르바이잔 지하철 화재참사
일시 : 1995년 10월 28일 6pm
장소 : 바쿠, 아제르바이잔
인명피해 : 사망300명 부상265명
사고원인 : 전기 결함
사고내용 :
1995년 10월 29일 오후 6시, 러시아워 시간대로 인해 승객들로 가득 찬 5량의 전동차는 Ulduz 역을 떠나 Narimanov로 향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5번째 칸에서 연기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4번째 칸의 승객은 하얀색 연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연기는 서서히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네번째 차량과 다섯번째 차량의 사이에서 전기고장이 났다고 판단한 기관사는 Ulduz역에서 200m 떠난 뒤 차량을 정지했다.
기관사는 상황을 보고했고 전원을 즉시 차단 해 줄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산화탄소가 터널 내부에 심각하게 배출 된 상황이었다.
화재가 시작하고 15분 후, 터널 환기시스템이 배기보드로 전환했고 배출구로는 수 많은 연기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 많은 승객들이 전동차를 탈출하기위해 시작했으니 결국 문 개방의 어려움으로 대피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승객들은 창문을 깨려고 시도했으나 이미 터널내부에 가득 찬 연기로 인해 질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건은 300명의 사망자와 265명의 부상자를 내고 말았으며 대부분의 사망자는 전동차 내부에서, 그리고 40여명은 터널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화재원인이 전기 결함에 의해 발생 된 것으로 결론지었으며 폭발물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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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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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한국의 눈치사회가 아니라 상황지배의 군중심리로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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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정말 답답했던 점은 불과 열 연기는 위로 올라가는 데. 전부 출구를 찾아서 위로 올라가시다 숨이 막혀 죽으신 분들. 지하철 차로를 통해 나가신 분들은 전부 살아남으셨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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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치 본다고 가만 않아 있다가 죽은 사람도 태반이였죠, 우리나라 의 눈치사회 에 대한 씁쓸함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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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다녀왔습니다. 친구 잡아먹은 죄인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중앙로 역사를 방문 했습니다.. 결혼하는 청첩장을 놔주고 올려고 했으나 이게 무슨 일인지 친구들한테 줄 꽃이랑 선물줄려고 담아온 종이봉투에...같이 넣어온 청첩장만 없어졌더라구요.. 지하철 안에 흘렸나 싶었으나 그런 기억은 전혀없었고..어쩔 수 없이 중앙로역 지하 승강장에 도착하여 향을 피우고 친구들이 나를 마중왔다 먼저 가버린 그곳에서 1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했습니다...먼저 간 친구들을 위해 선물로 준비해간 지포라이터..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꼭꼭 숨겨두고 왔습니다. 2003년 2월18일 내 상병 휴가에 나를 마중 나오다 먼저 가버린 친구들아...보고싶구나..진짜로 마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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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화재,재난시 대피요령 교육을 기관사나 근무자에게라도 잘시키고 숙지했으면 좀더 많은분들이 살수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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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정말 답답했던 점은 불과 열 연기는 위로 올라가는 데. 전부 출구를 찾아서 위로 올라가시다 숨이 막혀 죽으신 분들. 지하철 차로를 통해 나가신 분들은 전부 살아남으셨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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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치 본다고 가만 않아 있다가 죽은 사람도 태반이였죠, 우리나라 의 눈치사회 에 대한 씁쓸함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 | 14.02.20 1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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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화재,재난시 대피요령 교육을 기관사나 근무자에게라도 잘시키고 숙지했으면 좀더 많은분들이 살수있었을텐데... | 14.02.20 12: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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